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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주 Jul 07. 2023

강아지 산책에 진심인 이유

보호자도 즐거워야 할 산책


강아지와 함께하기 좋은 산책 명소 스폿 베스트 5 포스팅을 쓴 이유는 "보호자도 즐거운 산책길"을 위해서였고 누군가 내 글을 읽어준다면 "강아지와 함께 하는 산책이 더 행복하고 즐거웠으면" 하는 마음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 https://blog.naver.com/timing1223/223147999294 )



맞벌이 부부로서 반려가구가 된 지 3년 차가 되었고 우리 가족에게는 삼시세끼 챙겨 먹는 것만큼 중요한 일과가 바로 '셋이서 산책 가기'이다. 셋이 합체한(?) 이후 우리 삶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이지 않을까?


우리가 출근하고 퇴근하기까지 하루 약 9시간 정도. 나무는 고맙게도 큰 탈 없이 잘 기다려준다. 그래서- 아니, 그럴 수 있게끔 하기 위해 출근 전, 퇴근 후 그리고 주말은 철저히 반려견 나무를 중심에 두고 일상을 꾸려간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만의 산책루트, 산책비법인 우리도 즐거운 요소를 찾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 것 같다.


우리만의 산책루트는 나무 보호자로서 우리 부부가 선택한, 우리를 위한 보상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 글은 강아지와 함께 사는 모든 보호자에게도 산책이라는 숙명(또는 숙제)이 즐거울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을 담는다.




정말 허심탄회하게 말하자면 매일 강아지 산책하는 것은 쉽지 않다. 직장인이든 아니든 하루에 1시간 또는 그 이상 강아지를 위해 뚜벅뚜벅 걷는 것은 생각보다 지루하고 예상보다 많은 피로감을 얻는 일이다. 더구나 반려 가구가 되기 전 개인이 누렸던, 해야 했던, 가야 했던, 하고 싶었던 것들이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게 된다는 건 마냥 달갑기만 한 상황은 아니니까. 실제로 신랑은 나무가 있어 쉬이 떠나던 여행지의 범위가 좁아진 것, 둘만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줄어든 것이 힘들다고 한 적도 있었고 나 역시 오로지 강아지만을 위한 이 시간이 꽤 공허했던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려 가구로 살아온 지난 900일 동안 강풍, 비바람, 태풍, 강추위가 아니라면 단 한 번도 산책을 거르지 않을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우리 산책에 좀 강박 있는 것 같지 않아?"라는 말을 하며 운동화를 신다가 "그래서인지 나무가 잘 기다려주잖아“이며 두 번째는 산책 전후 반려견의 컨디션이나 기분이 확연히 다르다는 점이다. 웃는 자식의 얼굴을 보고싶어하지 않을 부모가 어디있으랴.



나무와 가족이 된 지 한 달 되던 시점, 아슬아슬하던 허리 디스크가 찢어져 2주 정도 제대로 걸을 수 없었다. 수술을 하기엔 아직 젊은 나이였던지라 "올바른 자세로 많이 걷기"라는 평생 숙제를 받고 퇴원하면서 든 생각은 "다행이다, 나무랑 매일 걸으면 되겠네"였고 당분간은 이 숙제가 산책의 동기부여가 되어주었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자 산책은 어떤 의무감과 책임감의 비율이 더 커져 어떤 날은 마치 고행길과도 같았다. 나무가 없던 일상에서 우린 뭘 하고 있었을까라는 대화를 한 적도 있다. 그런 마음으로 임한 산책은 당연히 행복하지 않았는데 어느 반려견 훈련사의 말처럼 반려견을 키운다는 것은 나의 옹졸함과 치졸함에 맞서는 일이었음을 깨달았던 대목. 포기하고 외면할 수 없는 산책이라면, 이를 맞이하는 우리를 위해서라도 어떤 전환점이 필요했고 마침내 "우리에게도 산책의 즐거움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아이스크림 사러 가자!"

"다이소 가서 살 거 있는데, 나무랑 같이 걸을 겸 다녀올까?"

"나무 산책 다녀와서 치킨에 맥주 콜?"

"오늘 많이 힘들었지? 강변 가서 같이 노을 보자"

"옆 단지 뒤편에 24시 강아지 편의점 생겼데"


이런 식으로 산책길에 오르기 위해 보호자=휴먼에게도 즐거울 수 있는 요소를 생각해 냈고 이 과정은 예전보다 훨씬 가벼운 발걸음과 마음을 선사했다. 어떤 날은 우리만을 위한 보상을 얻기 위한 재미난 퀘스트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요즘 우리 부부는 이런 대화를 엄청 자주 하는데, 결론은 "나무와의 산책 덕분에 덕본건 나무만이 아니다"는 것이다.


- 나무 없었으면 우리 뭐 했을까?

/ 누워서 티브이 보거나 술 마셨겠지? 다음날 으어.. 하고 출근하고. 살찌고.

- 그래도 우리만의 시간을 가지긴 했을텐데 사실 그것보다 지금이 더 좋다.

/ 지금이 훨씬 건강하고 충만하지.





강아지와 함께 사는 맞벌이 부부는 저녁 산책 시간 내내 온종일 꾹 참았던 수다를 쏟아낸다. 오늘 회사에서 있었던 일, 여름휴가로 가고 싶은 곳, 저녁 메뉴, 다음 생일에 갖고 싶은 선물, 나무가 자꾸 살찌는 이유에 대한 토론 등.. 나무(반려견)라는 부부의 절대적인 공통사가 생긴 것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내가 엊그제 유튜브에서 봤는데, 산책할 땐 이렇게 하는 게 강아지한테 더 좋데"를 비롯해 "저쉬키 저거 얄미울 때가 언제냐면"과 같은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모두가 나무가 부부에게 준 선물 아닐까요? 돈독해지는 부부관계는 덤인지라 자꾸만 걷고 싶어지는 이유 중 하나.




인간에게는 퍽 소모적이라고 느꼈던 강아지를 위한 산책길이 우리 세 가족에게 없어서는 안 될 힐링모먼트가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전환점은 뭐니 뭐니 해도 보호자에게도 산책이 즐거워질 수 있는 요소를 캐치하고 증폭시키는 것이었다. 목적지 없이 리드줄만 잡고 걷던 길에 다이소, 신상 빵집과 같은 '어떤 이유'를 만들고 함께 걷는 동안 보호자가 행복을 느끼는 지점을 곱씹어 노을을 보러 가거나,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를 산책길에서 풀어놓는다거나.


반려견 보호자 3년 차, 요즘은 퇴근 후 나무와의 산책 시간이 기다려진다. (회사 점심시간, 밥때를 고사하고 나무와 산책하러 가는 날도 꽤 많다) 오매불망 기다린 엄빠와 나선 산책길이 너무 신나 버려 덩실덩실 흔드는 나무의 엉덩이와 방긋 웃는 얼굴이 고단했던 일과의 피로감을 말끔히 씻어주는 것 같아서, 업무 강도가 유난히 심하거나 울적한 일이 생긴 날이면 더욱더 '나무의 궁둥이 구경'타임인 산책이 고달파지는 지점. 우리에게 이 순간은 '엉멍(엉덩이 보며 멍 때리기)'으로 불린다.



산책에 관한 포스팅을 쓰고 나니, 문득 "처음부터 산책이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지", "근데 어떻게 이렇게 산책이 좋아졌지?"라는 생각의 궤도를 따라가다 보니 꽤 긴 글이 되었다. 반려견과 함께 하는 모든 보호자가 맹목적인 산책의 무게감에서 해방될 수 있길 바라며 서둘러 발행 버튼을 누르고 멀찍이서 나를 빤히 쳐다봐주는 나무와 잠깐이라도 밤공기를 쐬러 가야겠다. 편의점에 바나나우유도 사 먹을 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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