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위 '기가 센'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당당한 말투, 그들을 둘러싼 왁자지껄한 분위기, 좌중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리더십. 그러나 '남의 눈치를 보지 않음'은 종종 선을 넘어 '배려 없음'이 되고,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나에게는 숨이 막힌다. 그-혹은 그녀-의 강력한 리더십도 말없이 따라야만 하는 강요가 되곤 해 불편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색깔이 명확한 '기 센' 사람을 더 좋아한다. 의견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우물거리는 '기가 약한' 사람보다는 할 말을 정확히 하고 분위기를 이끄는 '기 센' 사람이 덜 답답하고 예측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의 혐오는 질투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다.
이런 실정이지만 사실 내 주변에도 '기가 센' 지인이 몇 있다. 기억하는 옛날 시절부터 원래 그랬던 친구, 혹은 나이가 들면서 성격이 바뀐 친구도 있다. 예측 가능하게도, 나는 그들과 '절친'은 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멀어지지도 않아서, 육아로 거리가 생긴 다른 친구들처럼 얇고 긴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나는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기가 센' 부류에 들어가는 이의 다양한 면을 보았다. 고민 없이 밀어붙이는 당찬 면모 뒤에 보이지 않는 흔들림이 있었고, 뒤끝 없어 보이는 호탕한 웃음 뒤에 상처 받았으나 내색할 수 없는 이미지가 있었다. 내가 그들을 '기 센 사람' 분류에 넣어놓고 떨어져 볼 때 보이지 않던 디테일이 조금만 가까이 다가가면 금방 드러났다.
그들은 나에게 '그런 부류'이기 전에 'ㅇㅇㅇ이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였고, '드러내 놓진 않지만 뒤에서 다른 사람을 챙기는 배려심 깊은 아이'였다. 한 발자국만 다가가면 금방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친구에게도 내가 막연히 '소심한 부류'가 아니리라 믿는다.- 내가 이런 글을 쓰는 것이 누군가에겐 불편할 수도 있겠다. 세상에, 주류에 대한 혐오라니! 부디 이 글이 '소심한 부류'에 대한 편견을 깬다면 하는 바람이다.
귀찮지만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보면 우린 모두가 다른 사람이다. '어떤 부류'로 묶이기 이전에 각 대상에겐 고유한 특징이 있다. 내가 '소심한 성격 좀 고치라'는 말에 펄쩍 뛰는 것처럼 '드센 사람 별로야'라는 말에 상처 받는 이도 있을 테다. 내 속에는 그것 외의 더 많은 특징이 있고, 상대방이 나를 '어떤 부류'에 집어넣는다는 건, 한 가지 특징 외에 나를 더 알아가고 싶지 않다는 의미일 테니까. 마치 백 미터 거리에서 "너 오늘 얼굴 별로다!"라고 소리치는 사람처럼, 그런 말에 대꾸조차 하기 싫다.
글을 쓰며, 책을 읽으며, 기존에 알던 세계가 무너지고 다시 세워지고 있다. 친구가 새롭게 보이고, 나의 생각이 새롭게 다가온다. 세상의 모든 건 당연하지 않고, 편하게 사용하는 '구분 짓기'를 놔두면 다시 나에게 화살이 돌아올 수도 있다는 걸 안다. 우리는 조금만 더 부지런히, 상대방에게 한 발짝 다가가 들여다 보아야 한다. 그러면 나와 달라보이던 그가 사실 나와 많이 닮았고, 구분짓기는 소용없는 일임을 알 수 있다. 나는 기 센 사람을 좋아하지 않지만 단순히 기가 세기만 한 사람은 없다. 일방적인 혐오는 결국 몰이해가 만들어낸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