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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n 잡은 루이스 Oct 06. 2020

어느 날 문득 아이가 외로워보였다

집에 함께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욱 쓸쓸하게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일까?

코로나 위기를 겪고 있는 우리 삶의 풍경이 달라진지도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을 향해간다. 모바일 시대의 필수품인 휴대폰을 손에 꼭 쥐고 출퇴근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반쯤 가린 마스크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생필품이 되고 말았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한적해진 도심 풍경은 물론이고 직장인들의 재택근무와 화상회의, 학생과 교사들을 잇는 원격수업까지 전례 없는 경험을 하게 됐다.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시간이 지속되니 어색하고 답답한 언택트 문화도 서서히 지쳐가는 모양새다. 우리의 환경과 문화, 현재 경험하고 있는 지금 이 시간 모두 이렇게 크게 달라질 줄이야. 

태어난 지 1200여 일을 훌쩍 넘긴 아이는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로 진입하면서 연일 '집콕'을 해야 했다. 엄마와 아빠는 각자 컴퓨터와 노트북을 펼쳐두고 하루 종일 업무에 시달려야 했다. 사무실 환경과 크게 다르긴 했지만 집에서도 어느 정도 업무가 가능한 수준을 이룩해냈다. 5G에 육박하는 네트워크와 적절하게 잘 돌아가는 운영체제, 한 번도 꺼지지 않는 모바일 등 4차 산업혁명이 이룩한 첨단 인프라가 아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무 환경의 가장 큰 변화 중에서 (설명할 수 없지만) 누구나 알 법한 장벽은 바로 '아이'였다. 아침에 눈을 비비고 일어나 아이의 먹을거리를 제일 먼저 챙겨준다. 세수를 하고 나와 후줄근한 차림으로 노트북을 펼치고 업무를 준비한다. 오전 시간 업무를 보는 동안 아이는 무엇을 해야 할까? 거실에 뿌려진 장난감을 두 손 가득 쥐고 소리를 지르며 뛰어노는 아이의 모습이 재택근무라는 풍경 위로 굵고 짙게 새겨진다.

처절하게 업무 중인 내 노트북과 열렬하게 놀이 중인 아이의 공룡들.

재택근무라 하면 공간만 다를 뿐 평소의 루틴대로 사이클을 동일하게 가져간다. 회사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하루 이틀 점심시간이라는 정해진 시간에 맞춰 아이를 데리고 나간 적은 있지만 멀리 갈 수도 없는 노릇이라 고작 집 앞에서 뛰어놀도록 풀어두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마저도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에 맞춰 데리고 들어와야 하니 이는 집에 다시 갇히는 느낌이랄까? 어제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 변신로봇이라 하더라도 늘 같은 색깔에 같은 모습이니 지겨울 대로 지겨워졌을 테고 삼시세끼 먹는 음식 또한 큰 변화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라 15년간 감금되어 군만두만 먹었던 <올드보이>의 오대수가 떠오르기도 했다. 투정을 부리고 놀아달라고 떼를 쓰는 아이에게 어쩔 수 없이 생일선물로 받았던 거대한 아이패드 프로를 쥐어주기도 한다.

아이와 유튜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출처 : ABC news

"어린아이들에게 유튜브나 TV를 오랜 시간 보여주면 안 됩니다."

수도 없이 들은 말이지만 우리 아이는 이미 유튜브에 눈을 뜨고 말았다.

'고작 4살짜리 아이에게 유튜브라니.'

이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바쁜 날이면 여기저기 업무에 필요한 메일을 보내고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업무 카톡을 해야 하며 필요에 따라 전화 통화까지 이어지니 업무와 육아를 병행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아니 그렇다고 10분도 놀아주지 못한다는 것은 비겁한 변명입니다!'

그렇다. 약간의 여유도 없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업무 중 충분히 생길 수 있는 틈이 생기면 아이에게 다가가 장난감으로 함께 놀기도 한다. 힘겹게 풍선을 불어 놀기도 하고 형형색색의 클레이를 손에 잔뜩 묻히며 장난을 치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와 노는 것도 10분~20분을 넘기지 못한다.   

시간이 흐르고 저녁노을이 지는 그 어느 순간이 되면 금방 먹었던 것 같은 점심을 치우기 위해 주방으로 다가간다. 다시 저녁거리를 준비해야 하는 '삼시세끼'의 삶이 이렇게 부담스러웠던 것이었던가? 심지어 점심도 대충 먹었던 난 마냥 배가 고프다. 예능 프로그램을 볼 땐 그냥 '뚝딱' 만들어지는 것 같았는데 아이와 함께 하는 집콕 생활이자 재택근무는 웃고 즐기는 예능 프로그램이 아니라 교양 다큐 '인간극장' 수준이었다.

삼시세끼 어촌편 중에서   출처 : tvN

다음 날도 그리고 그다음 날도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자리에 앉아 장난감을 손에 쥐고 유튜브를 보다가 잠들어버린 아이를 바라보게 되었다. 유튜브 속에서는 아이가 자고 있는지도 모른 채 크리에이터 유라 언니가 신나게 웃고 떠드는 중이다. 지친 얼굴로 새근새근 자고 있는 아이를 보니 (우리와 함께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로워보였다. 그리고 미안했다.

아이와 함께 보내는 재택근무는 아이의 웃음소리를 바로 옆에서 들을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장난을 칠 때마다 흥에 겨워 노는 아이를 보니 그동안 왜 그렇게 놀아주지 못했나 후회도 해보고 반성도 해본다. 에너지 넘치는 아이가 제대로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을만한 시간과 공간이 부족했던 것이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코로나 여파가 조금 잦아들자 교대로 재택을 하기 시작했고 아이도 어린이집 등원을 겨우 시작했다. 아이는 각박했던 집콕을 벗어나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날 수 있게 됐다.

집안은 다시 고요해졌다. 흩뿌려진 장난감들은 다시 제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식탁 위에는 휴대폰과 노트북만 존재한다. 집에서 이뤄지는 업무 환경의 변화 중 아이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장벽이 아니라 집 안을 가득 채우는 행복 에너지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저녁이 되면 다시 집안이 시끄러워진다. 노트북은 굳게 닫히고 잠깐 제자리를 찾았던 장난감들이 이리저리 날뛴다. 하하호호 웃음소리가 고소한 저녁 반찬의 향과 함께 어우러진다. 

코로나가 끝나면 아이를 데리고 어디론가 떠날 그 언젠가를 상상해본다. 업무에 지친 노트북과 유튜브가 차지했던 아이패드를 집어던진 채 아이와 뒹굴며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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