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빛나는 달을 보며
11월 6일은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이진원의 13주기이다. 이 글은 몇 달 전에 쓴 글이고 13주기에 맞춰 브런치에 업로드할 예정이었으나 일부러 LG 트윈스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기다렸다. 그리고 어제 29년 만에 우승을 거머쥐었다. 진원이 형도 하늘에서 올 시즌 LG 트윈스의 활약을 지켜보았겠지? 어제 마지막 아웃 카운트, 신민재의 글러브 속으로 들어가는 공을 보고 기뻐했겠지?
달빛요정은 유난히 사랑하는 뮤지션이다. 그가 젊은 나이에 요절해서도 아니고, 엄청나게 성공하지 못해서도 아니다. 그는 음악을 사랑했고, 야구를 사랑했고, 그를 사랑하는 이들을 사랑했고, 세상의 부조리함을 모른척하지 않았다.
유난히 가을에 떠난 뮤지션이 많다. 달빛요정은 특히 각별하다. 어두운 밤을 비춰주는 밝은 달 처럼 항상 빛나던 사람. 부디 그곳에서는 평안하시길...
"고기반찬~ 고기반찬~ 고기반찬이 나는 좋아~ … " [1]
최고의 혼밥 친구는 유튜브다. 고민하기 싫어 첫 화면의 예능 영상을 재생한다. 현실의 문제,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반찬과 밥그릇을 바삐 오간다. 출연자들은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게임을 하고 그들이 바라던 삼겹살을 획득하며 기뻐하는 모습에 웃음 짓다가 배경으로 흘러나오는 음악에 울적해졌다. 다들 어디선가 들어봤을 "고기반찬~" 가사.
크라잉넛으로 입문한 인디 음악은 20대 초반 락, 메탈과 함께 음악적 취향의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한 장르다. 지금은 클래식, 재즈 등 다양하게 듣지만, 그 다양성을 습득하게 된 것이 인디 음악이었다.
작지만 단단하게 뭉쳐진 그 세계에서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가수 당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하고, 그를 좋아하는 우리가 함께하는 유토피아와 같았다. 작디작은 지하의 클럽에서는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보일 정도로 가까이 함께하며 가수는 음악으로, 우리는 함성으로 서로를 향한 사랑을 공유했다.
그들의 음악을 좋아하고 사랑하기에 오래 지속되길 바라며 음반을 사고 공연을 보러 간다. 그렇게 알게 된 뮤지션이 있다. 알게 된 계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내수공업으로 집에서 연주하고 노래하고 포장하고 배송까지 직접 하며 리스너들에게 전달된 음반 《Infield fly》는 인디 씬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었고 당시의 표준 차트라고 할 수 있는 《신해철의 고스트네이션》 인디 차트에서 5주 연속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의 이름은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달빛요정으로 불렸던 그는 밴드(1인 밴드) 명이나 앨범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야구팬이며 LG 트윈스의 팬이다. 나 또한 롯데 자이언츠와 야구를 사랑하는 팬으로 공통된 관심사로 동질감을 느끼는 뮤지션이었다.
“롯데와 엘지가 한국시리즈에서 만났으면 좋겠어요~”
부산에 있을 적 두어 번 공연을 보러 간 적이 있다. 부산대 앞 지하 1층 인터플레이, 넓지 않은 공간에 그를 위한 무대와 관객이 있었다. 비슷한 높이의 스테이지와 플로어의 사이, 서로의 눈을 마주치며 노래와 대화로 서로의 마음을 나누었다.
그의 멘트는 반바지에 슬리퍼 끌며 윙크로 인사를 대신하는 푸근한 동네 형 같지만, 노래할 때는 흠뻑 쇼에서의 싸이만큼이나 열정적인 뮤지션이었다..
공연을 마치면 시디에 사인과 함께 사진도 찍어 주시며 다정하게 말을 걸어 주시던 분. 공연 때 찍은 사진과 함께 후기를 남긴 내 블로그를 친히 찾아오셔서 댓글도 남겨주시고, 본인의 홈페이지[2]에 ‘퍼가요~’하는 그는 관객과 자신을 사랑하시는 분이었다.
2009년 10월 서울로 올라와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곧 현실이 될지도 모를) 주 70시간 가까운 근무로 ‘서울 가면 매주 홍대 가서 공연 봐야지~’ 했던 나의 꿈은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매일 복잡한 지하철과 빨간 버스에 몸을 실었다. 퇴근길 아이팟 속 그의 음악으로 연명하면서.
1년이 지났을까? 2010년 11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영원히 빛날 것 같던 달빛요정님의 사망소식. 자취생이었던 그는 사망 후 30시간이 나 지난 후에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음악으로 연 2천만 원만 벌어도 행복할 것 같다는 그는 그렇게 하늘의 달빛이 되어 떠났다.
슬펐다. 미웠다. 미안했다.
나도 이제 월급쟁이가 되어 달빛요정님이 꿈꾸시던 2천만 원 연봉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 위해 시디 두 장, 세 장 사드릴 수 있는데, 공연 올출(석) 할 수 있는데, 그렇게 허망하게 외롭게 가셨다. 한동안 허무함에 음악도 듣지 않았다. 영원히 음악 하는 형으로 계실 줄 알았던 그였다. 많은 이들이 슬퍼했고, 아직도 그리워한다.
이듬해 1월 달빛요정의 에세이집 《행운아》[3] 가 출간되었다. 그가 좋아하는 것들과 노래 그리고 자신을 삶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아니 그랬을 것이다. 확신이 아닌 추측의 이유는 아직 완독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남긴 그의 흔적을 다 읽어버리면 더 멀리 떠나가버리고 다시 붙잡지 못할 것 같아서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읽었던 페이지에 북마크가 되어있다. 가끔 꺼내어 펼쳐보고 미완으로 남은 프롤로그만 읽고 책장에 꽂아둔다.
“ … 아무리 노래가 좋아도 아무리 음악이 좋아도 라면만 먹고는 못 살아~ 든든해야 노랠 하지~~ 고기반찬~~ 고기반찬~~”
오랜만에 다시 듣는 달빛요정의 음악에서 나의 일상이 묻어난다. 스스로를 행운아라 칭하며 살아내고자 했던 마음이 나의 일상에 맞닿아 스며든다. 만루홈런은 아닐지라도 1루타 4개를 쳐가며 1회에 한 점씩 전광판에 새기며 행운이라 여긴다. 일찍이 하늘로 올라가 달이 되신 님을, 그가 그렸던 음악 세계를 상상해 본다.
[1] https://youtu.be/8Upg7vjwaas
[3] https://www.yes24.com/Product/Goods/4592700
동명의 노래 : https://youtu.be/RTIXcDf654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