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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ce in wonderland Jul 31. 2020

내가 너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이유

코로나를 대처하는 장거리 커플의 연애

"지루한 거 빼고는 난 견딜 수 있어. 그래서 말인데, 만약 내가 이번 년도에 다른 남자들이랑 데이트를 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침묵...)


때는 지난 주였어요.

코로나 때문에 이번 년도 내에 레져를 위한 해외여행은 안될 가능성이 높다는 싱가폴 정부의 입장을 다룬 기사가 나왔습니다. 8월에는 만날까, 9월에는 만날까 맨날 뉴스 기사를 검색하는 국제 연애 커플에게는 좌절스러운 뉴스였지요.


그 뉴스를 남자친구에게 보내주니까, 영상통화가 왔고, 저에게 내년까지 안봐도 괜찮냐고 연락이 온거였어요. 그런데 그런 질문을 하는 남자친구에게 저는 저렇게 대답하고 질문한거에요. 장난끼가 발동했던건지, 아니면 유럽 남자들이 그동안 자주 보여준 오픈 릴레이션십에 대한 남친의 생각이 궁금했던건지, 아님 가끔 그러듯 아~무 생각이 없었던건지는 모를일이죠.


저를 향한 넘치는 사랑을 알거니와, 저는 남자친구가 당연히 "뭔소리야? 나랑 사귀는데 다른 남자와 데이트라니, 당연히 안되지!"라고 할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는 조용히 생각을 하더니, 어렵게 입을 열었어요.




"다른 사람과 데이트하는 것이 너에게 정말 필요하다면, 그리고 그게 널 정말 행복하게 한다면...... you should..."



저는 일순간 귀를 의심했습니다.


'내가 뭘 들은거지?

얘가 이런 인성이 아닌데...

내가 과거에 만났던 '너와 있을 땐 너와 즐겁고, 너와 함께 있지 않을 땐 내가 누구와 있던지 신경쓰지 말아줘'라고 말하는 프랑스 남자들과는 다를거라 생각했는데, 결국 독일인도 유럽인것이냐!?'


순간적으로 이런 생각들이 들기 시작한지 10초정도 지났을까요?

그 다음 남자친구의 반응은 절 더 당황하게 했어요.



눈이 빨개지더니, 큰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고, 훌쩍이며 울기시작하는거에요. 코 끝도 빨개지고, 계속 눈물을 닦느라 팔로 얼굴을 비비는데 저는 너무 당황했지만 그 모습이 귀여워서 존나게 스크린샷을 찍기 시작했지 뭐에요? (네,저는 나쁜 기집애 입니다.)


암튼, 절대 본심은 그 안에 없었음을 밝히고 오해를 풀고, 우는 애를 달랜 후 전화를 끊고, 남자 친구가 저를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을 했어요.



저는 예전부터 사랑과 일을 할 때, 스스로를 불살랐죠.

특히 사랑앞에서 20대의 저는 불나방이었어요.

'내가 이 불에 들어가서 타죽어도 난 간다.'의 정신으로 임했기에, 늘 끝까지 갔죠. 구차해지는거? 상처받는거? 자존심 버리는거? 그게 문젠가요? 저는 알았거든요.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미련이 남고, 미련은 더 오래가는 병이 된다는 걸. 적어도 그것이 저에게는 진실이었기 때문에, 늘 최선을 다해 구차해졌고, 그래서 미련을 남기지 않았어요.


그 덕분에 관계에 대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죠. 더 정확하게는, 저에 대해서 많이 배웠어요.

저는 어떤 방식으로 관계 맺기를 원하는지, 어떤 사람이 나에게 맞는지, 어떤 가치는 절대 타협할 수 없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은 모두 각자 다른 자기들의 방식으로 사랑을 한다는 것을요.


전남친들과 현재까지 연인의 관계로 남아있지 않은 것은 우리가 사랑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는 방식이 서로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방식이 아니었음을 압니다.


어떤 사람은 정말 다정했지만, 동시에 저의 자유를 너무 많이 구속했고,

어떤 사람은 자유를 무한히 줬지만, 저에게는 너무 차가웠고, 그리고 나를 위해 그 extra mile을 갈 의지를 보여주는데 실패했고,

어떤 사람은 저를 사랑한게 아니고, 자신이 만든 '앨리스'라는 사람의 환상을 사랑했지요.


그런 정반합의 가르침속에 저는 오늘날 제가 편안하다고 느끼는 스스로의 자아와 자기이해에 도달했어요.




그런데 현재 저보다 5살이나 어린 남자친구의 사랑의 방식은 놀랍도록 성숙해요. 그는 저에게 많은 사랑을 주되 제가 자유로울 수 있는 영역을 침범하지 않습니다.


예컨데 이번에 일어났던 사건이 그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이었죠.

명백히! 그는 제가 다른 남자와 데이트하는게 눈물나게 싫었어요. 그렇지만, 자신의 행복보다 제 행복과 결정을 우선했던것이죠. 그래서 거기에 대한 복수의 마음으로 '감히 내 사랑을 배신해? 나도 똑같이 다른 여자랑 데이트하겠어.' 라고 말하지 않았던거에요.




현재 남자친구와 또 다른 에피소드가 있는데, 제가 "나 가슴 확대 수술 하고싶어" 라고 했을 때 그의 반응이었어요. 물론 이때도 전 별 생각 없이 물었던거에요. 가슴 수술하고 싶은 생각은 거의 0에 수렴했는데, 그냥 물어본거죠 뭐.


그때 남자친구는 가장 첫번째로 제가 이 질문을 얼마나 진지하게 묻고 있는지에 대해서 물어봤어요. 한번도 제가 이런 얘기를 한적이 없는데, 갑자기 장난으로 묻는건지 아니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지를 먼저 알아야겠대요.


그리고 그 후에 자기는 자연스러운게 가장 좋고, 저는 있는 그대로 정말 예쁘다고 말을 했어요. 단순 크기만이 중요한게 아니라며...


여기까지는 대다수 좋은 남자친구들의 일반적인 반응일 수 있어요. 여자친구를 바꾸려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가 제일 좋다고 말해주는거.


그런데 제 남자친구는 한발 더 나아갔어요. 제가 얼마나 진심으로 그걸 원하는지 잘 판단이 안서지만, 만약 제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라면, 해야지라고 말한 거에요. 자기에게 묻는다면 가슴 수술은 필요하지 않다고, 자기의 선호는 자연 그대로이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제가 하고 싶은 것, 저의 선호라는 것이에요.


남친이 보여주는 애정은 소유가 아니에요. 좋아하고 아끼는 마음위에 저라는 개인의 자유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있어요. 그래서 제가 제 멋대로 하는 것에 대해서 섭섭해 하지 않고, 또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쁜 것을 떠나서, 제 의사 결정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죠. 그게 자기 맘에 들던 말던, 그건 중요한 건 아니죠.


저는 저 나름 힘들게 나이를 먹었거든요. 그래서 요새는 'I am comfortable for who I am'의 정신을 획득했어요. 그러니까 예전보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가 잘 구분되고 또 자아가 단단해지면서 나름의 고집이 생기는데, 이런걸 존중해주니까 덜 부딪혀서 지난 10개월간, 거의 싸울일이 없더라구요.




저는 어쩌면 독일인 남자친구의 이런 태도가 오랫동안 어른들로부터 들었던 '백인들은 정이 없다. 그들은 개인주의적이기 때문에 그쪽 문화와 결혼하면 너가 외로울것이다'라는 경고와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교과서에 본 대로 이야기하자면 동양권의 문화는 집단주의에 가까워서, 결혼을 하고 나면 '우리'가 되는 것에 익숙하죠. 너와 나가 아닌 우리가 되는거에요. 그러니까 나는 우리의 이름으로 너의 삶과 결정에 많은 영향을 줄 자격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죠. 드라마를 볼때도 남주가 질투에 불타올라서 마치 여주가 '자신의 것'인양 행동할 때 심장 터지잖아요? 저도 그런거 되게 좋아하는데 말이죠. 너를 내 몸처럼 생각하는 그런거요.


반면에 서양인의 개인주의를 근간에 두고 생각하면 이래요. 연인이어도 기본적으로 나는 나고, 너는 너인거죠. 이게 어떤 때는 '나는 여러 명의 사람들과 만나면서 나의 행복을 추구하겠다!'라는 식으로 드러나서 저를 벙찌게 할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저와 잘 맞는 사람들에게는 이 개인주의가 너무 잘맞는 옷처럼 드러나더라구요. 저는 스스로가 행복하고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상대방은 그것을 지지해주고, 저도 그에게 같은 것을 해주는 방식으로도 꽃피는 것이죠. 그리고 두 행복한 사람들이 함께 행복하게 성장해가는거에요. 그는 저의 다소 별나게 자유롭고 독립적인 성향을 존중해주고, 이 글에서는 쓰지 않겠지만 저 나름 그를 존중하고 이에 제 뜻대로 안되더라도 관대한 부분이 있죠. 그래서 제 삶의 다양한 결정을 스스로가 행복해지는 방향으로 하는 결정들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는 현남친은 현명한 놈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행복한 커플의 비결은, 서로가 없어도 행복한 두 개인이라고 생각해요.

일단 내가 먼저 혼자서도 행복한 사람이 된 후에, 나 없이도 행복하게 살고 있던 사람을 만나서 둘이 함께 행복하는 것이죠. 왜냐면 우리 모두가 일시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선사할 수 있지만, 스스로 행복해질 줄 모르는 한 사람을 제 삶에 한평생 온전히 업고 가기엔 벅찬 세상이잖아요.


 

암튼, 다소 의식의 흐름같은 글이었지만, 요는 지난 5개월간 코로나로 만나지 못한 장거리 연애 커플이 어떻게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얘기였습니다.

 

아, 어차피 글이 산으로 갔으니, 마지막으로 오지랖을 부려보자면, 이 글을 읽는 분이 혼자서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주변에 이렇게 불행한 사람이 많은데 나혼자 어떻게 그러냐면서 이기적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구요. 저는 그게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는 진짜 이타적인 행동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지금 스스로 행복해지세요. 스스로 언제 행복한지 계속 탐구하고, 뭐가 나를 행복하지 않게 하는지에 대해서 액션을 취하시구요. 이건 평생의 과업인 것 같아요. 늘 삶은 우리가 예측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시련을 주기에 잠시 힘들고 불행한 시기는 늘 있지만, 다시 밸런스를 잡고 행복한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제가 장담컨데,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도 진심으로 빌어줄 수 있는 여유도 생기실거에요. 그렇게 되면, 우리는 함께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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