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가 1학년이 되었다. 학교생활 적응에만 정신이 없던 3월이 지나고 여유가 생기니 이제 '공부'라는 새로운 목표가 눈에 들어온다. 영어는 어느 학원을 보낼지, 수학은 무슨 문제집을 풀지, 수많은 예체능과 학과 외 활동 중에 어느 걸 취사선택할지, 검색하고 고민하고 선택할 일이 생각보다 많았고, 그래서 초1에 휴직을 많이 하나보다 싶었다.-이게 내가 가진 '검색병', '가성비병' 때문에 더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 있다. 당연히 모든 학부모가 그래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각종 카페 내 정보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며머리를 싸매던 어느 날, '스카이캐슬'의 초등 버전인 드라마가 나온다고 해서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린마더스클럽', 녹색어머니회. 내가 좋아하는 추자연 배우님에 평상시 관심 있던 주제라니! 본방사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참고로 나는 유튜브 전에도 TV를 잘 보지 않았다. 그러니까 십 년 만의 드라마 본방사수일 만큼 기대가 크기도 했다는 뜻이다-
드라마에서 주인공인 은표(이요원 분) 보며 '아 그래, 나도 처음엔 저랬지. 소신 있게 아이를 기를 줄 알았지.' 하며 공감대가 많아서 좋았다. 그러다 내 아이만 늦었다는 걸 확인했을 때의 철렁함도 그렇고. 그 때문인지 주변 엄마들 몇몇과 이 드라마를 화제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러다 점점 스토리가 격해지기 시작했다. 루이와 은표의 묘한 관계도 '그래, 드라마니까 심심하지 않게 넣어줘야지.' 했고, 진하(박규리 분)의 자살, 춘희(추자연 분)의 배신을 볼 때도 '드라마니까, 극적인 사건이 필요하니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춘희의 딸인 유빈이가 주인공의 아들 동석이를 성추행이라는 거짓말로 몰아세울 땐, 뭔가 아니다 싶었다.
다시 한번 인물관계도를 찬찬히 들여다보자 메인 여성 인물 중에 선역은 하나도 없었다.은표는 거성대 교수 임용 직전까지 간 수재라고는 하나, 멍청하게 춘희에게 약점을 술술 말해주고, 영재인 아들로 대리 자존감을 채우다, 성추행했다는 소문엔 몰아세우기에 바쁘다.-그에 반해 은표의 남편은 아들을 먼저 믿어주고, 아내의 불륜 의심도 쉽게 푸는 등 부처에 가깝게 묘사된다- 붙임성 좋아 보이던 진하는 실상 은표의 모든 것을 질투해 빼앗아 갔고, 인격장애처럼 루이에게 패악을 부리다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진하의 남편 루이는 구체적으로 묘사되지 않았으나 '그걸 다 받아주는 좋은 분'이라고 가정부가 증언한다- 패거리를 만들고, 은표의 약점을 이용해 자신의 위기를 모면하는 춘희는 말할 것도 없고, 은표의 사촌동생으로 등장하는 윤주(주민경 분)도 그렇다. 심심하면 사촌언니와 상위동 엄마들 사이를 박쥐처럼 오가고, 매화 한번 이상은 남편이 생활비를 충분히 가져다주지 않는다고 악다구니를 쓴다.-그에 반해 윤주의 남편 만수는 한 번도 언성을 높이지 않고 묵묵히 들어준다. 심지어 전 여자 친구인 춘희에게까지 친절하다-
더해서 유빈이는 어린아이의 발상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소름돋게 영악한 성추행 거짓말로 동석이를 코너로 몰고, 동석에게 묻어가던 모양새인 수인이는 유빈의 협박으로 인해 거짓말에 가담을 한다. 여자아이의 거짓말 한마디로 상위동 온 동네 여자들이 똘똘 뭉쳐 동석이네를 몰아내려 한다.(한때 화제가 된 '곰탕집 사건'을 비꼬는 것 같은 건 나의 비약일까)
물론 남자들 중에도 건우(영미의 남편, 흐름상 자살사건 범인으로 보이지만 너무 뻔해서 아닐 가능성이 많다)나 주석(춘희의 남편, 의사로 간호사 출신 아내를 하대 시 함) 같은 인물도 있지만 그들의 악함은 엄마들에 비하면 순한 맛에 가깝다. 원래 '엄마들'이 주인공인 드라마니까, 어쩔 수 없다고 믿고 싶다. 아이들까지 악역이 되었지만 일부러 그렇게 짜 맞추진 않았을 거라고 믿고 싶다.
이제 이 드라마는 '교육과, 그 사이에서 헤매는 엄마들의 고민'보다 '여자들의 암투, 배신'에 더 초점이 맞춰 흘러갈 듯하다. 그래야 드라마가 재밌을 테니까. '서울대 입학'이 최고의 성과인 엄마들의 세계만으로는 아마 시청률이 안 오를 테니까.-그런 의미에서 지금 '그린마더스클럽'은 학부모와 학부모 아닌 시청자 모두를 놓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한때 알람까지 맞춰가며 이 드라마를 본방 정주행 하려 했으나, 나는 이제 그만둬야겠다. 막장드라마는 내 취향은 아닌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