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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앞으로 빛날 시작을 응원해”

스밥 6기, 에이터가 되다 22:‘2022 The Wave Jeju’에서

by 고미


“세상에서 성공하려면 딱 두 가지만 알면 돼. 나한테 필요한 사람이 누군지. 그 사람이 뭘 필요로 하는지”

이상형까지는 아니지만 좋아하는 남자 배우 중에, 꽤 까다로운 기준을 거쳐 한 손 안에 꼽는 배우가 조인성이다. 요즘은 영화·드라마 보다 ‘참한’ 예능에서 보지만 내게 조인성은 10년도 더 전 찍은 느와르 영화 속 병두가 80%다. 영화 속 대사가 느닷없이 떠오른 이유다.

올해로 6회째를 맞는 글로벌 스타트업 컨퍼런스 '에이스트림(A-STREAM)'의 어느 한 부분이지만, 눈을 맞춘 기록이랄까.


#스타트업씬, 강 되어 흐르다


A-STREAM은 액셀러레이터(AC) 와이앤아처의 국내외 스타트업의 스케일업(Scale-Up)을 돕는 글로벌 투자유치 프로그램이다. 지난 10월 17일부터 19일까지 스타트업 150여곳, 국내해외 벤처캐피탈(VC) 70여 곳이 제주에 모였다. 서귀포시 표선면 해비치 호텔&리조트에 만들어진 판은 마치 흐름을 읽을 수 없는 큰 강처럼 움직였다. 말 그대로 큰 강이다. 바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지 못하지만 바다를 향해, 확실히 움직였다. 바다로 가는 길이 어디 하나 뿐이랴. 강물이라고 출렁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바위 같은 장애물에 부딪혀 포말로 흩어지거나 지류로 빠져 멀리 돌아오기도 한다.

첫날 행사에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이승규 더핑크퐁컴퍼 부사장과 김창원 타파스엔터테인먼트 대표, 김종윤 야놀자 대표 등이 스타트업 창업자를 위한 다양한 조언을 했다고 들었다. ‘해외 진출’에 대한 생각과 접근법 등이 공유됐다. 기회는 찾아 만드는 것이라고 정리할 만 하다.

가장 처음 회사 소개자료를 영문으로 만들고, 중소벤처기업부 등에서 실시하는 각종 글로벌 이벤트에 참여해 살피고 코트라(KOTRA) 같은 기존 지원 기관의 도움을 받는 것을 모르지 않겠지만 가능성이 있다면 ‘현지에 가서 직접 해야 한다’, ‘설득하는 힘을 키워라’ 등 경험에서 우러난 조언이 이어졌다.



#그래 우리는 제주에 산다


둘쨋날인 18일에는 국내 스타트업 150개사가 국내외 투자사들을 상대로 기업소개(IR)를 진행했다. 유럽·아시아·중화권 등 해외 VC 30여개사와 온라인 IR도 이어졌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은 흐름이 공존한다. 집중해 살펴본 흐름은 제주 지역 스타트업 투자연계를 위한 데모데이 ‘2022 The Wave Jeju’다.

제주에서 창업 보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기관들과 참여 기업 중 기회를 잡은 ‘젊은’ 업체들, 가능성을 살피러 나온 벤처캐피탈(VC)이 묘한 삼각구도를 형성한다. 분위기는 뜨겁다. 일단 동지다. 다만 기업소개(IR)에 있어서는 질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제주바솔트, 팜팩토리, ㈜무불, ㈜핏플, 플랜트라, 설심당(이상 제주청창사-제주지식재산센터 트랙), 탐라에일, ㈜아이쉐어넷, ㈜그린우드(이상 제주테크노파크), 배러댄서프, 유한회사 컬러랩 제주(이상 제주관광공사) 등 11개 기업이 이날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제주를 배경으로 한 기업들의 면면은 흥미로웠다.

프리미엄 크래프트 비어와 시각장애인 공간인지 시스템, 어린이 대상 영상 콘텐츠, 해양과 색채를 연계한 라이프스타일 콘텐츠, 퍼포먼스 마케팅 교육·제휴 마케팅 시스템, 제주돌을 모티브로 한 빵, 실내농장시스템, 가드닝 솔루션, 흑돈 비선호 부위 활용 가공식품까지 닮은 것 하나 없이 각자의 길과 색깔이 분명했다.

창업 이유와 시장 분석·공략 계획, 성장 가능성까지, 드러내기에 있어 모자람이 없었다. 투자사 관계자들의 박수와 질문은 뜨거웠지만 날카로웠다.

‘앞으로 5년 후 무엇을 팔고 있을 것인가’ ‘주요 타깃 시장은’ ‘무엇이 주력 상품인가’ ‘온라인에 집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해당 가격을 설정한 이유를 설명해 달라’ 등등. 물음표가 붙는다는 것은 무언가 모자라다는 얘기다. 지금이라면 더 그렇다.



#달라진 환경, 기업가치 기준 그리고


투자 혹한기라 힘든 것은 스타트업 씬에 한정된 얘기가 아니다. 스타트업에서 칼을 가는 만큼 VC는 더 단단한 제련법을 찾아 막는다.

최근 2년간 VC 업계는 풍부한 자금을 기반으로 활발하게 투자활동을 벌였다. 신생사부터 성장기, 성숙기에 접어든 스타트업까지 가리지 않았다. 스타트업이면 일단 포트폴리오에 담고 보는 과열 양상도 보였다.

투자 빙하기 VC의 적정 기업가치 기준도 달라졌다. 금리가 오르면서 경기가 침체됐고, 투자심리도 위축됐다. 스타트업의 자금 경색이 늘어나면서 감원·M&A 등 다양한 자구책이 등장했고, 수익성을 갖춘 스타트업에 자금이 몰리는 쏠림 현상에 속도가 붙었다.

‘잘 나가던 시절’, 투자유치 과정에서 책정되는 기업가치를 성장의 척도로 삼았던 분위기 때문인지 스타트업들은 '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했다. 빛난다. 그 빛을 유지하기 위해 핵심 타깃 시장인 20·30대 여성들은 안정적 소득원을 확보하고 망설임 없이 지갑을 열어야 하는 사정은 일단 접어둔다.

다시 살펴보자. 지금은 보수적인 평가 잣대 앞에 잠재력 이상을 보는 까닭에 성장·성숙 단계에 진입한 스타트업들이 고전하고 있다. 초기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에는 아직 큰 흔들림이 없지만 문제는 다음이다. 성장 위주의 전략을 택한다는 이유로 적자가 설명되는 시기는 지났기 때문이다. 단기적인 관점에서 바로 사업 성과가 나오는 곳에 투자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투자를 받지 못하다고 기업가치가 없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피포팅으로 흑자 전환을 한 사례를 우리는 많이 봤다. 투자를 받는 것이 다시 새로운 시작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유니콘 대신 연어처럼


전설 속 ‘유니콘’을 꿈꾸는 판에서, 연어를 소환한다. ‘강 상류 바닥 얕은 곳에서 태어나 넓고 깊은 바다로 헤엄쳐 나가 큰 세상을 경험하는’전반전을 보자. 연어의 치어인 스몰트(smolt)가 바다로 향하는 것은 먹을 것을 찾기 위해서라고 한다. 바다로 나가 덩치를 키운다. 만약 강에 머물기를 택했다면 우리가 흔히 연어라고 알고 있는 정도의 몸집만큼 커지기 어렵다. 매일이, 매순간이 ‘첫’인 모험의 연속이지만 그 과정에서 체격과 체력을 키운다. 흔히 연어에 따라붙는 ‘회귀 본능’을 완성하는 힘을 쌓는 일이기도 하다.

스타트업의 자금 경색이 늘어나면서 감원·M&A 등 다양한 자구책이 등장했고, 수익성을 갖춘 스타트업에 자금이 몰리는 쏠림 현상에 속도가 붙었다. 이 안에서 느닷없는 연어 타령이 기차 찰 수도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창업을 하고 새로운 시장에 도전하고 스케일업하는 모든 과정이 연어와 유사하지 않은가. 후반전 ‘돌아갈 곳’은 선택의 영역이다. 시작한 장소 일 수도 있고, 다음을 이을 ‘사람’일 수도 있고, 연어과 같은 고향이면 또 어떨까 싶다.

스타트업이 ‘유니콘’을 꿈꾸고 있지만 현실은 반인반마 ‘켄타우로스’를 지목한다. 핵심 비즈니스 모델과 이를 통한 수익성(사람)과 성장성(말)을 모두 갖출 것을 주문한다. 성장성은 숫자와 자신감으로 강조했지만 수익성이 어디에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제주 스타트업의 IR 사이 밴처캐피탈리스트들이 참여한 ‘패널디스커션’(토론집단을 패널 멤버와 청중으로 나누고 먼저 소정의 문제에 대해 각 분야의 전문가끼리 토론하게 한 다음 청중과 전문가 사이에 질의응답을 하도록 하는 토론 형식)에서 인상깊게 들었던 말을 전한다.

성장 잠재력이 높은 아이디어와 대표의 성향, 수익성과 성장성 중 어느 쪽에 무게를 두고 있느냐는 질문에 참여 패널은 한 목소리로 ‘사람’을 택했다. 그날 현장에서는 찾기 힘들었던 카드다.

그렇다고 그들의 열정이 식었나면, 덕분에 같이 불태울 수 있어 좋았다. 다음에 대한 여지를 남겨뒀으니까.


#걸어 걸어 걸어 가다 보면


같은 날 글로벌 진출과 투자유치를 추진하는 스타트업들은 해외 투자사들 앞에서도 어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발표는 △동남아시아 △중화권 △유럽·미주 등 3개 권역으로 나눠 각 권역별로 10곳의 VC 앞에서 진행됐다.

와이앤아처는 국내·외 심사 결과를 종합해 13곳의 스타트업을 선발한다. 이어 별도의 육성 프로그램을 통해 선정된 5곳을 더해 총 18곳의 스타트업에게 다음달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A-STREAM 참여 기회를 제공한다. 아직 산이 남아있고 넘어야 다음 산을 탈 수 있다. 그러니, 무운을 빈다.

.....

여러 갈래길 중 만약에 이 길이 내가 걸어가고 있는

돌아서 갈 수밖에 없는 꼬부라진 길일지라도

딱딱해지는 발바닥 걸어 걸어 걸어 가다 보면

저 넓은 꽃밭에 누워서 난 쉴 수 있겠지

여러 갈래길 중 만약에 이 길이 내가 걸어가고 있는

막막한 어둠으로 별빛조차 없는 길 일지라도 포기할 순 없는거야

걸어 걸어 걸어 가다 보면

뜨겁게 날 위해 부서진 햇살을 보겠지

그래도 나에겐 너무나도 많은

축복이란걸 알아

수없이 많은 걸어 가야 할 내 앞길이 있지 않나

그래 다시 가다보면

걸어 걸어 걸어 가다보면

어느날 그 모든 일들을 감사해 하겠지

.....


강산에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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