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아셨나요? 경상도사람들의 소고기뭇국과 서울사람들의 소고기뭇국이 다르다는 거.저는 31세 결혼을 하고 나서야 알게 됩니다. 경상도 뭇국은 서울의 육개장에 가깝다는 것.
그럼 진짜 고기랑 무 들어간 맑은 국은? 경상도에서는 탕국이라고 하더라고요.
내가 해준 음식 중에 남편이 가장 잘 먹는 음식. '야매 경상도식 소고기뭇국' 제대로된 레시피가 아니라 대충 날림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양심상 야매를 붙였다.
남편은 처음 맛을 본 날 맨날 이것만 먹어도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한땐 매일 뭇국만 해댔다.
연애할 땐 몰랐는데,같이 살고 보니 완전 경상도 남자다.
(남편은 대구에서 태어나고 자라 19세에 상경했다) 굉장히 의식적이고도 교과서적으로 로맨틱한 양식을 갖췄고 본인 스스로를 이 정도면 서울사람이라 착각하는 것 같지만, 결국 종착은 경상도 대구다.
신혼 때 어느 날은 나한테 아랫사람 대하 듯
"... 뭐뭐 해라."라고 지시하는데..."
' 어머머 쟤 미쳤나? 어디서 해라 마라야~내가 자기 부하직원이야?'
'이거 해줄래? 안 했으면 좋겠어.' 같은 권유형 말투에 익숙해져서인지 지시형인 '해라' 가 굉장히 기분 나쁘게 들렸다.(우린 연애 6개월 만에 결혼을 한다. 싸울 일도 부딪칠 일도 없었다. 결혼 이후엔 자연스럽게 본색이 드러났던 것)
대구에서 뜨악하는 경험을 한번 더한다.시부모님은 두 분 다 점잖은 톤으로 사투리를 하셨다. 사투리니까 약간 익숙하지 않을 뿐 대학에서도 사투리 쓰는 선후배나 친구들과 어울렸기 때문에 사투리 자체가 불편하진 않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는 기분이 저변에 남아서말 못할 이기분의 정체는 뭘까 하고 있었다. 뭔가 약간 저항감을 동반한 느낌. 머지않아 한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시어머님께서 첫째 아드님인 남편에게
"ㅇㅇ야~ 이거 하거라."
띠용~ "... 하거라???"
그 이후에도 " 밥 묵거라. 이거 하거라. 이렇게 하는 기라." 등등의 '거라체'가 귓전에 맴돈다. 이상했던 기분의 정체는 이것이었다.
문화충격이었다. '뭐야. 하거라 라니... 나 전근대로 시간여행온건가?!' 요즘도 대구에 가면 '거라체'를가끔 듣곤 한다.그렇지만 이제는 귀에 걸리는 게 전혀 없을 정도로 익숙해졌다.
(그 시절 나는관찰을 시도한다. 순수하게 호기심이 생겼다. '거라체' 가 보편적인 건가?시댁의 다른 어른들을 관찰하고 대구를 시댁으로 둔 지인들에게 묻기도 한다. 보통 사람들은 대구 사투리하면 ' ~하노,~했제, 이거 어디까지 올라가는 거예요?' 정도 생각하는 것 같은데, 대구의 어른들 경우 아랫사람에게 덜 권위적인 분들은 ~해라. 를 많이 하시고 좀 더 보수적이거나 권위적인 분들은 ~하거라.~하는기라. 를 하시더라. )
반전은 있다. 신혼 초 문화차이에서 오는 난관이 무색하게 이 경상도식 뭇국만은 온전히 내게 받아들여졌다.
저항감을 희석시켜 줄만큼 완벽하게 맛있어서...
한술 뜨면 약간 맹한듯 칼칼하고 시원한 맛이 국물 베이스로 깔린다(진한 육수 맛이 아니다). 이후 고기의 구수함, 무의 달큼함, 콩나물의 시원함이 어우러져 각자 개성을 뽐낸다. 여기에 밥을 말면 게임 끝.
대구 시댁에는 항상 큰 솥에 소고기 뭇국이 그득하게 있더랬다. 그래서 이 국은내게'거라체'를동반한 대구다.
나는 어느날,저항감 마저 뚫고 나온 이 국물맛을 비슷하게 구현해 보길 시도한다. 놀라워라 은근히 쉽잖아...
인터넷에 떠도는 백종원 육개장 레시피에 소고깃국 재료와 콩나물을 넣으면 경상도식 소고기뭇국을 간편하게 완성할 수 있다.
참기름과 파를 많이 넣는 것이 단시간 조리임에도 깊은 맛을 느끼게끔 해 주는 것 같다. 제일 마지막 양 것 많이 투하하는 콩나물은 시원하고 개운한 끝 맛을 선사한다.
<재료>
불고기용 소고기 300g, 무(500원짜리 면적 두께), 콩나물200g(+), 대파 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