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뒤태, 안녕하신가요
오늘은, 내 인생의 가장 젊은 엉덩이
내가 한결 같이 신경 쓰는 신체 부위 중 하나는 바로 엉덩이다. 힙이라고 말하면 조금 세련되어 보일까. 엉덩이라는 부분은 여자 건 남자 건 사람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 아닐 수가 없다. 예쁜 가슴과 애플 힙 중 딱 하나만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후자를 택하겠다. 여자는 아름다운 가슴선과 골반 라인이, 남자는 벌어진 어깨와 작고 옹골찬 힙이 대표적이다. 결국 여자와 남자 모두에게 엉덩이는 '미적 기준으로' 아주 중요한 신체 부위가 된다.
그렇다 보니 나는 엉덩이를 이만저만 신경 쓰는 게 아니다. 키도 크고 골반도 넓은지라 학창 시절부터 '슈퍼 궁둥이'였다. 얇고 마른 동생이 자주 왕 궁둥이라고 놀리고, 아빠는 내가 아기 때부터 엉덩이가 펑퍼짐하고 컸다고 놀려댔다. 십 대 때는 다행스럽게도 교복으로 가려지는 게 좋았고, 어쩌다 사복을 입을 때면 엉덩이부터 가리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치장을 시작한 이십 대부터 스키니진의 대 유행으로 좋든 싫든 엉덩이를 드러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때부터 외출 전에 커다란 전신 거울 앞에서 작은 손거울로 내 뒤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 시절 내 패션의 정석은 상의는 루즈한 박스티, 하의는 스키니 진이 되었다. 밑위가 유독 짧은 스키니 진 안으로 티를 살짝 넣고 엉덩이 뒷부분은 모두 윗옷으로 빼놓아 엉덩이를 살짝 가린다. 다 가리면 좋고 반 정도만 가려도 일단 외출하는데 자신감은 붙는다. 어쩌다가 윗 옷이 짧아 내 엉덩이의 전면부가 다 보이게 되면 그때부터 그날 하루는 거대 엉덩이 괴물이 된 듯 신경이 곤두선다.
근본 원인을 탈피하고자 힙업 운동도 꽤 열심히 했던 것 같다. 특히나 지금의 남편을 만났던 대학생 시절부터는 더욱 공을 들였다. 나는 큰 골반 탓인지 엉덩이가 너무나 컸다. 그 당시 슈가 출신 아유미가 "엉덩이가 작고 예쁜 나 같은 여자"라는 노래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뜨끔 했다. 나는 절대 작은 엉덩이를 가질 수가 없었다. 슬펐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나에 비해 그 사람은(당시에 남자 친구)은 너무나 작고 탄탄한 힙을 가졌다. 워낙에 엉덩이를 집중해서 보는 사람이기에 사람의 뒤태만 봐도 나는 알 수가 있었다. 그 앞에서 자꾸만 수그러들어 짧은 치마만 입고 데이트를 나온 적도 많았다. 그래도 다행히 엉덩이를 감춰가며? 무사히 결혼까지 잘했다. 여전히 엉덩이는 큰 치부지만 그런대로 힙업 운동도 느슨해지며 살아갈 때 즈음 놀라운 사실을 듣게 됐다. "나는 네가 바지 입을 때가 더 좋았어. 그리고 나는 원래 어깨 넓고 엉덩이 큰 사람을 좋아해" 이게 무슨 말인가. 마치 나는 얼굴 큰 여자를 좋아해, 푸근하고 인심 좋게 생겼잖아와 같은 돌려 까기 같은 말을 진솔한 얼굴로 하고 있다.
시간이 한참 흘러 여러 번 그 말을 반복해 듣자, 제법 그 진정성을 인정했다. 그리고 열심히 뒤태가 괜찮은 바지를 엄선해서 사기 시작했다. 물론 다른 운동보다는 힙업에 여전히 공을 들이면서. 바지의 형태에 따라서 내 힙선을 보정해주면서 그럴듯한 엉덩이 라인을 만들어주는 바지를 찾으면 마르고 닳도록 아껴입었다. 얼마 전 옷 정리를 하면서 수많은 바지를 정리하며 확신이 서지 않을 때 나는 단 한 가지 조건만 내세워 남길 것과 비울 것을 가렸다.
이 바지를 입고 뒤태가 당당한가! 그 질문 앞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내 바지들만이 명예롭게 자리를 지켰다. 오랜 세월 수십 년간 사무직의 엉덩이가 되어가고, 운동할 시간은 사라지고 세월에 따른 중력으로 내 엉덩이는 오늘보다 내일 더 펑퍼짐해질 것이다. 뒤태의 자신감에 밀려 버려지는 바지들을 보며 다시금 엉덩이에 집중해보자고 속절없는 다짐을 한다. 잊지 말자, 나는 오늘이 가장 젊은 엉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