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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ce in wonderland Feb 12. 2020

사랑을 찾으려면 어느 나라로 가야할까?

나는 깊은 관계 형성을 두려워 하는 사람들과의 가벼운 연애에도 지치고, 일적으로도 무엇을 하면 좋을 지 모르겠는데, 번아웃이 온 회사도 그만두고 쉬려고 결심한 시점이었다. 일단 모든 것에서 쉬면서 여행을 가려고 했는데, 죽어도 여기를 꼭 가보고 죽어야겠다고 생각한 나라는 또 없었어서 어떤 나라로 여행할지 고르는게 고민이던 차였다.


물론 평소에 하고싶다고 생각해 놓은 것들은 있었다.


10일 비파사나 침묵명상 수행을 하고싶다.

모로코의 사하라 사막에 가서 어린왕자를 생각하며 별을 보며 잠들고 싶다.

이탈리아가서 젤라또와 피자를 먹고싶다. (Eat Pray Love에서 그랬던 것처럼!)


명상도 하고, 먹기도 하고, 별도 볼텐데 그러면 사랑도 찾아야 하지 않겠나?


사랑의 의미도 헷갈리게 하는 이기적 사람들로 가득찬 이 도시에 지친 나는 진짜 사랑을 찾고 싶었다. 살다보니 생각할 것이 많아서 더이상 말하지 않았지만, 예전에 난 입버릇처럼 '세기의 사랑'을 하고 싶다고 말하곤 했었다. 사랑이 이 의미없는 세상에서 나를 구하리라.


세기의 사랑을 하기 위해 내가 한 첫번째 일은, 음... 틴더 유료 결제를 한 것이다. 수단으로 세기의 사랑을 판단하지말자. 뭐로가든 세기의 사랑으로 가기만 하면 될거 아니냐.


틴더 기능중에 'Passport'라는 유료기능이 있는데, 그건 내가 거주하고 있는 나라가 아니고 다른 나라에 있는 사람들의 프로필을 보고 연결할 수 있는 기능이었다.


세계속에서 내 취향을 찾아보자. 그리고 내 취향의 남자들이 많은 나라로 여행을 가자.



먼저 북유럽의 엘프들을 보러가면 어떨까?


휘바휘바 자일리톨로 이빨부터 건강한 핀란드로 가자.


아이고, 해가 덜드는 나라라서 그런가 애들이 너무나 하얬다. 그냥 하얀게 아니라, 사진을 찍고 뽀샵기능을 과하게 넣으면 눈썹과 머리카락 색이 날아가는 것 마냥 눈썹과 머리카락조차 너무 하얀색이었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몸도 얼굴도 두꺼웠다. 나는 선이 예쁜 귀염상을 좋아하기 때문에 나는 핀란드에는 가지 않기로 했다.



독일 전차 군단은 어떨까?

첫번째부터 내취향이었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스와이프한지 5분만에 매칭이 되었다. 그래, 독일 V



정열과 자유의 나라 스페인도 알아보자.

여긴 뭐 10에 9은 수염쟁이들이다. 곱슬머리에 곱슬 수염... 테스토스테론이 너무 많은거, 다메요! 스페인은 스킵.  



이런식으로 여행을 할 나라들을 합리적으로 결정을 했다. 론니플래닛으로 죽기전에 꼭 가봐야할 곳 100군데 중 사진으로 맘에드는 곳을 고르는 것보다 좋은 기준이었다.


그렇게 결정된 최종 나라는, 모로코 (별보러!),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고 독일이었다. 어차피 나에게 여행의 의미는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에 있었지, 장소에 있지 않았다. 방랑시인마냥 발이 닿는대로, 내 마음이 가고싶은 대로 가고 싶었다. 그래서 퇴사 후 떠나는 유럽여행을 나는 계획하지 않았다. 숙소도 예약하지 않았고, 기차도 예약하지 않았다. 다만 모로코로 In 했다가 2개월 반 후에 베를린에서 Out하는, 그것도 Out 시기를 바꿀 수 있는 오픈 티켓을 사고, 간단하게 짐을 꾸렸다. 왜냐면, 어디서 사랑을 만날지 모르니까! 사랑을 만나면 그곳에 더 머물러야지. 내가 한번도 가보지 못했던 곳을 내가 얼마나 좋아하게 될지 알 수 없었기에, 그 도시와 사랑에 빠지면 더 머물고, 그렇지 않으면 옮겨가자라는 마음이었다.


난 미리 예약하지 않은 유럽 성수기 여행이 그렇게 비싸게 먹힐 줄 몰랐는데, 그 와중에 돈지랄의 끝판이었던 것은 싱가폴에 내가 살고 있는 집을 그대로 비워두고 간 것이었다. 열심히 찾으면 그 사이에 방을 쓸 사람을 찾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고, 그 사람에게 돈을 받아 월세에 보탰을 지도 모르지만, 나는 언제 돌아올지도 알 수 없었다. 만약 여행이 힘들면 언제라도 돌아올 수 있는 집이 있었으면 했다.


나는 정말로 자유로웠다.

회사를 가는 마지막 날, 랩탑을 반납하고 나오니 홀가분했다.


호주에 제품을 런칭하는 전략과 계획도, 동남아시아 전역의 제품 패키지 디자인을 업그레이드하는 프로젝트도, 필리핀 제품의 가격과 커뮤니케이션 전략도 이제 다 내 일이 아니었다.


대신 나에게는 홍콩에서 10일 침묵 명상을 하고, 한국에서 가족들과 친구들을 만났다가, 모로코를 가는 비행기표와, 8년동안 열심히 일하며 모은 돈으로 받쳐진 비자 신용카드와 세계 어디든 문제 없이 갈 수 있는 대한민국여권이 있었다.


거기에 외국살이 7년만에 유창해진 영어실력과 누구와도 즐겁게 대화 할 수 있는 성격을 탑재했으니,


가자. 사랑을 찾으러. 그리고 나를 찾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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