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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란초 Jan 20. 2022

아빠의 댓글

글을 쓰는 마음

브런치에 쓴 나의 글에 가끔 아빠가 ‘하트’를 누르거나 댓글을 남길 때가 있다. 아빠가 종종 내 글을 읽나 보다 생각했다. 최근에 아빠가 쓴 댓글을 읽고 아빠의 마음이 조금 더 느껴졌다. 이마가 뜨듯해질 때쯤 겨우 내 글을 찾아서 또닥또닥 응원의 댓글을 남긴다는 내용이었다.

   그저 알림이 뜨면 글을 읽으시는 줄 알았는데, 내가 쓴 글을 읽기 위해 핸드폰을 붙들고 씨름하셨을 모습을 상상하니 마음 한켠이 뻐근하다. 남들이 삐삐를 사용할 때 아빠는 이미 휴대폰을 갖고 계셨고 친구네 집에는 컴퓨터가 없던 시절에도 우리 집에는 컴퓨터가 두 대가 있었다. 아빠는 출판사를 하시며 책을 만드셨기에 컴퓨터를 잘 다루셨다. 지금 내가 컴퓨터를 다루는 많은 부분들도 아빠에게 배웠는데 자신을 '모맹'이라 일컫는 아빠를 보니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엄마와는 자주 전화를 하지만, 아빠와는 그렇지 못하다. 아빠는 워낙 과묵하시고 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으시기도 하다. 그럼에도 아빠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느끼는 것은, 말보다는 몸으로 표현하셨던 사랑 때문이다.

   결혼 전까지도, 자기 전에 늘 방에 불을 꺼주시고 이불을 덮어주시고는 '굿나잇' 인사를 해주고 나가셨다. 여름철이면 방마다 모기약을 갈아 끼워 넣고 선풍기를 가장 시원한 방향으로 틀어주셨다. 방에서 할 일을 하고 있을 때면 따뜻하게 우유를 데워주신다든지 사과를 가지런히 잘라서 가져다주셨다. 친구들이 놀러 오면 아빠표 토스트를 구워주시고 친구들의 연애 고민도 진지하게 들어주셨다.

   엄마랑 통화를 해도 간단한 안부만 물으시지 많은 대화를 하지 않으셨는데 아빠의 방법으로 내게 사랑을 표현하고 계셨구나 싶다. 딸의 근황이 궁금해 글을 읽으러 들어오셨겠구나. 글이 올라와있지 않아 그냥 돌아가시는 날도 있으셨겠구나. 나의 공간에 아빠가 머물다 가셨다고 생각하니, 방에 따스한 온기가 남아있는 듯하다.

   최근 참가했던 북토크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글을 쓰듯, 글을 써오셨다는 정지우 작가님의 말이 마음에 많이 남았었다. 그 말을 들은 이후로 글을 공개하는 것이 조금은 편안해진 것도 사실이었다. 나를 사랑하는 이들은 내가 어떤 글을 쓰더라도 열렬한 팬심으로 읽어 줄 거라는 강한 믿음이 내게 용기를 북돋아줬다.

   아빠의 댓글을 읽으며 써야 할 또 하나의 이유를 간직하게 된다. 새 글이 올라와있지 않은 공간이 아니라, 언제나 반갑게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글들을 쌓아두고 싶어졌다. 내 글을 정성스레 읽어줄 아빠를 생각하니 좀 더 부지런히 글을 쓰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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