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 village, 헬싱키에서 50분, 포르보
헬싱키, 스톡홀름, 탈린 여행에선 스카프, 카디건, 레인코트 없이 다닌 적이 없을 정도로 북유럽의 여름은 부산여자인 나에겐 꽤 쌀쌀 맞았다.
어느 화창한 날 아침, onni bus를 타고 헬싱키 근교 포르보(Porvoo)에 갔다.
온니버스는 이상하리만치 저렴하다.
헬싱키에서 버스나 트램, 메트로는 1회 이용권이 3.2유로다.
데일리권은 9유로라서 주로 데일리를 사서 다녔다.
포르보행 온니버스는 한국에서 미리 예약하고 갔다. 4명의 왕복요금은 예약비 1유로 포함해서 21유로였다.
즉, 1인 왕복요금이 5유로라는 말이다.
너무 싸지 않은가.
물가에 왜 이리 일관성이 없는 거시냐..
온니버스는 다양한 시외버스 회사들 중 하나이고 공식적인 시외버스라고 할 수 없다.
캄피 버스터미널에서 온니버스 타는 정류장 찾느라 좀.. 아니 좀 많이 허둥댔다.
버스 회사가 많아서인지 헬싱키 시민들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래도 이 사람 저 사람 잡고 묻다보면 답은 항상 나온다.
기억하시길.. Ask and ask and ask..
온니버스는 "캄피 버스 터미널 지하1층" 에서 탄다.
헬싱키에서 50분쯤을 달려 포르보에 도착했다.
포르보에 관한 정보가 거의 없어 어디부터 둘러봐야할지 살짝 난감했다.
그러다 우연히 free city tour bus 라는 표지판을 발견했다. 소요시간은 단 20분..
20분만에 포르보의 주요 볼거리와 골목들을 볼 수 있을만큼 작은 마을이라는 건가.
프리라니 참 좋다.
타서 보니 포르보 주민분들이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는 것 같았다.
원피스에 레깅스를 입고, 카디건에 스카프까지 보온 아이템을 잘 챙겨 갔으나 투어버스 안에서 보여주는 짧은 뉴스와 일기예보를 보고 있자니 밖의 기온은 27도란다.
그렇게 포르보의 기온은 초여름날 순한 더위처럼 살짝 땀까지 나게 했다.
오랜만에 레깅스를 벗고 맨 다리로 다녔다.
그래, 여름은 헐벗는 맛이지..
드라마틱하게 아름다운 하늘의 모습에 샘이 났다.
진짜 하늘색, 진짜 흰 구름때문이다.
미세먼지, 황사로 인해 자주 사라지는 오리지널 하늘색 바탕에 원조 흰 구름들이 여기선 매일 내 머리 위에 있다.
여행을 더 자주 다녀야 할 이유가 될 것 같다.
주인없는 남의 집 마당에서 신나게 노는 아이들처럼 기차 끊긴 철길 위에서 한참을 놀았다. 그리고 마을로 접어 들었다.
마을로 접어 드니 작은 장이 서 있다.
포르보 사람들은 겨우내 집에서 털실로 뭔가를 짜거나, 레이스 뜨기를 하거나 천조각으로 뭔가를 만들어서 여름이 오면 그것들을 마을 어귀에 걸어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수공예품을 파는 주민들이 많다.
카페도 주로 여름에만 문을 여는 모양이다.
배가 살짝 고파진 우리는 11시30분까지 브렉퍼스트를 한다는 아담한 카페에 들어 갔는데 커피도 주전자 채로 주고, 빵, 요거트, 치즈, 과일 등의 "건강미"에 살짝 감동 먹었다.
인상 좋은 할머니가 파시는 수공예품들 중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비누와 한 몸된 펠트였다.
샤워할 때 보다 때 밀 때 딱 좋을만한 까칠함이 마음에 든다.
사우나를 사랑하는 핀란드인들은 부득이(?) 때도 밀지 않을까란 근거없는 추측을 하면서 탈린에서 산 도자기 비누 받침대와 어울릴 것 같아 고민없이 샀다.
내 여행의 소소한 재미다.
성당에 들어갔다.
먼저 하나님께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웃기게도 신과 딜을 했다.
감히.. 미쳤지..
마침 성당에선 결혼식이 거행되고 있었다.
나이 지긋해 보이는 남녀가 서로의 눈을 깊숙이 바라보며 마주 서 있다.
신부님으로 보이는 이는 꼭 '데이빗 보위' 처럼 생겼다.
성당 안에 서 있는 사람들은 나같은 여행자들인가 보다.
그럼에도 우리는 신랑 신부의 하객이 되어 지독시리 어설픈 축가를 기분 좋게 들으며 미소로 그들을 축복해 주었다.
성당 내부 사진 촬영 금지가 차라리 잘 된 일 같다.
버스에서 처음 내렸을 때 본 강가의 목조가옥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들의 빈티지함은 어쩜 이리도 멋스러울까.
별 희한한 중고물품들을 파는 창고 가게가 신기해서 한참을 구경했다.
살 거라곤 하나도 없었지만 말이다.
그리곤 멋진 여자가 눈에 띄어 그녀를 따라 갔더니 색색의 레이스 뜨기와 에코백과 천조각들이 많은 가게였다.
직접 만든 것들이냐고 물어보니 그녀는 future-employee들을 위한 커뮤니티의 리더인데 자기가 디자인을 해주고 만드는 방법을 잠정적 고용인들에게 가르쳐 준단다.
마을 주민들은 공동체를 위해 천을 기부해준다고.
포르보는 특별한 관광자원이 없는 마을이다. 그러나 공동체 의식으로 잘 영근 마을이기도하다. 여름을 축하하기 위해 소소한 수공예품들로 마을을 장식하고, 핀란드 물가 대비 저렴한 가격의 훌륭한 먹거리로 여행객들을 반겨주니 이보다 더 좋은 관광 자원이 어디 있겠는가.
나와 친구들에게도 한나절 충분히 힐링되는 좋은 시간이었다.
해서인지 포르보 사진들 속의 내 표정이 참 편안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