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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주 Dec 15. 2022

돌담의 돌을 하나씩 내려놓은 연습.

치유의 시작

"다들 내 졸업식 와주라! 나 혼자 있기 싫어."

내년 2월 대학원 졸업식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곧내 언짢았다. “내 아들” 졸업에 유난을 부릴 얼굴 여럿이 떠오름과 동시에 나 역시 축하받아야 할 자리인데 타지에 내려와 부를 가족이나 친구가 없어 언짢아진 이방인은 곧바로 철없는 서른 다섯 둘째 딸이 되어 360km 떨어져 있는 가족들 마음에 돌을 던졌다.


멀뚱히 혼자 있는 것이 싫은 것은 이유가 조금 있다.

'여자가 무슨 4년제를'이라는 아빠 대신 편입 학원비, 용돈, 편입 후 학비를 챙겨주던 엄마에게 야말로 학사모를 씌워주고 싶어 꾸역꾸역 졸업식에 참석했지만 엄마는 못 왔다. 갓난쟁이 아이들 돌보는 것이 더 급한 보육교사였던 엄마를 이해하지만, 그때도 지금도 나는 그것이 퍽 서운하다.


거슬러 올라가 내가 5살이 되던 해 5대 독자인 막내아들 남동생이 태어났고 그를 돌보고 보필(?)하느라 교복을 벗을 때까지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정문 앞에 자식들을 마중 나온 북새통 속에 내 엄마는 없었다. 체육대회나 소풍날도 역시 그랬다.


성인이 되어서도 그랬다. 18년간 살던 서울을 떠나 경기도 성남으로 이사가 지내던 중,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나오자 거센 비가 내렸고 우산 좀-하고 불러낼 친구조차 없는 것이 서럽고 지겨워 엉엉 울었다. 엄마는 그날 내가 운 줄도, 비가 맞은 줄도 모른다.



투척해보니 생각보다 후련했다.

여느 주말 신랑과 지지배배 수다를 떨며 위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신랑은 맞벌이 부모님을 대신해 할머니 손에 자랐고 중학생이 되어서야 부모님과 합가(?)했다고 한다. 나 역시 치매를 앓던 할머니와 함께 살며 각자도생이야말로 효도였던 삼 남매로 자랐고, 그러다 보니 우리 둘은 체육대회는 물론이요 작은 소풍이나 졸업식, 비 오는 날의 마중 같은 추억이 없다는 게 공통점이었다. 시시덕거리며 이야기를 나눈 탓인지 꽤 후련해진 마음이 들어 "그래! 이번에는 돌담 쌓지 말고 투척해보자!"라고 마음을 먹게 된 것.


그럼에도 막상 돌멩이가 가족들의 마음에 스크래치를 줄까, 부담을 가질까 염려했지만 "몇 일이냐?", "당장 알아와라",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기다려보자"며 드릉드릉하는 가족들을 보니 함박웃음이 난다. 지난 세월에 쌓아 올렸던 돌담의 몇 개가 우수수 떨어져 시원한 바람이 부는 듯 후련하다.



하나씩 차근차근.

상처를 마주하고 치유하는 일은 꽤 두려운 일이다. 상처란 본디 괴롭고 고통스럽기 때문인데 이것을 치유하지 않고 그저 쌓아 올리기만 하다 보면 더 견고하고 높아진 돌담에 스스로가 고립되기 마련. 그렇지만 어쩌면 마주하는 일보다 고립되는 일이 더 두려운 것 아닐까?라는 마음가짐으로 한 번에 무너트릴 수 없다면, 한 톨 한알 한 덩어리씩 쌓여있는 돌을 내려두거나 멀리 투척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씩, 차근차근.

그러다 보면 불현듯 서른다섯 살짜리 딸의 투정처럼 투척한 자와 그것을 받는 자 모두가 치유가 될 수 있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해보지 않으면 모를 일들이니까"


그저 나의 상처를 덜어냈을 뿐인데 혹자의 마음도 가벼워짐을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겪을 수 있는 가장 신비하고 위대한 일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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