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리한 사용과 폐기
니트족은 세련된(neat) 사람들 집단이 아닌 걸 이 책을 읽고 알았다. 영어 ‘NEET’ 로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이라는 뜻이다. 즉 학생도 아니고, 직업도 없고, 직업을 얻기 위한 훈련도 안 하고 있는 상태를 뜻한다. 그런데 니트족의 심각성은 헬조선이라는 말을 듣고 있는 우리나라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손 꼽히는 선진국에다 일억 총중류(一億總中流) - 인구 일 억 명이 다 중산층 - 라는 자부심이 있던 일본에도 근래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었다.
문제를 야기시킨 주범은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물결 그리고 그걸 일본에서 용감하게 선도한 고이즈미 전 총리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청년 니트족과 무슨 상관인지, 그게 어떻게 일본까지 전파되었는지 알려면 우선 그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래는 신자유주의에 대해 언급한 책의 내용이다(page 287).
미국에서는 1980년대에 본격화되었습니다. 인플레이션과 부채 때문이에요. 어떻게 복지 국가 요소들을 약화시킬까 하는 것에 고심하는 경제학이 지배적인 사고방식이 되어갔습니다. 그때까지의 주류는 소위 케인즈 경제학이죠. 케인즈의 사고방식은 '실업을 어떻게 해소할까, 실업이 사회에는 악이다.' 라는 발상 위에 서 있습니다. 구멍 파서 메우는 데도 정부가 돈을 내면 거기에서 고용이 발생합니다. 적자가 나든 빚이 되든 어쨌든 정부는 그걸 합니다. 그런 사고방식이었습니다. 그 케인즈 경제학을 무너뜨리는 데 전력한 학자들이 언젠가부터 미국의 정권 중심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걸 통화주의monetarism 혹은 공급supply side 경제학(수요보다 공급을 중시하는 경제학. 대규모 감세와 규제 완화를 통해 민간 투자와 기업 성장을 도움으로써 국내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입장)이라고 합니다. 다른 말로 균형 재정주의라고도 하고요. 회계 연도에서 가능한 한 수지를 맞춥니다. 정부는 돈을 쓰지도 말고 빌리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20세기 최고의 경제학자라는 영국의 존 메이너드 케인즈(John Maynard Keynes, 1883-1946)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고용을 촉진하고 실업을 억제하는 걸 선호했다. 하지만 영국병(1960,70년대 영국 경제 쇠퇴의 원인을 과다 복지와 연결되는 노동자의 비능률성으로 파악)과 스태그플레이션을 동반한 오일쇼크(1973,79년)로 인해 케인즈식 경제에 대한 의문이 나타난다. 그 대안으로 신자유주의가 급부상했는데, 영국의 마가렛 대처 수상과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대표적 정책 추진자였다. 신자유주의는 서구 열강의 경제적 부활을 이끌었고 결과적으로 동구 공산권 블록과의 경제 전쟁은 서구의 승리로 끝난다(냉전 종식). 하지만 2008년 미국 발 세계 경제 위기가 터지면서 신자유주의는 중대한 도전을 받게 된다.
서구의 신자유주의는 복지 국가의 늘어진 노동 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시민들에게 헝그리 정신을 불러일으키려 했다. 태평하게 일해도 급여와 정년이 보장되는 공기업 일자리를 대폭 민간 기업으로 넘기고, 노동 시장의 유연화(비정규직 고용을 늘리고, 정규직 해고는 편리하게)를 추구했다. 그러면서 금융 기관의 규제를 완화해서 실물 경제와 동떨어져 움직이고, 현금 흐름 예측이 어려운 수많은 파생 금융 상품을 탄생시켰다. 이런 실체가 불분명한 사이버적 금융 상품은 2008년 가을 미국 발 대폭발을 일으킨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라 불리는 이 위기에서 신용 등급이 낮은(실물 자산이 부족한) 개인들은 주택을 담보로 거액을 대출받았고, 금융기관들은 그 대출 채권을 토대로 파생 상품을 만들었고, 다른 금융기관들이 그 파생 상품에 또 파생된 무언가를 만들었다. 그런데 불황으로 실물 자산인 담보 주택 가격이 떨어지자 줄줄이 소세지처럼 이어진 파생 금융 상품들도 다 같이 부도가 나고 말았다. 결국 이런 상품을 많이 보유하고 있던 미국 굴지의 금융 기관들이 파산했고, 그 금융 기관과 이어진 세계의 기업과 금융사 들도 같이 밑바닥에 빨려 들어갔다.
일본의 경우 2008년 세계 경제 위기의 훨씬 이전인 1990년대 초부터 불황이 시작되었었다. 처음에는 ‘잃어버린 10년’ 이었다가 나중에는 ‘잃어버린 20년’(2000년대), ‘잃어버린 30년’(현재)으로 자꾸 더 길게 잃어버리는 경제 위기 속에 일본 정부는 심각한 자구책을 마련한다.
고이즈미 정권은 2001년에 집권했는데 신자유주의적 규제 완화를 제창했다. 노동시장 유연화의 일환으로 노동자 파견법을 손보는데 이것이 종신고용, 연공서열 등으로 대표되는 일본 특유의 기업 고용 형태를 변형시킨다. 고이즈미의 보수 자민당 정부는 일경련(日經連; 일본경제인연합회)과 연합해서 개혁을 추진했는데 아래는 그에 대한 책의 내용이다(page 45).
불황에 직면해서 일경련은 일하는 사람을 다음과 같이 셋으로 분류할 것을 제언했다.
1. 장기 축적 능력 활용형
2. 고도 전문 능력 활용형
3. 고용 유연형
의미만으로도 알 수 있듯, 1은 기업의 중핵이 되는 사원에 해당되는 말이다. 그들은 기존의 정규직 사원같이 장기 고용에 승급, 승진도 있다. 2는 전문적인 기능을 가지는 계약 사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장기 고용이 아니라, 연봉제나 성과급이 적용된다. 그리고 3은 한시적 고용, 시급제로서 승급 같은 것은 없다. 이 3이 지금 매우 급증하고 있는 일회용 노동력이다.
이 같은 개혁은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문제와 아주 비슷한 반향을 일본 전 사회에 불러일으켰다. 다음 글에서 이어서 설명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