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의 끝사랑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by 이 란






"다음 생에도 너랑 또 결혼할 거냐고 묻더라?"



그래서 "응"이라고 대답했어. 그가 나에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상대가 오 찐사랑이라고 마구 놀려댔지만 자기는 별 상관없다는 듯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는 것이다. 기대 반 궁금증 반으로 나 역시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너랑 또 결혼해야 우리 아이를 만나지"

이게 말이야 방구야. 이럴 줄 알았어. 그러니까 내가 아니라 아이를 위해서 나랑 또 결혼한다고? 세상이 생각하는 그러한 약간의 대답을 조금이나도 기대한 내가 바보군. 그는 역시나가 역시나한 사람이다.



그런데 사실 질문이 잘못되었다. 다음 생은 당연히 다른 사람과 다른 사랑을 해야 한다는 대명제까지 갈 것도 없이, 이번 생을 끝까지 서로가 함께 할 수 있는가를 묻는 게 더 현실적이다. 서류에 도장을 찍고 법적으로 묶인 게 하나도 없는 이별만이 진짜 이혼일까. 사랑의 유통기한은 이미 지났고 이젠 살아온 정과 우리 사이의 놓인 숙제들을 함께 해결하는 전우애 그리고 오랜 관성으로 무뎌져버린 귀차니즘들을 대충 버무려져서 부부라는 관계로 던져놓는다. 그래서 이번 생은 대략 이러한 모양으로 이렇게 흘러갈 것임을 알기에 사람들은 다음 생의 이 관계에 대해 그렇게 질문하고 생각하고 대답하고 그러는 걸까.




그래서 우리들은 대부분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기를 원한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슬픈 카페의 노래 | 카슨 매컬러스)




사랑에 있어서 처음은 사랑하기다. 사랑하고 싶은 상대를 찾았고 발견했고 빠졌고 들뜬다. 각자 개인의 사적이고 은밀한 취향에 맞는 누군가를 사랑하기 시작한다. 두렵지만 설레는 이 혼란스러운 사랑이라는 감정을 그렇게 발견한다. 그리고 사랑을 받는다. 내가 사랑한 사람이 나를 봐주고 다정하게 대해주고 함께하며 기쁘다. 사랑의 주기와 받기를 동시에 시작할 수도 앞뒤의 순서가 바뀔 수도 있지만. 사랑에 빠진 가장 황홀한 경험은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바로 그 순간이다. 나도 주었으니 너도 주어야 한다는 기브 앤 테이크의 마음이 발동하기 바로 전, 가장 순수하게 그래서 가장 이기적으로 상대를 사랑하는 그 짧은 순간만이 진짜 '사랑하기'다.



결혼은 그러한 주체적인 '사랑하기'를 잊게 만드는 순간의 연속이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순간들이 현실이 되고 특별함이 당연함이 되어갈 때, 부부는 차츰 사랑받기를 갈구한다. 내가 이만큼 했는데, 왜 저만큼 안 하는 거야. 나는 이렇게 희생을 하는 데 상대는 왜 모르지. 비난과 불만은 사랑이라는 자리를 파먹고 들어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을 가장 미워하게 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그런 나 자신을 사랑했고, 이제는 누군가를 미워하는 그런 나 자신을 미워하게 됐다. 모든 사랑 대신 모든 미움이 그 자리를 메꿨다.



9번 미워하고 1번 사랑하는 게 일상인 삶. 사랑했던 마음을 잊게 만드는 삶. 우리가 누구였는지 우리 자신도 망각하게 하는 삶. 그게 결혼 생활이다. 결혼 생활 10년 차를 넘기며 한 번은 우리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었다. 매일을 각자의 타인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처음 사랑했던 남자, 나의 모든 감각이 사랑 중이라고 느꼈던 순간, 사랑이 미움으로 변화되는 과정, 그리고 점점 무감각해지는 몸과 마음들. 모든 순간들이 스쳐갔다.



매주 수요일 정오에 발행한 열다섯 편의 글. 그 글을 쓰는 3개월의 시간 동안 나는 사랑 중에서도 나의 '사랑하기'를 떠올렸다. 그리고 부부라고 이름 놓은 모든 것들 앞에서 다시 한번 가장 감각적으로 사랑하기를 더듬어갔다.



바꾸어 말해본다. 9번 미워해도 1번 사랑하기에 지속하는 삶. 사랑했던 마음을 되찾는 삶. 당신과 나를 기억하는 삶. 그게 결혼 생활의 재발견이다.



그가 들었던 똑같은 질문을 나에게 해본다.

"다음 생에도 그를 다시 만나 사랑할 것인가"



아니, 다음 생에는 다름 사람을 만나 다른 사랑을 해볼 것이다. 그도 그랬으면 좋겠다. 단, 다음 생이 생각이 나지 않을 만큼 이번 생에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싶다. 다음이 아닌 현재에 후회 없이 온몸을 던져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사랑에 상처받지 않으려고 가시로 날을 세운 외로운 고슴도치보다 선인장을 껴안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사랑을 확인받기보다는 사랑을 발견하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면, 그렇다면 내 첫사랑이 끝사랑으로 온전히 남아있지 않을까. 그리고 마지막, 정말 우리 생에 마지막에는 이번 생 후회 없이 탈탈 털어 쓰고 간다고 함께 너털웃음 지을 수 있다면 그렇다면 나는 더 이상 이 사랑에 미련이 없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다시 그렇게 사랑하기를 해본다. 첫사랑을 다시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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