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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되고 싶은 것도 많고 하기 싫은 것도 많은 아이

<나는 ( )사람이에요) 글/수전 베르데/ 그림/피터 H. 레이놀즈/위즈

 이 그림책을 만나기 하루 전에 중2 딸과 다툼이 있었다. 중학교만 졸업하고 애니메이션을 소개하는 유투버가 되겠다는 아이에게 화가 나, 생각없이 산다고 혼을 냈다. 자신이 존경하는 유튜버님의 연봉이 얼마니 구독자가 얼마나 하는 아이에게 공부하기 싫어서 하는 핑계라고 비난을 하며 언성을 높기까지 했다. 

 아이는 “난 이런 이야기로 엄마랑 다투고 싶지 않아요.”하고 방문을 “쾅!” 닫고 자기 방에 들어갔다. 아이가 “엄마랑 싸웠다. 다퉜다.”이렇게  말하면 난 자존심이 상한다. 지랑 나랑 친구도 아니고 “정확히 표현하자고 난 엄마고, 넌 딸이야. 이럴 땐 싸운다고 하는 게 아니고 혼이 난 거야, 난 널 야단친 거라고..”

 좀 유치하지만  나는 아이를 혼냈고, 아이는 엄마랑 싸웠다. 다음 날 아침에 나는 등교하는 딸 밥도 안 챙겨주고 아이는 인사도 안하고 갔다. 

  전날 밤 아이가 울면서 “엄마, 나도 사람이라고요 나도 사람!”이라고 할 때 나는 아이의 답답한 마음을 전혀 공감하지 못한 채 “그럼 니가 사람이지 동물이냐!”하고 되받아쳤다. 아이는 세상 재미없고 유치한 나의 대구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엄마는 공감 능력 빵점에 언어 이해 점수 빵빵빵! 이런 엄마하고 무슨 대화를 흑흑” 이렇게  눈물콧물 다 짜내며 통곡했다.

  그날 아이가 선언한 “나도 사람이라고요!” 사람이 어떤 의미였는지 <신작 그림책 읽기 교사 모임>에서 소개한 <나는 (   )사람이에요>를 읽고 아이에게  미안했다.

 이 그림책은  미국의 저명한 월간지 스쿨 라이브러리 저널(SCHOOL LIBRARY JOURNAL)에서 “모두와 연결된 존재인 인간을 희망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는 그림책”이라는 찬사를 받았고,  아마존에서 ‘선생님이 뽑은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점>, <단어 수집가>로 유명한 그림책 작가 ‘피터 H. 레이놀즈’의 삽화와 초등학교 선생님을 지낸 수전 베르데의 서정적인 글이 잔잔한 감동을 주는 그림책이다. <나는 (   )사람이에요>를 읽으며, 아이가 품 안에 자식이라 믿고 매사에 간섭하고 견제하는 엄마들이 이 책을 읽고 아이를 이해했음 좋겠다. 

 그날 딸은 자기도 ‘사람’이라고 ‘사람’은 엄마가 자기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기를 부탁한 거 같다. 나름 스스로의 삶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행동하는 “일정한 자격이나 품격 등을 갖춘 이.”이니 제발 어른이나 엄마라는 이름으로 상처주지 말라고 부탁한 것이다.      

“나는 세상에 태어났어요. 기적같지 않나요. 수십업 사람 중에 나는 오직 하나뿐이에요.”로 시작하는 그림책의 펼침 화면에  수십 명의 피부색도 다르고 얼굴 모양도 서로 다른 갓난아이들의 얼굴이 동그란 원을 두 개 비우고 그려져 있다. 그리고 두 개의 동그라미 안에 갓 태어난 아이가 눈을 감고 평화롭게 공중부양 중이다. 난 그 그림을 보면서 저 두 개의 동그라미가 세상에서 처음으로 나와 눈맞춤을 하던 내 아이같아서 순간 울컥했다. 

 그림책을 읽고 다시 본 아이의 사과 문자 메시지가 뼈를 때렸다.

 “엄마 제가 옳지 않은 행동을 한 건 알고 있고 반성도 하는데요. 어머니께서 한 행동은 모두 옳다고 생각하면서 저를 깔보고 이해력이 떨어지는 사람 대하듯이 하는 거 옳지 않아요.”

 아이의 문자처럼 내가 아이를 깔보기야 했겠냐마는 무시한 건 맞다. 한심하다고 생각한 것도, 미워하기도 했다. 엄마 맘 몰라 주고 헛짓거리하는 거 같다. 미운 말로 상처준 것도 맞다. 

 ‘일초라도 안보이면 얼마나 초조한데, 어떻게 삼초를 기다려 하던 내 아기, 60억 지구에서 널 만난 건 행운이라고 감사했던 내 아기, 요기조기 한눈팔지 않고 나만 바라보던 내 껌딱지“가 이 그림처럼 부족한 엄마를 위해 이 세상에 왔는데, 아이가 사춘기를 거쳐 질풍노도의 중2를 보내면서, 사랑한다고 얘기해 준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나다니...

  그림책은 나에게 딸이 앞으로 걸어가야 할 경이로운 세상 길에 길을 찾고, 자신에게 꼭 맞는 오솔길도 찾아가도록 지지하고 엄마가 되라고 말한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와 무거운 돌을 매단 듯, 아이가 한없는 나락으로 추락한 고통에 빠지는 그림자 뒤에서 든든하게 서서 격려해주라고 말한다. 아이는 사람이니깐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니깐  아이가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미래를 위해 용기를 나아갈 거라고 믿으라고 말한다.  

 이 그림책의 제목 <나는 (    )사람이에요>의 빈칸을 아이가 채우고 지우고 비우고, 다시 채우고 성장할 것이다. 세상과 마주한 내 아이는 가능성이 충만할 사람이다. 나는 (춤을 잘 추는) 사람이에요. 나는 (공부를 싫어하는) 사람이에요. 나는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에요. 이렇게 어떤 내용으로 빈칸을 채워도 아이를 믿어 주는 힘. 이게 엄마의 에너지다. 

   <나는 (    )사람이에요>의 빈칸을 채우기엔 너무 경우의 수가 줄어든 나는 아이가 꿈꾸는 모든 가능성과 선택의 시간이 얼마나 귀한지 이제 알 거 같다. 새로운 도전 앞에서 주춤주춤하는 아이나 잘못된 선택을 할까 두려할 아이에게 말해줄 거다. 

 “채영아, 머뭇거려도 괜찮아, 15살 너에겐 시간이 엄청 많아. 너가 무엇을 선택하건 엄마가 있잖아, 엄마 손 꼭 잡고 우리 천천히 가자. 꽃도 보고, 새도 보고 뒷걸음질도 치고, 고단하면 아무 데나 주저앉아 노래를 부르며 같이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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