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금씨책방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금태섭 Mar 09. 2021

덮자마자 다시 읽고 싶은 책..별 여섯 개를 주고 싶다

금태섭의 <금씨책방> 49 - 진리의 발견

<"진리의 발견", 마리아 포포바 지음, 지여울 옮김, 다른>


아직 7월이지만, 아마도 내게는 올해의 책이 될 정말 잘 쓴 책.


이 책은 종류가 무엇인지 애매하다. 요하네스 케플러에서 시작해서 레이첼 카슨에 이르기까지 10명의 과학자, 예술가 들의 삶을 엮어 놓았는데 평전이라고 하기에는 그들의 인생 중 어떤 시기, 몇몇 단면들에 대해서만 써놓았기 때문에 좀 부적당하다. 다만 그 단면들에 대해서는 더할 수 없이 정밀하게 묘사를 해놓았다. 전체적으로 설명하자면, '각성한 최고의 정신들 사이의 연결'이라고 할 수 있을 듯.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사람들이 과감한 결단과 용기 그리고 각고의 노력으로 시대를 바꾸는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1차 자료에 천착한 저자의 취재와 놀라운 기억력이 멀리 떨어진 시간과 공간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물 흐르듯 연결해 놓았다는 점. 이런 대목이 그렇다.


"마침내 히긴스는 (에밀리) 디킨슨의 책을 핼런 헌트 잭슨에게 보여주었다. 잭슨은 그 시대의 가장 존경받는 작가이자 자신의 펜으로만 성공을 거둔 몇 안 되는 여성 작가 중 한 명이었다. 몇년 후 잭슨은 마거릿 풀러가 <호수의 여름>에서 남겨둔 주제에 관심을 기울인 끝에 아메리카 원주민의 추방과 학대를 비난하는 대담한 책인 <치욕의 세기>를 집필한다. 명성 있는 보스턴의 제본사였다 출판사가 된 로버츠브러더스는 이 원고가 지나치게 논쟁적이라는 이유로 출판을 거절했다.


13년 전 이 출판사는 루이저 메이 올컷의 <작은 아씨들>이 너무 지루하다는 이유로 원고를 거절한 적이 있다. 출판업자가 자신의 조카가 그 소설을 읽으며 웃다가 울다가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모습을 보기 전의 일이었다.


한 세기 반이 지난 후 나는 불가리아에 있는 할머니의 서재에서 표지가 너덜너덜해진 <작은 아씨들>을 발견한다. 할머니의 아버지인 게오르기가 소유했던 장서다. 증조부는 내가 태어나기 엿새 전에 세상을 떠나 나는 그를 만난 적이 없지만,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그를 잘 알게 되었다. 


그는 20세기 초반, 불가리아가 500년 오스만제국 치하에서 벗어나 이제 막 군주제를 정착시키기 시작한 시대에 태어난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였다. 그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은 후 자신의 고향이 몇 세기에 걸친 압제와 몇십 년에 걸친 전쟁으로 황폐화한 끝에 1940년대 공산주의 체제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아야만 했다. 철의 장막을 둘러친 독재 정부는 다른 진영에서 어떠한 문화적 신호도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데 온갖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사소하지만 거대한 저항의 일환으로, 증조부는 자신의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개조하여 BBC 월드 채널에 주파수를 맞추었다. 그리고 50세가 넘어 혼자 힘으로 영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하여 영어 사전과 고전 문학 작품 몇 권을 구한 다음 책의 단어에 밑줄을 긋고, 여백에 번역을 하고, 마치 앨런 튜링처럼 영문법이라는 암호를 해독했다. 1960년대에는 영어를 유창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낮 동안 아홉 명의 손자를 돌봐야 하자-그 중에 나의 아버지도 있었다- 할아버지는 손자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면서 이 저항의 유산을 전해주기로 결심했다. 할아버지는 손자들을 공원으로 데리고 가서 놀다가 오후 간식 시간이면 손자들이 표준 영어로 샌드위치를 달라고 부탁할 때까지 간식을 주지 않았다.


증조부가 밀수입한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스콧 피츠제럴드의 작품 중에서도 증조부의 조그맣고 깔끔한 주석이 가득한 책은 바로 <작은 아씨들>이었다. 올컷은 조(작은 아씨들에 등장하는 두번째 딸)가 게오르기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문학이 가늠할 수 없는 방대한 문화의 지평으로 얼마나 멀리 뻗어나갈 수 있는지, 어떤 변화를 이끌고 어떤 존재를 자유롭게 해줄지 과연 상상할 수 있는 작가가 있을까?"....


곳곳에 등장하는 일화 중에도 흥미진진한 것이 너무나 많다. 요하네스 케플러가 행성의 운동법칙을 발견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가 달세계를 배경으로 <꿈>이라는 소설을 썼고 그 소설 때문에 케플러의 어머니가 마녀로 몰려 재판을 받았다는 것은 이 책 덕분에 알게 되었다. (케플러는 사람들에게 천동설의 모순을 알기 쉽게 설명하려고 <꿈>을 썼다. 지구 사람들이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보면서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고 오해하는 것처럼 달 사람들은 지구가 뜨고 지는 것을 보면서 지구가 달 주위를 돈다고 오해하는 것이다. 달 주민들의 생각이 틀린 것처럼 천동설도 틀린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에는 주인공의 어머니가 아홉 개의 정령을 소환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바로 이 정령을 소환하는 어머니의 모델이 케플러의 모친이라는 이유로 케플러의 어머니가 마녀재판에 회부된 것이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끝도 없이 이어지는 사이에 작가의 통찰력 있는 설명이 따라붙는다. 이런 대목이 그렇다.


"학문 분야를 넘나드는 호기심은 창조성과 독창성을 발휘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이다. 하지만 어떤 분야의 중요한 미해결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분야에 대한 깊은 전문적 지식이 필요하다. 비록 마지막 해결의 통찰을 떠올리기 위해 주변 분야의 폭넓은 도움을 받는다 해도 그곳까지 가는 과정에는 전문 지식이 필요하다. 마리아 미첼은 <실락원>을 천문학적으로 분석한 글에서 이 점을 직관적으로 깨달았다. "밀턴은 오직 현상에 국한했을 경우 매우 정확하다. 하지만 일단 추론을 하기 시작하면 그는 천문학자가 아닌 시인처럼 추론한다."...


8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지만 끝내자마자 다시 읽고 싶은 생각이 드는 책. 적극 추천한다. 참 그리고 이 책은 무엇보다 페미니스트의 책이다. 읽어보면 알 수 있다. 그 점까지 포함해서 별 여섯개를 주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코로나 시대..감염병 관련 읽은 책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