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ee Jun 04. 2021

우울이 나를 삼킬 때

날씨 탓인지 최근 며칠간 상태가 좋지 않았다. 몸도 그렇지만 마음은 더 심각해서 설탕 액정처럼, 작은 충격에도 파삭하고 부서지곤 하는 나날이었다. 한때는 이십 대와 함께 우울증을 졸업했다고 생각했다. 결혼-출산-육아를 거치는 일련의 과정 동안 정말 사라진 줄로만 착각했다. 그러나 우울은 끝끝내 내 마음 한구석에 숨어 있다가 내가 연약해진 틈을 타 온정신을 압도한다.


이렇게 쓰면 마치 중증 우울증 환자 같지만 그건 아니고 가벼운 정도-라고 상담에서 진단받았다. 그러나 문제는 밤에 벌어진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은 한 가지 생각에 꽂히기 딱 좋은 시간이니까. 난 왜 잘하는 게 하나도 없을까, 이렇게 패배자로 남을 바엔 없어지는 게 모두를 위한 길 아닐까, 그런데 또 죽을 용기는 없지 같은 부정적인 생각들이 꼬마 악마처럼 내 머리 위를 둘러싸고 빙글빙글 맴돈다. ‘그만둬!’라고 외치면 더 집요한 목소리로 ‘니 인생을 그만둬야겠지!’ 하고 이죽거린다.


그럴 때는 눈물이 그치지 않는다. 계속 울다 보면 베갯잎이 젖고, 눈물이 눈물을 부르고,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어제도 그랬다. 울다 울다 밖으로 뛰쳐나가서 정말 이 고통을 끝내야 하는 걸까까지 생각이 다다랐다. 나는 살고 싶었을까, 죽고 싶었을까? 생명의 전화를 눌렀으나 마침 수화기 너머엔 응답이 없었다. 결국 일어나 남편이 한창 게임을 하고 있던 서재 방문을 열었다.


키보드 위로 바쁘게 손을 놀리던 남편의 눈이 잠깐 커졌다. 분명 당시의 나는 너무 울어 몰골이 말이 아니었으리라. 그는 재빨리 게임을 멈추고 위로를 건넸다. 정확히는 위로라기보다 ‘어쩔 줄 몰라 한다’가 정확한 표현이지만 눈물에 절어 있는 와이프를 진정시키기 위해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 물을 건네고, 과자를 건네며 “야식 배달시켜줄까?” 같은 위로로 실소를 터뜨리게 했으니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개구리처럼 퉁퉁 부은 눈으로 아침에 일어나니 이번엔 아이들이 무언가 눈치를 챈듯했다. -늦잠 때문에 아침마다 전쟁을 치르던 아이가-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과한 애교로 나에게 안겼다. 작은 손으로 엄마의 손을 만지작거리고, 이제는 꽤 무거워진 몸으로 안기면서 주저 없이 사랑한다고 애정을 퍼부었다.


엄마이자 아내. 돌봄이 주업이 되어버린 입장에서 한계에 다다랐다고 생각했다. 성과가 뚜렷이 보이지 않는 ‘주부’라는 직업에서 도망치고만 싶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가족이 있고, 짐인 줄만 알았던 가족이 이제는 나를 떠받치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서로가 서로를 붙잡아주고, 그렇게 삶은 계속된다.



Photo by Brian Matangelo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코로나가 내게 준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