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en 잡은 루이스 May 14. 2024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잘 크고 있으니까요.

"도대체 언제 키우냐고요?"


며칠 전 금요일, 하루 휴가를 내고 동해에 다녀왔습니다. 후배 가족들과 함께 미리 날짜를 맞춘 뒤 구체적인 계획 없이 떠난 특별하면서 평범한 여행이었죠. 무슨 차가 그리도 많은지. 서울 도심에서 동서울 톨게이트를 빠져나가는 것만 거의 1시간 넘게 소요되었답니다. 뒷자리에서 부스럭대며 지루해하던 아이는 1년 전 속초로 여행을 갔을 때처럼 비슷한 말로 재촉했습니다.

"아직도 멀었어? 언제 도착해? 저기가 바다야?"

"바다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곳보다 훨씬 멀리 있어. 그러니 조금 더 가야 해"

“에휴, 어쩔 수 없지”

책도 보다가 바깥 구경도 해보고 태블릿도 보다가 음악도 들어보고 쿨쿨 잠에 빠지기도. 그렇게 약 3시간 넘게 고속도로를 달려 동해 어느 해변에 도착했습니다. 오랜 시간 차 안에 갇혀만 있다가 해변가에 풀어놓으니 고삐라도 풀린 듯 백사장 모래 위를 마구 달렸더랬죠.

"조심해. 다칠라"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후배 가족들도 바다에 도착해 완전체가 되었습니다. 초등학교와 학원에 다니느라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던 아이들 그리고 매일 반복되는 업무에 치이면서도 아이들도 챙기고 집안일도 해야 하는 엄마와 아빠의 신나는 휴일이 시작된 것이죠. 부서지는 파도와 장난을 치고 모래성을 쌓았다가 부수기를 반복하며 특별한 놀잇감 없이도 서로 해맑게 웃으며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을 보며 (우린 서로) ‘애들 참 많이 컸다'며 다르지 않은 미소를 짓기도 했죠.

"얘들아, 이제 슬슬 들어가야지"

내리쬐는 햇살이 점점 뜨거워지던 어느 금요일 오후였습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지금까지 쭉 잘 살고 있지만 다른 친구들보다 아이를 조금 늦게 가졌던 터라 나이 차가 있기는 합니다. (TMI지만 계류유산 경험이 있긴 했습니다) 예전에 주변 사람들이 종종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이가 몇 살이에요?"

“아 이제 초등학교 들어갔어요"

"아이고, 언제 키우실 거예요? 한참 멀었네요" (우리 애는 중학생인데)

친구들도 가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런 이야기를 던지곤 합니다.

"야, 우리 딸은 사춘기도 넘었어. 이제 '초딩'이면 대체 언제 키우냐? 빨리 키워. 골프나 치러 다니자"



바닷가 앞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시간이 느리게 갔으면 좋겠다는 뜬금없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 모습만으로도 그저 아름다웠거든요. 눈에만 담기에 아까울 정도로. 잔잔한 파도와 조금씩 불어오는 바람, 따사로운 햇살과 여유롭게 비행하는 갈매기 그리고 아이들의 '까르르' 웃음소리까지 아주 완벽한 시간이었습니다. 지금 주어진 순간을 조금씩, 천천히 또 느리게 담아두고 싶은데 얼른 키우라고요? 아까워서 그렇게는 못하겠습니다.


아이는 여전히 엄마 그리고 아빠를 찾습니다. 몸집만 한 가방을 둘러메고 학교를 가는 모습은 아직도 어색합니다. 하지만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졌습니다. 벌써 그렇게 자랐으니까요. 언젠가 어느 분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얼른 키운다고 키워지나요. 그냥 아이가 자라는 모습 많이 많이 담아두세요. 저는 그렇게 못했거든요. 바쁘다는 이유로. 예전에는 어땠는지 생각도 잘 안 나요. 그래서 좀 아까워요.“

그래서 저는 아이가 한 뼘씩 성장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또 영상으로 조금씩 차곡차곡 담아두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니 언제 키울 거냐며 걱정도 재촉도 하지 말아 주세요. 지금 이 순간에도 무럭무럭 잘 크고 있으니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꼭 그렇게 키워야 하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