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 란 Jan 29. 2023

제주살이 탕진잼이
우리에게 남긴 것

제주살이 1년을 마치고 

365일을 고스란히
느껴본 적이 있나요?




1년의 제주살이가 끝이 났다. 1년 동안 총 제주시의 4곳 조천, 한림, 애월, 신제주에서 살아봤다. 정확히 도심 밖에서 6개월, 도심에서 6개월을 꽉 채운 1년이였다. 제주시에서 생활하며 서귀포시로 여행을 다녔다. 6개월은 제주 여행을 하면서 지냈다면, 나머지 6개월은 제주 도민처럼 지냈다. 



1월에서 6월까지 조천, 한림, 애월에 집을 마련하고 여행하듯 제주를 탐험했다. 반년까지는 제주가 낯설었고 그래서 설레었고 그래서 좋았다. 그리고 반년이 지나면서부터는 정착하고 싶어졌다. 아이 유치원이 가까운 도심의 신제주에 1년 월세로 투룸을 계약했다. 제주에만 있다는 신기한 1년 월세. 1년을 다 채우지 못할 것임에도 떠돌이 삶이 지겨워 덜컥 계약을 했다. 4월 말에 계약을 하고는 6월 말에야 정식으로 이사를 했다.



제주 도심 라이프를 제대로 시작하면서 이제야 우리 집 주변으로 우리만의 환경을 만들어 나갔다. 낯선 곳이 내 공간이 되는 시간이 쌓일수록, 그곳을 애정하게 되었다. 가끔씩은 정말이지 이곳이 우리의 진짜 집인 양 내가 원래 살아왔던 곳을 잊기도 했다. 내가 사는 곳이 우리 집이 된다는 낯선 경험들이 신선했다. 그럼에도 이따금씩 자주 멍했고 자주 제주살이의 끝을 그렸다. 이제 이곳이 현실과 일상이 된 듯 새로운 곳을 갈구하게 되었다. 자주 낯선 곳(원래 우리 집)을 그렸다. 돌아갈 때가 되었다고 온몸으로 느꼈다. 



12월 말, 1년을 다 채우지 못했음에도 다음 세입자를 쉽게 구했다. 집을 비워줄 날이 우리의 제주살이 마지막 날이 되었다. 모든 짐이 빠져버린 투룸 집을 보면서 한치의 미련도 없었다. 잘 살았고 잘 지냈다. 











집을 비운 날 제주를 떠날 비행기는 예상치 못한 폭설로 결항이 되었다. 낯선 호텔방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우리는 간신히 밤 비행기를 구해 도망치듯 제주를 떠났다. 제주살이의 마지막 여운을 느낄 새도 없이. 자정이 다되어 도착한 우리 집은 어제도 왔던 듯 익숙했다. 바닥은 냉골이고 닫아놓은 창문 탓에 공기는 탁하지만 '모든 게 그대로'라는 안락함이 와락 느껴져 모든 것이 좋았다. 



좀처럼 올라가지 않은 집의 온도로 밤새 두꺼운 잠옷과 이불을 돌돌 말고 잤지만, 그럼에도 모든 것이 행복하고 감사했다. 한바탕 환기와 청소를 마친 몸으로 내 집, 내 방, 내 침대에서 누우니 절로 감탄이 새어 나온다. 아, 좋다. 우리 진짜 돌아왔구나. 



다음날 눈을 뜨니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크리스마스에도 제주에 있었다면 조금 우울했을 텐데, 내 집에서 크리스마스를 맞노라니 산타의 선물이 따로 없었다. 집 정리를 하고 탁송해 온 차를 받아 나머지 짐 정리를 하면서 며칠을 보냈다. 그동안 제주에서의 삶이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새로운 환경, 아니 익숙했던 그 환경으로 돌아오니 1년간의 지난 삶이 긴 꿈을 꾼 듯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제주에서의 하루는 무척 길었는데, 내 집에서의 하루는 무척 짧다. 이것이 여행과 현실의 차이일까. 우리는 빠른 속도로 모든 것에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다. 곧 취학을 앞둔 아이의 예비소집일을 다녀오고, 나는 회사에 복직했고, 부모님과 가족들을 만났다. 집으로의 완전한 복귀에 모두들 반가워했고 신기했으나 곧 모든 게 당연해졌고 빠른 속도로 모두들 우리가 제주살이를 했던 것을 잊어갔다. 심지어 우리조차도. 












삼 주가 지나고, 이제야 아득해진 마음으로 우리의 제주살이를 나만의 방식의 정리해 본다. 정확히 1년, 그 1년의 시간이 우리에겐 무엇이었을까. 우리나라에서 떠날 수 있는 가장 멀고 낯선 섬. 연고하나 없던 그곳에서 살아본 1년간의 탕진의 시기. 돈도 시간도 마음껏 탕진하며 살아본 그 경험. 과연 그 경험이 유의미한 것인가. 그 질문 앞에서 오랫동안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았다. 



실로 거대한 돈을 썼고, 시간을 마구 흘려보냈다. 부동산 하락으로 우리 집은 떠나기 전 보다 무려 30%나 떨어졌고 더하여 돈까지 쓰고 왔으니 자산상황으로 보면 마이너스에 마이너스가 된 셈이다. 심지어 1년 동안 자기 계발이니 커리어에 도움 될 만한 것은 1도 하지 않았다. 재산과 능력 발전에 있어서 유익한 건 하나도 없는 이 시기가 도대체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일까. 



제주살이를 미화하고 찬양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많은 여행기가 말하는 다녀온 후 거창한 깨달음과 더 나은 내가 되었다는 말도 나는 할 수가 없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우리는 1년을 1년답게 살아봤다. 1년은 너무나 긴 시간이었다. 그 긴 시간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던 시기였다. 사계절이 그토록 길고 또 풍성했다는 걸 왜 몰랐을까. 현실을 사느라 시간을 빠르게 보냈다. 제주살이는 어떠한 의미에서는 현실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매일이 매 순간이 더디게 흘렀다. 모두들 한 해를 마무리하며 말했다. '시간 참 빠르다'. 나는 이 말에 처음으로 공감하지 못했다. 나에게 2022년은 너무나 긴 시간였다고. 너무나 많은 것을 했다고. 하루에 기억할 만한 일이 너무나 많았다고. 이제야 1년의 물리적인 부피를 이해했다고. 우리는 그동안 그 사실을 잊고 산 것이라고.



나는 이 사실을 두고두고 기억할 테다. 그러면 앞으로 빠르게 흘러갈 나의 나날들이 조금은 덜 두려워지니까. 이 글을 마무리하고 보니, 우리의 탕진잼의 시기가 정말로 끝이 났음을 실감한다. 누구나에게 꼭 해보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온 우주가 도와 1년 동안 후회 없는 시기를 보냈음에 감사하다. 내 인생의 가장 찬란한 순간이였다.   

이전 11화 시시한 일상이 우리를 구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