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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주 Nov 08. 2020

“나 같은 거 갖다주고 다시 물러오고 싶다”

애도의 글쓰기

잘 모르겠다. 가엽지 않은 인생이 없고 서럽지 않은 죽음이 없지만, 단지 유명인이라는 것 말고는 개인적으로 일면도 없는 그의 사망 소식이 이렇게 무거운 이유를. ‘그럴’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함께 울고 애도하는 많은 사람들은 말할지 모르겠지만, ‘그럴’ 사람이 아닌 사람들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내심 안다. 그래서 잘 모르겠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 개표가 실시간으로 세계를 들었다 놨다 하는데 도통 들리지 않는다. 가족의 애사를 치른 사람처럼, 아니 그가 죽었는데 이 무슨 소음이고 난리인가 싶을 만큼, 비현실적으로 가슴이 아픈 이유를 모르겠다.
 
개그콘서트가 성황이었던 시절에 분명히 그의 팬이긴 했다. 프로그램을 챙겨 보았고, 웃었고, 인터뷰 등을 관심 있게 들여다봤다. 1년 차이로 나와 같은 시절에 학교를 다녔으며, 국어교사가 될 뻔한 사람이었다는 것, 엄마와의 사이가 각별하다는 것 등을 알게 되었다. 비슷한 점이 많아 그를 동질하게 느껴왔던 것 같다. 공개 코미디 시장이 거의 힘을 잃고, 그는 각종 행사의 진행자로 종종 매체에 드러났다. HOT 덕후였음이 알려지고, 아 이런, 또 겹치네, 하는 마음을 또 한차례 새겼었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최근의 활동은 그가 펭수 덕후로 해당 채널에 등장했을 때인데, 그때도 참 그답게 나이 들고 있네, 맑음은 맑음대로 내공은 내공대로 참 그답다 했다.
 
하지만 모두 차치하더라도, 그가 독서의 열렬한 옹호자가 아니었다면, 그 모든 유대감이 이렇게까지 짙었을 것 같지 않다. 그가 했던 인터뷰 중 내게 가장 흥미로웠던, 김민정 시인과 나눈 ‘책’ 이야기에서 그는 박준, 김애란, 박연준 등에 대한 사랑과 그 사랑의 배경을 폭포처럼 쏟아놓는다. 그는 책들을 품고 다니고, 필사하고, 동료 여성 희극인들과 독서모임을 꾸려 퍼뜨린다고 했다. 인터뷰 중 그가 기억에서 불러내 되뇌는 몇몇 구절은 또다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하는 손전등 같은 것이어서, 그를 거듭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헤어진 애인이 꿈에 나왔다 // 물기 좀 짜줘요 / 오이지를 베로 싸서 줬더니 / 꼭 눈덩이를 뭉치듯 / 고들고들하게 물기를 짜서 돌려주었다 // 꿈속에서도 / 그런 게 미안했다”.  _신미나, <오이지>
 
박지선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 사는 게 징그러울 때마다 책을 펼쳐 한 고비를 넘겼을 박지선이, 결국엔 우리가 영영 모를 어떤 최근의 고비를 책으로도 뭐로도 그냥 넘기지 않기로 했다는 게 너무 망연해서, 나는 자꾸 하던 일을 멈추게 된다. 그 고비가 유독 거칠고 거대했을 수도 있지만, 크든 작든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종류의 고비를 안고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들의 지긋지긋함 같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어떤 예술로도, 사유로도, 낙천과 연대로도 떨쳐지지 않는 존재 본연의 지긋지긋함을. 스스로 생을 중단한 사람들을 두고 남은 이들은 그들의 외로움, 고립 같은 것을 안타까워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는 심지어 엄마와 함께 떠났다. 그의 트위터를 지켜봤던 팬이라면 안다. 그 모녀는 삶의 얄궂고 때론 잔인한 면들을 놀라운 경지의 유머로 에두를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는 걸. 그리고 유머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라면 안다. 유머는 고통과의 거리감을 확보할 줄 아는(확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의 능력이라는 걸.

박지선이 세상을 떠난 날, 아니 떠났음이 알려졌던 날, 나는 그녀가 발견된 곳에서 정말이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도무지 멍한 채로 몇몇과 대화를 트며 ‘말도 안 된다’ ‘말도 안 된다’만 주고받았다. 그중 한 동료가, 언젠가 그의 책을 만들고 싶었는데, 하며 말을 흐렸을 때 결국 눈물이 터져버렸다. 그제야 알았다. 그에게 듣고 싶었던 이야기가, 그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았음이 분명하며, 나 또한 그걸 ‘언젠가’라는 기약으로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너무 자연스럽게 다가올 일이었는데 이제는 기대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앞서 말한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이 책을 사랑하게 된 데에 가장 큰 영향을 줬던 친구가 수년 전에 세상을 먼저 떠났음을 고백하며 말했다. 친구가 떠난 뒤 <벗을 잃고 나는 쓰네>라는 책을 읽었는데, 아픈 김유정을 안타까워하는 채만식이 “나 같은 명색 없는 작가 여남은 갖다 주고 다시 물러오고 싶다”고 한 구절에 밑줄을 쳤다고. 그게 딱 자기 마음이었다고. 박지선은 그 물러오고 싶은 마음을, 남은 사람들에게 물려주고 갔다. 물려받은 한 사람은 이렇게라도 적어두고 넘어가야 일도 하고 티비도 보고 라면도 먹겠어서, 길게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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