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편하게 마신 가향 홍차. 하니 앤 손스는 시월에 열리는 티 페스티벌의 주요한 스폰서로, 창립자의 두 아들인 마이크와 폴이 직접 부스에 와서 차를 우려 준다. 하니 앤 손스 가향은 산들바람처럼 가벼운데, 패리스 역시 바닐라-초콜릿-캐러멜의 삼중창이지만 마리아쥬 프레르의 웨딩 임페리얼에 비하면 한층 부드럽고 은근하게 다가드는 맛. 루즈리프가 아니라 새챗(sachet)이라 손님 대접하기도 편하고 오후에 나른할 때 애프터눈 티로도 무난하여 좋았다.
나의 최애 페레니얼 티룸에서 건진 올해 히트작. 허벌티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건 맛있게 마셨다. 물을 부으면 황도와 살구 향기가 자욱하게 퍼진다. 한여름 냉침으로도 제격이다.
커클랜드에 새 찻집이 문을 열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슬프게도 얼마 전에 문을 닫은) 캡힐의 레메디 티처럼 모던한데 그보다는 훨씬 발랄하고 귀엽다. 찻잎도 질이 좋고 가향도 나쁘지 않다. 호지차와 홍차 블렌드를 조합했다고 하는데, 바디감도 제법 묵직하고 호지차 특유의 탄내와 견과류의 구수한 맛이 적절히 섞여 쌀쌀한 겨울 저녁 속을 데우기에 좋다. 카페인은 꽤 되는 듯. 이 브랜드의 가향차인 블루베리 필즈 역시 훌륭하다.
올해도 갔다, 비어페스트. 트라피스트 에일에 집중했던 작년과는 달리 이번엔 날씨에 맞춰 가벼운 과일맥주로 목표를 잡았다. 린데만 복숭아, 데슈트 패션푸르츠, 알마냑 체리 도그패치 등등 여러 아이템을 죽 돌았는데 이 녀석이 취향 직격. 오이에 진에 팜하우스라니! 이름만 들어도 상쾌하다. 계절을 좀 타는 맛이지만 따가운 햇살을 등지고 새파란 잔디에 앉아 있다면야 더 바랄 게 있겠습니까.
초여름에 놀러 간 레벤워스 숙소 귀퉁이에 조그만 브루어리가 딸려 있었다. 별 기대 없이 시켰는데 흑맥주 샘플러가 아주 좋았다. 레벤워스에서 제일 유명한 아이시클 브루어리보다 훨씬 맘에 들었다. 이름도 "스타우트", "포터" 등으로 단순했는데 그중 제일 풍미가 다채로웠던 게 이것.
물론 뉴욕에서 마셨다. 르 베르나댕(!) 런치 코스에서 반주로 시켰는데, 해산물에 아주 훌륭한 페어링은 아니었지만 그 자체로 돋보이는 수작이었다. 코리앤더와 시트러스를 가미한 단맛은 헤페바이젠과도 비슷하지만 드라이하게 떨어지는 뒷맛이 깔끔해서 좋았다.
칠월의 로제. 니유시우는 코르시카산 포도 품종으로 산죠베제의 한 갈래라는데, 바닐라와 백단향에 이어 부케가 풍성하게 코끝을 자극하며 깔끔한 산미로 끝을 맺었다. 역시 취향 직격. 페어링이 아니라면 셰닌 블랑이나 샤블리 같은 스타일을 선호하는 편이라 아주 만족스러웠다.
나파 밸리에 놀러 갔을 때 오후 늦게 들렀던 와이너리. 인상이 좋았다. 스태프가 친절하고 가격도 무난하며 와인은 개성이 뚜렷한 편이었다. 당일 테이스팅 메뉴 중에서는 까베르네와 진판델이 특히 훌륭했는데, 그중에서도 진판델은 붉은 과일과 자두의 풍미에 이어 흑설탕 스파이스가 선명하게 떠올라 흥미로웠다.
단골 샵에 테이스팅 하러 갔다가 몇 병 없는 내추럴 와인이라 하여 호기심이 동해 구입했다. 내추럴 와인이란 유기농 포도를 사용하여 이산화황이나 효모 등을 첨가하지 않고 자연발효 과정을 거치도록 한 와인으로, 화학물질을 첨가하지 않았을 뿐인 유기농 와인보다 훨씬 기준이 까다롭다. 까베르네답게 블랙베리 잼에 검은 체리가 압도적이었으나 특유의 후추향은 거의 없었고 삽미도 적은 데다, 묵직한 바디감에 단맛이 강해 맘에 꼭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