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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n 잡은 루이스 Sep 06. 2021

꼭 그렇게 키워야 하나요?

당신의 자녀는 어떻게 자라고 있습니까?

※ 아래는 영화 <4등>에 대한 내용이며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참고해주세요!


수영을 배우는 아이 준호(유재상)는 어느 대회를 나가든지 늘 4등이었다. 아이의 엄마 정애(이항나)는 아들의 이름보다 "야! 4등!"이라며 다그치듯 호통을 친다. 보다 못해 잘 가르친다고 소문난 코치를 수소문해 찾아간다. 아시아 신기록을 낼만큼 전도유망한 수영 국가대표였지만 통 자기 관리가 되지 않는 탓에 명예도 가능성도 자신의 천부적인 실력도 모두 져버리게 된 광수(박해준)가 바로 그 '소문난 코치'다. 광수가 가르치는 방법 중에는 '채찍'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말 그대로 '체벌'이다. 자신도 그렇게 배웠다고 한다. 고되지만 체계적인 훈련과 악행의 답습은 명백히 다르지만 광수는 준호에게 이를 고스란히 전한다. 빛나는 메달, 거대한 기록 뒤에 숨겨진, 선수들의 노력과 끊임없는 훈련 그리고 따가운 체벌이 공존했던 시대를 살아온 것이다. 보상은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시퍼렇게 멍든 잔혹함은 깊게 베인 상처처럼 잘 지워지지 않음에도 엄마 정애는 4등 이상의 좋은 기록, 즉 '메달'과 '순위'로 그 상처를 가리려고 한다.

"저는 그 상처, 메달로 가릴 거예요"

채찍을 들고 체벌을 하는 광수나 호통만 칠 뿐 상처의 흔적도 아들의 아픔도 모른 척 전혀 괘념치 않는 엄마 정애 모두 '가해자'가 될 뿐이다. 물속에서 홀로 분투하는 준호는 체벌과 상처의 아픔을 오롯이 감내한다. 그러니 (결과가 무엇이든) 준호는 '피해자'다. 울분을 토해내는 엄마와 달리 아빠 영훈(최무성)은 "수영은 그저 취미로만 하라"고 한다.

어느 날 준호가 간발의 차이로 2등을 하게 된다. 엄마는 다소 실망한 모습을 하면서도 수영장이 떠나갈 듯 소리친다.

"우리 아들, 거의 1등! 거의 1등"

매번 4등만 하던 아이가 2등을 했다면 '자랑스러운 2등'이 될 법도 하지만 엄마의 시선에는 매우 안타까운 '거의 1등'에 불과한 셈이다.

그날 준호는 매우 기뻐한다. 색연필로 그려두었던 메달 그림 즉 오래된 희망 위로 진짜 메달이 올라가는 순간이 아니던가. 아빠도 엄마도 그리고 동생도 한 자리에 모여 자축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준호의 상처를 알아차린 아빠는 바로 코치에게 달려가 '때리지는 말라'고 한다. 폭행은 정당화될 수 없다. '체벌'로 인한 상처를 메달로 가릴 수나 있을까? 체벌과 상처에는 화를 내지만 결과(메달)에 기뻐했던 아빠는 멀리서 바라보는 '방관자'일뿐이다.   

수면 아래로 비치는 햇살은 준호에게 희망과도 같은 것. 우리 아이들에게 빛나는 희망이란 무엇일까? 그저 1등을 해서 반짝이는 메달을 목에 거는 것?

준호는 묻는다.

"1등이 되면 기분이 어때요?"


정지우 감독의 영화 <4등>  출처 : Daum 영화




아직은 책 보다 장난감이 더욱 친숙한 우리 아이를 바라보며 '지금까지 건강하고 무탈하게 자라준 것'만 해도 감사하다고 느끼며 살고 있다. 또래 아이들보다 말이 느리고 기저귀 떼는 시기도 수개월이나 늦긴 했다만 응급실 한번 가보지 않고도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으니까 말이다. 사실 책 한 권도 길게 보지 못하는 아이는 상어나 공룡 장난감 그리고 유튜브 같은 미디어에 더욱 많은 시간을 보내곤 한다. 어린이집을 제외하고 어디 맡겨둘 곳 없는 맞벌이 부부에게 이는 너무나 불가피한 선택이겠으나 때론 평범한 핑계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주말에는 '집콕'보다 가급적 어디론가 데려가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해주려고 한다. 주말마다 이렇게 다니는 것 자체가 피곤한 일이지만 일상을 탈피할 수 있는 주말 나들이가 서로에게 힐링이 될 수 있다고 느낀다.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 동안 아이는 잠을 자며 재충전을 한다. 체력이 남은 아이는 또다시 남아있는 에너지를 발산한 뒤 잠에 든다.


경험이라는 것은 매우 소중하다. 늘 그렇게 느껴왔다. 하지만 '노블레스 노마드'라는 키워드를 품고 살았던 나는 그 단어 앞에서 사실상 틀에 박힌 삶을 살아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순위라는 것에 발목 잡힐 때도 있었다. 사실 내가 살아온 사회가 무조건 그걸 요구했다. 누군가에겐 목숨보다 소중한 숫자였다.


또래 아이를 키우고 있는 회사 후배는 "지금 한글 공부하죠?"라고 물었다. 그러면서 지금도 늦은 거라며 한글은 물론 영어도 해야 한다고 학습지 종류를 자연스럽게 읊었다. 필요하면 반드시 체벌해서라도 교육시킬 것이라며 (내 입장에선 맹목적으로 보이는) 학구열을 불태웠다. 남의 자식이니 그저 알아서 키우는 것이라지만 난 그에게 '꽃으로도 때리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아이는 이제 4살이다.


난 학습지를 검색하는 대신 아이와 함께 주말을 보낼 '장소'를 찾았다. 계곡에서 작은 물고기를 잡아보기도 하고 물장구를 치며 놀기도 했다. 언젠가 토끼에게 먹이를 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새로 산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며 수십 장의 종이를 가득 채우기도 했다.


색연필을 사다가 그림을 그렸다.
시원한 계곡에 발을 담그고 아주 작은 피라미들을 잡아보기도 했다.
귀여운 토끼에게 풀을 주니 냉큼 받아먹는다.


재작년인가, 친한 친구와 통화를 했다. 강남으로 이사를 간단다. 단순한 '인 서울'이 아니라 강남 8학군을 노리고 어렵게 전셋집을 구했단다. 몇십 년 동안이나 고향을 떠나지 않았지만 아이들 교육이 우선이라며 큰 결심을 했다고 한다.

"너도 이사 와야 된다. 얼마 안 남았다. 애들 크면 결국 다 그렇게 된다"

언젠가 지상파에서도 아이들의 학습 태도와 부모의 교육열을 다룬 '인포테인먼트'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아이의 건강과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입모양은 서로 유사해 보였지만 결국엔 하나하나 조금씩 다른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잘 먹고 건강하니 이제 공부해야 할때!”

“학교에 가기 전 선행학습이 필요한 시기”


건강하게 웃으며 자란 아이들의 미래 그리고 여러 곳의 학원을 시간을 잘게 쪼개며 다니는 아이들의 미래는 어떻게 달라질까? 기계처럼 학원을 다니고 강남에 집을 구해 8학군에 들어가면 소위 '일류'라고 말하는 대학에 가게 되는 것일까? 그럼 그 다음은 어느 곳으로 향해있을까?


'좋은 것을 입히고, 좋은 것만 먹이려는' 부모들의 마음은 대부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비록 4등이어도 아니 그보다 못한 것이었어도 함께 기뻐하거나 위로해주거나 격려해줄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지 않을까? 영화의 대사처럼, 겉으로 보이는 상처를 1등이라는 숫자로 가릴 수 있다고 하지만 마음을 할퀸 말 한마디는 채찍이 되고 그 안에 멍든 상처는 결코 지울 수 없을 것 같다.

친구처럼 강남으로 이사 갈 일도 없을 것이고 단언컨대 아이에게 채찍을 들고 체벌을 할 일도 없을 것이다. 누군가는 자랑스럽고 대견한 '엄친아' 혹은 '엄친딸'이 되겠지만 나도 우리 아이도 누군가의 엄연한 '엄친아'고 '엄친딸'이다. 내가 이루지 못한 1등이라는 걸 무작정 아이에게 떠넘기고 싶지 않다.



※ 모든 부모가 다 같을 순 없겠죠. 아이들 역시 다른 환경에서 자라고 있지만 설령 같은 환경이라 하더라도 모두가 다를 것이라 생각됩니다. 다만 어떠한 부모 밑에서 어떻게 자라는지 그리고 밥상머리든 공부방이든 어떤 식으로 교육을 하는지에 따라 또 달라질 수 있겠죠. 우리 아이 역시 아직은 어리지만, 그리고 친구의 한마디처럼 '애들 크면 그렇게 된다'라는 말이 진리일지라도 최소한 금메달이자 1등을 마구 요구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그게 정답은 아닐테니까.


“정말 꼭 그렇게 키워야 하나요?”


영화 <4등> 그리고 이번 도쿄올림픽의 금은동 메달의 색과 4위라는 위치, 그리고 최하위에서 선전한 분들의 노력을 보며 문득 생각난 글을 (어쩌면 지나칠 정도로) 개인적인 의견을 담아 ‘감히’ 작성해본 글입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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