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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ram Oct 28. 2020

특수교육과 지원 동기가 무엇입니까?

함께인 것이 당연한 세상이기를.

이미 대학 졸업반인 아들을 두신 어르신이 말씀하시기를,

"우리 아들도 다시 공부해서 선생님처럼 특수교사하라고 할까 싶어요."

아들에게도 권하고 싶은 직업이라는 생각 하셨다니 참 감사하고, 내 모습이 참 좋아 보였던 것 같다 생각하니 그 또한 행복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아드님이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하셔야죠~" 했더니 의외라는 듯 놀라며 물으신다.


선생님은,
특수교사가 되고 싶어서 되신 거예요?


질문 한 마디에 필름이 촤르륵 돌아간다.




초등학교 1학년 입학을 했을 때,

12월생이라 더욱이 다른 아이들보다 키가 작았던 나는 첫째 줄에 앉았다. 처음 만난, 지금도 이름까지 기억나는 내 첫 짝꿍은 덩치도 컸고 검고 굵은 뿔테 안경을 끼고 있었다. 시력이 아주 나쁘다고 했다. 첫째 줄에서도 종종 선생님의 판서가 잘 보이지 않아 내가 불러주거나 내 공책을 보여주는 일이 있었다. 그 친구와 나는 2년 동안 짝을 하며 지냈다.


3학년 때 우리 반에는 굉장히 산만한, 다른 친구들을 괴롭히곤 하는 친구가 있었고, 5학년 때는  

경미한 뇌성마비로 걸음이 느리고 부자연스러웠던 친구가 있었는데 두 친구 다 발음이 부자연스러웠. 3학년 때 그 녀석을 나는 좋아하지 않았지만 유난히 그 친구의 말을 잘 알아들었던 나는 그 친구와 조목조목 말싸움 아닌 말싸움을 했었고, 5학년 때의 친구는 누군가에게 놀림을 받아 울고 있어서 또 놀린 녀석들과 싸우기도 했는데 그때 주변 친구들로부터 자주 듣던 말은 어떻게 저 말을 알아듣느냐는 질문이었다.


6학년 때는 지적장애가 꽤 심한 친구가 있었다. 덩치가 엄청 큰 남자 친구여서 언제나 제일 앞줄에 있었던 나에게는 함께 할 기회가 거의 오지 않았지만, 뒷 줄 아이들이 귀엽다며 같이 손잡고 챙겨 다니는 모습을 내심 부러워하기도 하고, 담임 선생님이 그 친구에게 OMR카드에 표시하는 법을 알려주는 모습을 유심히 보았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6년 동안 내가 이 친구들을 만나 함께 보낸 시간들이, 지금의 내 직업으로 연결되었다.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만남이었지만, 누군가는 거부하고 피했을지도 모르는 그 만남의 시간을 충분히 경험함으로써 나는 꿈을 발견했고, 그 꿈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는 것, 그것이 대학 입시 면접을 준비하던 열아홉 살 나의 깨달음이었다.




그 후 20년이 지나서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내가 내 엄마의 마음을 생각해보니, 내가 꿈을 발견하고 그 꿈을 키우며 살아가는 동안에 엄마의 영향이 엄청나다 것을 발견한다. 나를 지켜보는 엄마는 어땠을까?


처음 초등학교를 입학한 딸이 누군가를 도와야 된다고 했을 때 걱정이 되지는 않았을까? 1년이 지나고 2년째도 그렇게 되었을 때 마음은 어땠을까?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안 사실이지만 그때의 내 짝꿍 어머님은 특별히 담임 선생님을 통해 우리 집 전화번호를 받아서 우리 엄마에게 미안하다는 전화를 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엄마는 어떤 내색도 나에게 한 적이 없다. 걱정을 한 적도 없고 뿌듯해한 적도 없다. 생각해보면 아무 내색도 하지 않은 무덤덤한 엄마의 태도가 지금의 나를 만든 선물이다(지금도 여전히 엄마는 내 일에 대해 그런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엄마가 걱정을 했다면 어린 나는 내가 뭔가 손해를 보고 있지 않나 하고 느꼈을 것이다. 엄마가 뭔가 뿌듯해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나는 내가 뭔가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고 우쭐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는 아무 내색도 하지 않음으로써 나의 그런 일들이 그저 당연한 일이 되도록 만들어주셨다. 그것은 실로 엄청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나는 특수교사가 되었다.


우리 반, 우리 학교에는 특수학급도 없었고, 특수교사도 없었다. 봉사점수도 없었거니와, 도우미 당번 친구가 따로 있지도 않았다. 놀리고 괴롭히는 친구가 있었지만 대신 혼내고 싸워주는 친구도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였다.


나는 수시 1번과 정시 2번, 총 3번 경험한 입시 면접장에서 묻는 지원동기에 '누구를 돕고 싶어서 특수교사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나는 그냥 학교에서 같이 있는 것이 익숙했기에, 그것이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라서 그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이 같이 있는 것.

더 나아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이 있는 것이 모두에게 익숙한 일이었으면 좋겠다. 그 속에서 서로의 의미를, 각자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특수교사의 꿈을 키우던 시간에 누군가는 의사, 누군가는 사회복지사, 누군가는 과학자, 누군가는 정치가가 되겠노라...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있었을 테지만, 어쩌면 그 꿈의 이유가 같지는 않았을까?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세상, 서로 더 사이좋게 어울려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

우리가 그냥 함께였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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