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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노래 Nov 08. 2021

나의 물건이 나를 말해준다 <일상이 미니멀>

일상이 미니멀 북리뷰, 나의 물건이 나를 말해준다

어떤 물건들과 함께 살아가는가?
그리고 소유한 모든 물건은 내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내가 어떤 사람이고 싶은가에 대한 답이 이 질문에 있을지도 모른다.

자전거, 오븐, 스툴, 블라우스, 카드 지갑, 서랍장, 스마트폰, 몰스킨, 삼색 볼펜, 책갈피, 테이블, 연필, 아이패드, <어린 왕자>, 커피, 속옷, 양말, 립스틱, 옷, 손목시계, 손수건, 안경, 귀걸이, 비닐우산, 라디오, 문고본, 비누, 장바구니, 빨대 등 29가지 물건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사람이 있다.

어쩜 이렇게 객관적이고 깔끔하게 자신을 말하고 삶의 지향점을 스스로에게 제시할 수 있을까.


'들어가는 말' 말미에 쓴 어떤 물건들과 함께 살아가고 내가 소유한 물건들은 내게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곧 내가 어떤 사람이고 싶은가에 대한 답일지도 모른다는 말에 한참 머물렀다.

작가의 메시지를 받아들이며 나를 돌아본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어떤 사람이고자 하는가? 어떤 사람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야 할까?

자주 사용하는 물건을 통해 현재의 나를 점검하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도 엿볼 수 있겠다 싶어 종이에 대충 써보니 몇 가지들이 있긴 하다.

모자, 아이폰, 에어팟, 츄르, 핏플랍, 원피스, 선글라스, 콜롬비아 빨간 백팩, 얇고 폭이 큰 스카프, 작은 책, 다초점 안경, 롱 가운, 김 병장 핫팩, 면 슬리퍼, 그리고 커피..

퇴근 후 저녁 산책 나갈 때 잊지 않고 챙기는 물건은 모자, 아이폰, 에어팟, 그리고 츄르이다.

나는 몇 해 전 머리 수술을 한 후부터 모자를 쓰게 되었는데 모자는 머리 통증도 줄여 주지만 대단한 안정감을 준다. 물리적 보온이 정신적 영역마저 감싸주는 느낌이다.

모자는 챙겨야 할 이유가 있는 애착템이다.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KBS 클래식 FM의 '세상의 모든 음악'을 아시는지.. 직장에서 애쓰다 지쳐 집으로 돌아오는 이들에게 대단한 위로를 주는 프로그램이다. 들을 때마다 감동이 물밀 듯 밀려오는 신비한 시간이다.

진행자의 따숩은 멘트도 감동이지만 캄캄한 밤에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듯한 음악이 정녕 사무친다.

해서 내겐 일종의 리츄얼 같은 시간이라 아이폰과 에어팟은 이 리츄얼을 지키게 해주는 필수품이다.


고양이를 키우지 않으면서 고양이 간식 츄르를 한 박스씩 산다.

산책 나갈 때 주머니에 한 두 개씩 챙긴다.

산책 중 만나는 나의 냥이 친구들에게 주기 위해서다.

고양이의 묘한 분위기가 좋다.

냥이 특유의 시크하면서 따뜻한 느낌 때문이다.


나는 핏플랍 제품의 신발들만 신는다.

외출할 때는 물론이고 학교에서 신는 슬리퍼, 여름 샌들, 겨울 부츠까지 다 이 브랜드의 것들인데 별로 예쁘지 않지만 발과 허리를 아주 편안하게 해 주어 거의 10년 동안 핏플랍만 신고 있다. 높은 굽의 신발을 신으면 비율도 좋아 보이고 멋도 나겠지만, 나는 비율과 멋짐을 반납하고 편함을 선택한 지 이미 오래다.

족저근막염이나 허리 통증에도 좋아서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알리는 편이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내가 주로 원피스를 입고 다니는 것을 알고 있는데 원피스는 두 가지 면에서 편리하다.

첫째, 코디 고민이 없다. 무슨 바지와 어떤 셔츠를 입지? 컬러는 어떻게 맞출까? 등의 고민을 줄여준다.

둘째, 허리와 배를 친절하게 그냥 놔둔다. 너무 친절한 나머지 허리와 배가 아주 버르장머리가 없어진 게 부작용일 따름이다.


선글라스는 내 인생의 가장 오랜 필수템이자 친구라 할 수 있겠다.

이 친구 덕분에 나는 두려움을 감추고 자신감을 챙긴다. 낯선 곳에선 특히 더 필요하다.

 

7~8년 전부터 내 여행의 동반템인 콜롬비아 빨간 백팩엔 나만의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다.

아직 뜯어진 부분이 하나 없어 향후 10년도 거뜬히 내 소중한 것들을 담아낼 능력템이다.


얇지만 폭이 큰 스카프는 다용도로 쓰이기 때문에 늘 가방에 넣어 다닌다.

목에 두르기도 하고 잔디밭에 깔기도 하고, 테이블보가 되기도 하고 담요가 되기도 하기 때문에 여행이나 먼 곳으로 외출할 때는 잊지 않고 챙긴다.

 

한 두 권의 책을 거의 매일 가지고 다닌다.

일상에서 다양한 책들을 접하기엔 문고본 크기의 책이 딱이다.

나의 절대 독서량을 늘려 주고 있기도 하다.

책이 두껍고 크다고 메시지가 깊고 울림이 큰 것도 아니거니와.


노안으로 처음엔 돋보기안경을 썼었는데 돋보기 안경은 왠지 내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 같아 이름도 거창한 다초점 렌즈를 거금을 들여 맞췄다.

돋보기안경보다 두통도 훨씬 덜하고, 모양도 좋으며 안경을 쓰고 다른 일을 할 수 있다.

젊을 땐 안경이 쓰기 싫어 라식 수술을 했는데, 20년도 못 가 다시 안경에 의존해야 하는 인생이 딱하긴 하지만, 안경은 안경 나름의 철학이 있다.

젊을 땐 멀리 보라고, 늙을 땐 가까이 있는 것을 잘 챙겨 보라고 하니 말이다.


으스스 추운 계절, 집 안에선 다음의 세 가지에 의존한다.

롱 가운, 핫팩(김병장!), 그리고 면 슬리퍼다.

롱 가운은 스위트 홈의 안정감과 따스함을 몸과 영혼으로 다 느끼게 해 주며 난방비 절약에도 좋다.

군인 보급용으로 주던 김병장 핫팩은 보온성과 지속력에 있어 정말 핫하다. 잘 때 작은 수건으로 감아 이불속에 넣어놓으면 다음 날 아침까지 뒤척임 없이 따뜻하게 잘 수 있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수술 부위가 아프다. 서러운 통증을 덜어주는 효자템이라 늘 박스로 사놓는다.


면 슬리퍼 역시 다양한 일들을 하는데 무엇보다 집에서 양말 대용으로 신기 좋고, 양말처럼 세탁기에 넣어 세탁할 수 있어서 일반 실내용 슬리퍼보다 쓰임새가 좋다. 12개에 만원이던가. 양말보다 싸잖아..


커피는 음료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진지한 대화가 필요할 ,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 휴식이 필요할  어딘가 앉아 있는  곁에 있는 것은  뜨거운 커피  잔이다.

커피 애호가들은 알 것이다.

갓 내린 뜨거운 원두커피의 향과 깊은 맛이 얼마나 큰 위로와 따스한 사랑을 담고 있는지 말이다.

하루를 열어주고, 하루를 견디게 해 주며, 견뎌낸 하루를 정리하고 닫는 의식은 커피 아니면 안 된다.

내겐 희로애락의 순간을 함께 하는 동지 혹은 동반자 같은 의미의 것이라고 할까.


내가 자주 사용하거나 애정 하는 물건들을 정리해보니, 아하..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몸을 편하게 하고 따뜻하게 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며 정신적인 편안함과 마음의 보온 역시 지키려 하는 자유로운 혹은 자유롭고자 하는 영혼의 소유자..

포기하거나 버려야 할 애착 물건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마 쭉 이렇게 살아갈 것 같다.

나쁜 본능이 버려질 것 같지 않다.

작가는 우리의 본능이 언제나 건강에 도움 안 되는 쪽으로 기울어 있다고 했는데 말이다.

우리의 본능은 언제나 건강에 도움이 안 되는 쪽으로 기울어 있다. 의자가 보이면 자연스럽게 앉게 되고, 빈자리가 있는데 서 있기를 선택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몸이 상처와 염증으로부터 회복하는 시간은 만복이 아닌 공복 상태인데, 우리의 관심은 '무엇을 먹을까'에는 쏠려 있어도 '어떻게 덜 먹을까'에는 향해 있지 않다. 스툴은 더 이상 이롭지 않아 진 본능과 이를 쫓으려는 나의 몸 사이 작은 제동 장치다.


작가의 물건 중 스툴은 역발상적 필요 물건이다.

등받이 없는 스툴에 앉으면 불편하니 곧 일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기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고 말한다.

스툴은 소파에 붙여 발을 뻗거나 아예 눕기에도 좋은 물건인데 작가는 스툴을 독립적으로 사용하나 보다.

본능은 건강보다 편함을 찾으니 내 몸을 편하게 하지 않기 위해 등받이 없는 스툴에 앉는다는 작가의 의지는 곧 건강한 삶에 대한 엄격한 의지인 것 같다. 그의 말이 맞긴 하다.

편하게 기대어 앉을 수 있는 소파는 곧 누우라 말한다.

누우면 일어나기 싫고 운동하고자 하는 의지를 떠나보내고야 만다.

나는 소파를 앉는 용이 아닌 눕는 용으로 사용한다. 꾸준히 배 나오고 살이 찐다.



삶이 글이 될 수 있는 비결은 특별한 재능에서 기인하지 않는다. 태만하지 않고 성실히 꾸준함을 쌓고, 그 사이사이를 적절한 체계로 안정적으로 지탱한다면 매일 쓰는 힘은 자연히 생겨난다. 막연한 생각은 글자로 남겨도 그 자체로는 어떤 가치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흘려버린 글과 일상을 정해진 시간에 약속된 규칙에 따라 잘 정돈하고 분류하고 배열해 모양을 잡아 갖추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삶은 하나의 멋들어진 오브제가 된다.

나는 이 글이 제일 마음에 든다.

참으로 멋진 정리가 아닐 수 없다.

생각을 한두 줄 글로 적어놓기만 한다면 그냥 끄적임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그러고 있다.

작가와 비 작가의 차이는 누가 더 규칙적으로 기록을 하고, 그 기록을 분류해 모아 놓고, 일정 분량이 되었을 때 흐름에 맞게 잘 배열한 후 뿌듯함과 부끄러움 그 어딘가의 감정 줄타기를 하다 세상으로 내어 놓느냐, 아니면 사이버 공간에 유령처럼 떠돌게 놔두느냐.. 일 지도 모르겠다.

정리도 기술이다.

나아가 자신을 챙기고 돌아보게 하는 정신적 테라피이다.

미니멀리즘의 가치를 꾸준히 기록 후 일련의 책으로 내어 선한 영향을 주는 작가의 철학이 마음에 든다.

나도 그 영향으로 미니멀리즘의 삶을 살고자 노력하고 있다.

작가의 전작인 #조그맣게 살 거야 부터 #일상이 미니멀 까지 읽으며 조금씩 실천하고 있다.

나의 물건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 또한 어떤 삶을 살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지 살펴보고자 하는 이들에겐 짧은 시간 깊은 통찰을 가능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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