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사스카춘 현자와의 만남(1)
T는 일찍 눈이 떠진다
차 안 내부 온도는 10도로 살짝 춥다
온 유리는 김이 서려 밖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추위가 그를 깨운 것은 아니다
T는 앞 좌석으로 이동해 글을 쓸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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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도 T는 새벽에 일어나는 걸 좋아했다
모두가 고요한 이 시간
혼자만의 온전한 이 시간은
현재 그의 기운과 매우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바쁘게 일어나 아침 운동을 가야 했지만
항상 이 시간에 천천히 생각하며 글을 쓰는 날을 고대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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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는 Couch surfing을 하기로 한다
카우치서핑이란 집주인들이 여행자들을 배려해 쇼파를 무료로 빌려주는 형식의 인터넷 여행 사이트이다
T는 동쪽으로 향하는 첫 번째 도시, 사스카춘으로 메시지를 보낸다
21명에게 메시지를 보내니 1명에게 곧이어 연락이 왔다
아무도 없는 고스트타운이 세상에 끝인 양 느껴졌던 이곳에서
누군가에게 이렇게 연락이 온다는 게 T는 새삼 신기하다
갈 곳이 정해지자 꽤 기분이 좋아진 T였다
목적지인 사스카츄원 주의 사스카툰은 4시간 정도 긴 운전을 해야 되지만
T는 조금은 돌아가더라도 그의 행운의 번호인 12번 도로를 타고 느긋이 가기로 한다
..
..
많은 노래
많은 추억
많은 생각
..
..
T는 꽤 기분 좋게 추억들을 상기하며 달린다
알버타주에서 사스카추원주로 넘어가자 광활했던 초원에서 텔레토비 동산같은 구릉지과 웅덩이들로 바뀌는 것을 T는 어렴풋이 알아차린다
T는 목적지에 도착한다
오늘 T를 초대해 준 레이의 집은 한적한 주택가에 위치한 곳이었다
하지만 T는 이 한적함을 느끼기보다는 레이의 마당에서 현관으로 향하는 그 짧은 순간에도 얼굴에 부딪히는 벌레들에 신경이 향했다
조금씩 변하는 배경을 직접 몸으로 느끼면 달려온 T이지만 이렇게 많은 벌레들을 예측하긴 힘들었다
물론 목적지에 도착한 T의 자동차 유리창 또한 많은 벌레들로 뒤덮여 있었지만 말이다
현관 앞에서 조용히 노크를 한다
문 안쪽에서 말소리가 들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벨을 누르는 것보다는 노크를 하는 편이 좀 더 본인에게 어울리는 방법이라고 T는 알고 있었다
T는 생애 첫 카우치 서핑 호스트에게 좋은 첫인상을 주기 위해
단정히 겉옷을 걸치고 감지 못한 머리를 가리기 위해 모자도 썼다
문이 열리고 경쾌한 목소리가 T에게 인사를 건넸다
T는 처음에 모자에 가려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도 눈앞에 사람의 얼굴을 마주 하기 힘들었다
그는 푹 눌러쓴 모자챙을 살짝 위로 올린다
그랬다
레이는 키가 엄청 컸다
덤블도어의 방에 초대된 1학년 해리포터를 덤블도어가 방문을 열며 맞이하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하고 T는 생각한다
레이는 먼저 그의 집에 머물고 있던 여행자인 요셉과 이야기 중이었다
나를 맞이해준 두 사람은
첫 만남이자 나의 첫 호스트로써 카우치 서핑과 이 집에 관한 여러 가지 것들을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곧 저녁을 먹으러 갈 건데 원하면 같이 가자는 제안에 승낙을 하며 조심스레 T는 질문을 한다
“저녁을 먹으러 가기 전에 샤워를 먼저 해도 될까?”
—
아 샤워!
이 얼마나 달콤한!
많은 경험들을 통해 샤워의 위대함을 익히 알고 있는 T였지만
여전히 이번 샤워도 그에게 놀라울 만큼 상쾌한 기분을 선사한 것이 경이로웠다
—
’촤‘ 하는 물소리와 함께
샤워를 하고 면도를 하고 손발톱도 깎으니 T는 꼭 새로 태어난 기분이 들었다
레이 또한 새로운 사람이 됐네 라며 받아준다
저녁을 먹으며 그들은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나의 목적지인 노바스코샤 이야기로 대화가 시작되었지만
좋아진 기분 탓인지 맛있는 베트남 음식 때문인지
T는 이것이 이별 후 예정에 없던 여행이라 던가
아직 친한 친구들에게조차 쑥스러워 이야기를 잘 안 하는 타투에 관한 질문에 대답을 하는 등
꽤 많은 본인의 이야기를 그들과 나눈다
레이 또한 T와의 대화가 제법 괜찮았는지 혹은 T를 위로하기 위해선지
본인의 성장 과정과 결혼 스토리를 포함한 제법 깊은 이야기를 해준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끼리 무엇이든 자유롭고 쿨하게 이야기한다는 레이의 이야기를 T는 본인도 모르게 이해했다
이 날부터 T는 카우치서핑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앞으로 경험할지, 본인의 여행이 결코 혼자가 아니란 것을, 그는 이때는 알지 못한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글을 쓰는 T에게 레이는 커피와 함께 말을 걸어왔다
T는 심지어 커피도 마시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아침 새소리를 들으며 글을 쓰고 레이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음이 낯설지만 행복처럼 좋았다
레이와 T는 점심을 먹는다
레이가 그릴치즈를 준비하고 T가 샐러드를 준비한다
그들은 음식을 준비하면서부터
많은 이야기를 다시 나눈다
이번에는 종교, 운명등의 이야기로 시작하여
끝에는 조금 깊은 T의 이야기까지 레이와 나눈다
헌데 T는 대화가 버겁지 않았고 생각한다
사스카춘에 도착하여 T는 많은 곳을 보며 느꼈다
레이와 요셉과 같이 운동을 한다
사스카춘 강을 낀 아름다운 빅토리아 파크와 우범지역을 직접 두 발로 달린다
20만 원짜리 투어라고 이름을 정정해 달라고 요청한 레이의 10원 투어를 경험한다
혼자 현대미술관에 가서 생애 첫 피카소를 보고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경험을 한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레이와의 대화가 그에게는 신기할 만큼 흥미롭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내가 근래에 이렇게 말은 많이 한 적이 있었나
라는 생각이 T의 머릿속을 스친다
레이가 이번 주말에 본인 별장으로 T를 초대한다
T는 당연히 승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