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밥 6기, 에디터가 되다 21- 함께 가면 멀리 간다..고
우리에게 2020년 전이 있었나.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할 수 있지만 요즘 분위기가 그렇다.
최근 국제경제기구들의 세계 경제 진단은 ‘암울’하다. 세계은행(WB)은 고물가를 잡기 위한 각국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정책이 내년 세계 경제를 경기후퇴 국면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신흥국과 개발도상국들에게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에 형광 밑줄을 그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물가 상승세가 가파르고 공급망 차질은 여전하며 금융환경 경색이 심각하다고 우려를 보탰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피할 수 없던 파도였다면, 쓸고 지나간 자리가 예전과 같을 수는 없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도 힘들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비롯된 공급망 혼란과 에너지난 등 갖가지 위기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모자라 악순환이 증폭되는 양상이다.
우리나라라고 예외 일 리는 없다. 이래저래 시끄러운 일들이 꼬리를 무는 사이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고(高) 상황 속에서 최악의 무역적자를 기록하는 등 복합적 경제 위기의 냉기가 턱밑까지 차올랐다.
더욱 곤혹스러운 것은 미국이 반도체, 배터리에 이어 바이오산업에서도 미국 내에서 관련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에 특혜를 주는 ‘자국 보호주의’ 정책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다는 점이다.
‘메이드 인 아메리카(Made in America)’의 대상인 ‘BBC(바이오·배터리· 반도체칩)’분야가 우리나라의 핵심 전략산업이라는 데 있다.
반도체의 대중국 수출 통제와 첨단 산업 투자 제한, 미국에서 생산되고 일정 비율 이상 미국 내에서 제조된 배터리와 핵심 광물을 사용한 전기차에만 보조금 혜택 제공, 미국에서 발명된 생명공학을 미국에서 제조하도록 하는 행정명령 등은 그동안 글로벌 밸류체인에 적극 가담해온 국내 및 지역 기업들 입장에서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소식이다.
앞서 중국 사드 보복, 일본 무역 보복 등을 경험했던 터라 지금의 상황은 살얼음판 이상이다.
중국이나 일본이 빗장을 걸었던 이유와 달리 미국의 논리는 ‘경제 안보’라는 점에서 더 조마조마하다. 일자리를 창출하고, 더 강력한 공급망을 구축하며, 미국 가정을 위해 가격을 내릴 것이라고 장담하는 배경에는 미중 패권다툼이 있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극단적 선택 뒤에는 중국이 취할 보복 수위라는 파장이 도사리고 있다.
이런 상황이 생각보다 오래갈 것이란 것이 경제 전반을 흔들고 있다. 타격감은 규모와 정비례했다.
대한상공회의소와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이 최근 발표한 ‘스타트업 애로 현황 및 정책과제’조사 결과를 보면 국내 스타트업 10곳 중 6곳은 올해 경영환경이 지난해보다 악화한 것으로 체감하고 있었다.
국내 스타트업 250개 사를 대상으로 경영 여건을 물은 결과, 응답 기업의 59.2%는 올해가 작년보다 어렵다고 답했다. 비슷하다거나 좋다는 응답 비율은 각각 24.0%, 16.8%였다.
경영 여건이 어려워진 이유(복수응답)로는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심리 악화'와 '코로나 등에 따른 내수시장 부진'(각 52.7%)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3고 현상 심화'(35.6%), '글로벌 해외시장 불안 고조'(25.3%)로 힘들어졌다고 밝혔다.
스타트업의 투자 한파를 체감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컸다.
급격한 금리 인상 등 대내외적인 경제 불안으로 응답 기업의 36%가 작년보다 투자가 줄었다고 답했다. 작년과 비슷하다는 응답 비율은 48%, 증가했다는 응답 비율은 16%였다.
투자가 줄었다고 답한 기업의 절반가량(47.8%)은 투자금액이 작년 대비 50% 이상 줄었다고 답했을 만큼 힘들어했다.
스타트업들이 보는 향후 경기 전망도 어두웠다.
경제가 회복돼 사업이 언제 다시 활기를 찾을 것인지 묻자 응답 기업의 31.2%는 '내년 하반기'라고 답했다. '내년 상반기'가 24.8%, '올해 하반기'(20%), '2024년 이후'(14%) 순으로 멀리 봤다. 10곳 중 1곳은 '기약 없음'(10%)이라고 답했다.
국내 창업 생태계에 대한 업계의 전반적 인식은 아직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간의 스타트업 투자 환경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한 응답 비율은 60.8%로, 긍정적 응답(15.2%)을 크게 앞질렀다.
선진국처럼 민간이 주도하는 창업생태계로 탈바꿈하기 위한 과제로는 기업형 벤처캐피탈(CVC) 제도 활성화(34.5%)를 꼽은 기업이 많았다.
CVC는 대기업이 투자 목적으로 설립 가능한 벤처캐피탈로 작년 말 허용됐지만 까다로운 설립기준과 각종 규제로 활성화가 더딘 상황이라고 대한상의는 분석했다.
아울러 대기업-스타트업 판로연계(32.9%), 대기업-스타트업 기술교류 활성화(24.1%) 등 대기업과 스타트업 간 유기적 네트워킹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았다.
#세상 차가운 말 ‘각자도생’
각자도생이란 말이 유행어처럼 번지고 있는 상황에서 손발 안 맞는 정부와 지자체 정책이 빈 속 커피마냥 쓰리다.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내년 모태펀드 예산을 2500억원 수준으로 책정할 전망이다. 올해 5200억원의 절반 수준이다. 지난해 1조700억원과 비교하면 4분의 1토막 정도로 급감한다.
정부의 관련 예산 축소는 벤처 투자 시장도 민간 주도로 성장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나왔다. 업계도 정부가 모태펀드 예산을 무한정으로 늘릴 수 없고, 민간이 앞서야 투자 시장이 더 활성화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문제는 관련 예산 감축 속도다. 최근 글로벌 경기 악화로 투자 시장과 자금 회수 시장이 급격히 침체되고 있어서다. 지난 2분기 국내 벤처 투자액은 1조8259억원으로 1년 전보다 4.2% 줄었다. 분기 기준으로 2020년 2분기 이후 첫 감소였다. 투자 시장이 위축되자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겪고 있는 일부 스타트업은 인력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기업가치 3조원까지 거론됐던 쏘카는 최근 몸값을 1조원 아래로 낮춰 겨우 상장하는 등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스타트업)도 자금 조달에 힘겨워하고 있다. 지금은 관련 예산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오히려 설득력을 얻고 있을 정도다.
벤처·스타트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보고 최근 수장을 빠꾼 지방 정부들이 앞다퉈 ‘우리가 하겠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현장 반응은 시큰둥하다. 정책 형평성을 들어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있냐’는 아우성이 쏟아지고 각자도생의 생존 경쟁 속에서 옥석 가리기, ‘발아 가능성’ 등의 말이 비수처럼 꽂힌다.
최근 나오고 있는 뉴스들을 신중히 들여다보자. 사무실을 대도로변에서 골목으로 옮기고, 대규모 감원 바람이 갈수록 강도를 높이고 있다는 말은 그냥 떠도는 정도가 아니다. 최근 인력 채용 등을 감행한 스타트업에는 ‘이미 구조조정을 끝낸’이란 수식어가 붙는다.
다국적 컨설팅전문회사 맥킨지가 코로나19 이후 넥스트 노멀로 꼽았던 ‘지역화’와 이코노미스트의 커버스토리에 등장했던 ‘생존 비즈니스(The business of survival)’를 꺼내 본다.
소규모 개방형 경제구조를 가진 우리나라는 경기가 좋을 않을 때면 늘상 ‘체질 개선’과 ‘패러다임 전환’을 카드를 꺼냈다. 새삼스럽지도 않다. 굳이 말을 보태자면 중요한 것은 복합 경제위기 시대를 대비하는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다 아는 얘기 정도다.
어렵다. 아니 사실 그리 어렵지도 않다.
2018년 연기파 배우(이병헌·윤여정·박정민)들의 캐미가 돋보였던 영화 한 편을 소환한다. ‘그 것만이 내 세상’이다.
한 때 잘나가던 WBC 월터급 동양 챔피언이었던 조하는 어느날 17년만에 만난 엄마 인숙과 마주친다. 갈 곳이 없던 조하는 엄마 집에 가게 되고, 그 곳에서 서번트 증후군을 지닌 동생 진태를 만나게 된다. 진태는 라면도 잘 끓이고, 스마트폰으로 영상 보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천재 소리를 들을 정도로 피아노 연주를 잘 한다.
우울하기만 했던 한국 생활 정리를 위해 캐나다에 가기로 한 조하는 경비를 마련할 때까지 엄마·동생과 동거하기로 한다. 그리고 어느새 가족이라는 단어에 스며들기 시작한다.
한달 동안 부산에 다녀온다는 엄마는 암을 병원에 입원을 하고, 상금에 눈이 멀어 아픈 동생을 무대에 올리는 일은 생각과는 다르게 움직인다. 그렇게 가족을 알게 된 셋은, 이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둘로 서로를 의지한다. 형제가 손을 꼭 잡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마지막 장면은 탄탄대로까지는 아니지만 옳다고 생각한 길을 갈거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자, 여기서 엄마의 자리에 정부(정책·예산)를, 조하는 대기업 중심의 우리나라 경제 구조, 진태는 스타트업로 바꿔보자. 조하가 활약했던 복싱는 1980년대 우리나라 대표 스포츠다. 한 때 메달 효자 종목으로 명맥을 잇기도 했지만 지금은 건강관리 등의 효과까지 보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엄마가 그러했듯 지나치게 대기업이나 특정 분야에 의존했던 우리 경제의 현 상황도, 학연과 지연, 인맥 따위가 복잡하게 작동하는 세상의 불평등 앞에서 성장 가능성을 살리기 위한 관심이 필요한 스타트업도 모두 정부가 끌어안고 있는 현실이 오버랩 된다.
‘언젠가’라는 전제 조건은 동일하다. 다만 엄마는 형이 동생을, 동생이 형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도록 기회를 준다. 버려두거나 알아서 잘 할 거라 등을 떠밀지는 않는다. 가족이란 말에는 ‘회복 탄력성’이 포함돼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지하고, 또 기다려준다. 끈질기게 듣고, 가능한 방법을 찾고, 무엇보다 ‘일단 내 편’이 되어준다.
현실이 힘든 것만은 분명하다. 오래 경영을 유지해왔던 대기업도, 악착같이 버텨온 중소기업도 ‘앓는 소리’를 낸다. 이제 시장에 진입했거나 시장에 진입하려는, 다음 단계로 올라서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스타트업이 느끼는 체감도는 아마도 더 클 수밖에 없다.
앞서 조사 결과를 다시 보자.
민간이 주도하는 창업생태계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CVC에 대한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 완화와 탄력적인 행정, 정책 이해도 등이 필요하다. 진태가 피아노 콩쿨에 참가할 수 있었던 것처럼.
대기업-스타트업 판로연계나 기술교류 활성화 같은 유기적인 네트워킹은 이 형제가 앞으로 살아나갈 현실과 연결해 살펴볼 수 있다. 쉽지 않을 것을 알지만 눈물콧물 흘리던 사람들이 저절로 박수를 친다. “그래 잘 했어. 잘 살거야”.
그리고, 애니메이션 ‘주토피아’속 대사를 힘들 때 꺼내 볼 ‘힘내라 주머니 속 아이템으로 챙겨본다. "두려워할 것은 두려움 그것뿐" "두려움 때문에 서로 등 돌리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