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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주 Apr 12. 2023

여기 너 해.

사랑 표현 방법 중 하나


사람이 제일 허한 게 자기 역할이 없어졌을 때잖아. 내가 필요 없는 사람인가?

그래서, 우리 어머니가 반찬을 많이 해주시는데 사실은 사 먹어도 되고 힘드신데 해서 보내지 마세요 하고 싶지만.. 근데 어머니는 자기가 반찬을 해서 보내주시는 거, 그게 낙이니까.

자기가 어떤 사람한테 도움이 된다 그러니까 우리가 무조건 누구한테 잘해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 '나도 도움이 되는구나'라고 느끼게 해 주는 게 중요한 것 같아 누구를 도와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사람도 남을 도울 수 있는 것을 찾아주는 것. (https://youtube.com/shorts/4MfCeO81mag?feature=share)



존경하는 팀장님께 결혼식 축사를 부탁하는 글에 이런 말을 빌어 마음을 전했다.

'팀장님, 제가 생각하는 결혼이란 상대방에게 내 인생의 일부를 내어주는 일인 것 같습니다. 이 사람에게 제 인생의 일부를 뚝 떼어 나누어주는 것이 혼자일 때 보다 더 풍요롭고 행복할 것 같아 결혼을 하기로 했습니다'라고.


내게 결혼이란 어떤 대단한 다짐이나 결의에 찬 결정이라기보다 그저 이 사람이라면 내 일부를 선뜻 점유하게 내버려 두어도 괜찮다고 또 나아가 그것이 더 내게 이롭다는 생각의 결과였다.


<서울체크인>에서 이효리가 언급한 내용이 나의 결혼관과 더불어 사람 간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마음을 나눈다는 것은 각자의 일상과 생활에 상대방을 포함시키는 것이 불편하지 않으며 오히려 기쁨이라는 것을 통해 나의, 상대방의 존재를 증명하고 증명받는 과정이 아닐까? 흔히 '내 사람'이라는 별칭을 가지면서.


부모님의 지나친 관여, 연인의 관심, 친구의 잔소리에는 나를 염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그것이 만사 성가시고 귀찮을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정 부분 '그렇게 해도 돼'라고 내버려 둬 주는 것은 사랑한다는 말의 또 다른 표현일 수 있다.


시골 외할머니 댁에서 여름휴가를 보내고 서울로 떠나는 길에 엄마 손에 한아름 쥐어준 할머니표 검은 봉지들 속에는 말린 나물과 신선한 채소, 주방 수세미 같은 잡동사니들이 담겨있었다. 아무 말 없이 엄마에게 봉지를 건네는 모습이 내게는 마치 할머니가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을 꼬옥 손에 쥐어주는 것처럼 느껴졌던 적이 있다. 이 장면을 다시 떠올렸을 때 조금 놀랐던 건, 저 잡동사니들이 귀가 후 엄마를 성가시게 할 것을 알면서도 아무 말 없이 "뭘 이렇게 많이 줘"라고 방긋 웃는 엄마의 얼굴이었다. 엄마는 할머니를, 할머니는 엄마를 그렇게 서로 사랑하고 내버려둬주고 있구나.


먼 친정에 갈 때마다 부모님은 외할머니가 그랬듯이 먹거리가 가득 담긴 아이스박스 두 어개를 들려준다. 나는 이제서야 그것들을 군말 없이 받아와 피로감을 억누른 채 소분하고 정리하여 매일 한 줌씩 꺼내어 먹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 '바리바리 들려보냄'은 아직도 내게 성가시고 귀찮으며 울화가 치미는 일 중 하나이지만 그것들을 꾹 참아 기쁨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터널(또는 비상구)를 발견했고 그건 '그래, 그렇게 해도 돼' 라고 내버려둬 주는 것이다. 한 가지 더 애석한 것은 어쩌면 한때 부모가 세상의 전부였던, 다 커버려 잔소리조차 하기 어려워진 다 큰 딸의 인생에서 부모가 점유하고 누릴 수 있는 아주 작은 일부분일지도 모른다는 것. 


내가 누군가에게 쏟는 관심과 애정이 온전히 받아들여지길 바라는 마음처럼 때로 누군가 나를 위한 마음을 펼쳐 보일 때 그것을 너그러이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내버려 둬 주는 것. 그것을 귀엽게 바라봐줄 수 있는 것은 사랑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에 다소 단조로울 수 있지만 그 외에 어떤 표현이 또 있을까 싶다.



영화 <내 머릿속의 지우개>에 '용서란 미움에게 방 한 칸 내어주면 되는 일'이라는 대사가 있다. 미움에게 방 한 칸 내어주는 일처럼 사랑에게도 그렇게 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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