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한결 Apr 08. 2018

영화 소공녀(Microhabitat) 후기

완벽히 평범한 삶은 없다

드디어 <소공녀> 봤다. 비오는 날 종로 3가 노포를 찾아가 홀로 꼬리곰탕에 막걸리 한 잔 걸치고 영화관에 들어온 내 모습과,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데 온갖 짐을 끌고 바에 앉아 위스키를 즐기는 주인공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그 때문인올해 들어 본 영화 열 두편 중에 가장 공감이 됐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 현장에서 보지 못해 아쉬웠는데 혼란스런 요즘 내 상황에 걸맞는 영화라 오히려 오늘 본게 잘된 일이다 싶다.

한 편 시놉시스와 포스터를 보고 영화를 볼지 말지 결정하는게 점점 쉽지 않다고 느낀다. 포스터는 인상적인데 영화가 밋밋한 경 있는가 하면 포스터는 우울데 영화는 생각 외로 산뜻한 경우 있다. 이번 영에서도 나는 역시나 좋은 의미로 포스터에 낚였다. 보라와 분홍의 조합이 우울과 낭만이 섞여있을 것을 암시했지만 그 배합비까지 알려주지 않은 탓이다. 더 우울할거라 생각했단 얘기다.

공감이 컸던 영화 <소공녀>를 보면서 순간순간 들었던 생 임팩트 순서대써본다.

1.바라던 모든 기준의 적정선, 중간선을 모두 채운 '완벽히 평범한' 삶은 없다. 온전해 보이는 삶도 여러 요소들 중 한 두 가지씩은 빼먹고 산다. 그게 무엇인지만 다를 뿐. 누구에겐 집이 없고 누군가는 가족이 없고 뭐 그런 것. 물론 다수가 가진 것을 갖지 못한데 대한 상실감의 크기는 다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외부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으면 얘기는 달라진다. "난 지금 이대로 좋은데?"라 말하는 미소의 대사가 대단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2. 행하듯 산다는 말이 여행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생각해본다. 얼마나 같잖고 위로되지 않는 말일까 싶다. 여행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낭만과 설렘 뒤에 고난과 역경이 있음을 알면서도 아직은 긍정적 감정이 먼저 피어오르는 건 책임 없는 자유한 삶을 꿈꾸기 때문인 것 같다.

3. 함께이되 홀로인 사람들 곁엔 늘 술이 있다. 혼자 있음을 아무렇잖은 듯 얘기하지만 속으론 함께이길 기대한다. 이기적 본성의 이타적 표현은 모순적이지만 모순되지 않는다.

4. 타인에게 좋은 모습만 보이려다가는 사람도 추억도 남지 않고 종국에 기억마저 흐려진다. 과정에 감정이 순도높게 섞이지 못해 그렇다. 그 시간 뒤에는 후회만 남는다. 그것마저 미화하는게 사람의 대단한 능력이지만. 그들이 떠나보낸 여주를 생각하며 하는 말을 보자. '행복한 척이라도 할걸. 여전히 이쁘더라. 내 얘기만 하다가 보냈네. 밥을 그렇게 잘하더라.' 등등. 누군가를 기억나게 하는 건 값진 선물이기보다는 사소한 말 한마디나 행동으로 느껴지는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인 것 같다.

5. 이번 주말 있던 일들에 더해 공보의 생활 1주년을 맞이해 관람한 영화가 선물 같아 기분이 좋다. 현실 서울서 현실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나와 내 주변의 모습들을 봤고 덕분에 알고지낸 이들 여럿을 떠올리게 됐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있고 이런 일 저런 일도 있다. 내 나이 또래에 있는 이들이 겪는 일상적 삶의 희노애락이 스민 영화라 잠잠한 듯 울림이 크다.

6. 극 중 여주가 입은 옷도 미소도 배우도 예뻐 좋더라. 도회지에서 오롯이 자기 색으로 초연히 서 있는 모습이 잘 어울렸다. 밝은 갈색 코트 청록과 빨강의 소품 그리고 회색 빛 도는 머리까지, 조합이 좋았다.  

상영관이 적어 아쉽다. 더 많은 사람들이 보면 좋을텐데. N차 관람할 의향이 있어도 보기가 어려운 영화니, 값진 관람이었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