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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란초 Mar 04. 2023

슬픔의 자리

비가 오는 것을 좋아했다. 어린 시절 즐거운 기억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우산이 없는 날에는 오빠와 같이 비를 맞으며 뛰었다. 큰 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하며 다시 뛰어갈 나무를 정하곤 했다. 흠뻑 비를 맞으면 더 이상 피할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그럴 때면 나무를 흔들어 나뭇잎에 달려 있던 빗방울까지도 일부러 더 떨어뜨려 맞았다.

   나이가 들어서도 빗소리를 들으면 괜히 기분이 좋았다. 방 안에 있어도 창문을 3cm 정도 열어 놓곤 했다. 싸이월드를 하던 시절 나의 BGM 첫 번째 곡은 '빗소리'였다. 노래가 흘러나오기 전에 3분 정도 빗소리를 듣는 것이 좋았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나는 남편과 비 때문에 싸웠다. 잠을 자려고 하는데 밖에서 빗소리가 들렸다. "빗소리 너무 좋지" 내가 좋아하는 걸 남편도 함께 좋아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는 잠잠히 있다가 비가 많이 내리는 날엔 비 때문에 피해 입는 사람들이 있진 않을까 걱정이 된다고 했다. 그 순간, 나의 감성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빗소리 하나에 수재민까지 걱정해야 하냐며 퉁명스레 말했다.

   남편이 빗소리 하나에  왜 그렇게 반응했는지는 그와 함께 살면서 알게 되었다. 남편의 고향은 포항 어촌 마을이다. 양어장 사업을 하던 시부모님은 수많은 자연재해에 직접적인 피해를 입으셨다. 태풍이 오거나, 눈이 내리거나, 적조가 오면 사업터가 망가지고 수많은 물고기들이 죽었다고 한다. 복구하기까지 가족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다.

   같은 상황을 마주하더라도, 이전에 어떤 경험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반응하는 것이 다르다. 그가 내 삶에 들어온 이후, 나의 마음에도 변화가 생겼다. 한국의 날씨 소식을 유심히 듣게 되고 태풍 소식에는 같이 긴장하며 피해 입는 분들이 없기를 기도하게 된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슬픔의 자리를 이해하는 것이리라.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도 그분의 슬픔의 자리에 관심을 갖고 함께 아파하는 것이겠구나 생각해 본다. 나의 관심과 나의 아픔의 영역이 날마다 넓어져 가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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