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아나 Apr 22. 2022

최고의 마음은 물결과 파도를 알아차리는 것

강준서 <맑음에 대하여> 도서 리뷰

90페이지의 작고 얇은, 만 원채 되지 않는 독립 출판물 '맑음의 대하여'는 내가 제일 아끼는 책에 꼽힌다. 얼마나 좋아하냐면, 이 책이 왜 좋았는 지를 잘 설명하지 못할 것 같아서 소개 글을 썼다 지웠다 하면서 겨우 필사하는 게 전부였던 책이다. 이번에도 설명에 실패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2번 쓰자는 생각으로 글을 쓰게 되었다.


나는 강준서 작가를 잘 모르지만 '담백하고 깨끗한 삶의 태도'를 가진 사람이라고는 확신할 수 있다. 강준서를 강준서로 만든 사연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지만, 그의 글에서는 몇 가지 단단한 줄기같은 것들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자신의 자라남을 믿는 강인함, 삶을 바라보는 마음가짐, 타인에게 주는 사랑과 연대의 노력에 대해서- 그가 건네는 말의 의미를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스스로 가꾸어야 맑고 풍요로울 수 있는 존재다

전제는 우리 스스로가 어떠한 것에 잠식되지 않는 것이다. 세상의 어떠한 것도 나의 전부가 될 수 없음을 이해하되, 그 전부같은 일부의 것들이 여전히 중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의 전부라는 것은 이런 일부의 것들이 모여 풍요로워 지는 것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는 질 높은 삶을 가지게 해준다. 내가 사랑하는 나의 모습을 파괴하지 않고 스스로를 극한에 몰지 않는다.


우리는 매 순간 자라나며 더 나은 삶을 산다고 믿는다. 서툴렀을 땐 서투른 바람이 불었고- 시간이 지나면 나도, 나를 에워싼 바람도 서툴렀음을 안다. 그리고 지금은 꼭 나만큼의 바람이 불어온다. 우리는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물론 이런 말은 너무나 당연하게 들리기에, 우리는 이 당연한 하루를 아주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사사로운 일들로 혼란을 겪는 마음의 근육을 알아차리는 일이다. 그렇게 삶의 한 가운데 밀착하여 나를 들여다보면 먼 바다에서 보이지 않았던 움직임이 잔 물결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라는 바다에서 무엇이 파도가 되는 지를 알아차릴 수 있다. 작가는 이런 일상 속 작은 것의 가치를 봐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 이 작은 것이란 너무 반짝이고 거대한 힘이라 아무나 찾지 못하는 것이라고 알려준다. 자신의 삶에 노력하는 이만 찾도록 더 작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숨어들어 있는 것이라고. 우리 삶의 풍요로움을 만들기 위해 일상 속 작지만 반짝이는 물결을 읽어내는 것이다.



01 아무것도 내게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나의 전부 같은 일부의 것들아/ 무엇에도 열정이 없는 것이 아니다// 내게 닿아온 많은 일과 사람을/ 이리 저리 사랑하고 경험하며/ 매몰되지 않음이고, 고여있지 않음이다// 무언가에 매몰되지 않기 위한 노력은/ 부족함의 영역이 아니고/ 풍요로움의 영역이다 - Nothing is all to me


02 아주 멀리서 보는 바다는/ 그 움직임을 느낄 수가 없다// 이 작은 물결이/ 큰 물살이 되어/ 파도로 부서지기 까지는/ 나의 시선이 이토록 가까워진 까닭이다// 사사로운 일들로 혼란을 겪는 내 마음의 근육들을/ 알아차리는 것 또한/ 내가 이토록 삶의 한 가운데에 밀착해 있는 까닭이다// 작은 물결이 파도만큼 거세게 보일 때/ 한 가운데에서 파도를 타는 법을 갈고 닦으면/ 어느새 파도는 다시 작은 물결이 되어 있다 - 너무나 가깝기 때문에



나는 나로서 당신은 당신으로서 조금 다른 길을 가더라도 열심히 걷자고

타인을 이해하는 힘은 자기 부정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과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어야 내 뒷통수 너머의 세상이 드디어 열리기 시작한다. 현상은 한 가지이나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이야기는 다르게 흘러가니까. 세상에 퍼진 무수한 욕망과 도덕과 부도덕, 선과 악, 그것들이 모두 합쳐져 세상이 된다. 내가 속한 세상이 아닌 다른 사람의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 때, 그 순간 내가 보기 위해 노력하는 것들이 보인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어쩔 수 있는 힘을 가지는 것이 나의 시선이고, 내가 사는 삶에 대한 관찰행위자는 오롯이 나 이다.


시야가 넓어지면 각자가 땅 위에 딛고 있는 중력의 차이를 실감할 수 있다. 중력이 작용한다는 사실은 모두에게 같지만 중력이 작용하는 크기는 무게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50kg인 사람은 50kg 만큼의 중력을 받고, 70kg인 사람은 70kg 만큼의 중력을 받는다. 이 무게의 범위를 마음의 무게로 확장하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함께 서기 위해서 각기 다른 존재들의 무게를 존중해야 한다. 누구도 파괴해서는 안되며 획일화해서는 안된다. 각자의 자리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우리는 자신의 무게를 짊어지며 인생을 위해 공들이는 사람들을 응원하는 것이다.



03 자신이 어디에 머무르고 있는지 인식하고 생각할 때, 세상에 대해 생각해볼 용기를 얻는다. 내가 단지 여기에만 머무르고 있음을 알 때, 움직임의 힘이 생긴다. 나와 정말 다르고 불편하고, 혹은 틀린 것이 아닐까 여겨졌던 세상을 엿보는 것이 가능해진다. (중략) 이 때, 조화롭다는 것은 단순히 섞이는 것과는 다르다. 조화는 서로 다른 각자가 보는 세상, 세게관을 모두가 조금씩 움직였을 때만 가능하다. 고정된 채로 조화를 이룰 수는 없다. - 조화


04 우리는 모두 다른 개성을 타고난 사람이기 때문에 그에 맞게 보존되어야 한다. 누구도 파괴해서는 안되며, 획일화 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만 우리는 함께 설 수 있다. 동등하게 선다는 목적으로 모두를 같게 만드는 것은, '평범한 것'을 위해 모난 귀퉁이들을 자르는 일이다. 함께 서기 위해서 각기 다른 존재들의 무게를 존중해야 한다. 동등하기 위해 각자의 것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 존재에 대한 동등함은 그런 모양일 것이다. - 중력



나의 사랑이 당신의 시간을 따뜻함으로 채울 수 있다면

우리는 완전하지 않다. 서로의 모자람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모자란 사람으로 만나 그 공백을 채워 나간다. 친구든, 연인이든, 가족이든, 이웃이든. 평생선에서 어긋나 점에서 만나게 되는 모순되는 관계다. 다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타인을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서로가 노력하며 스스로의 모자람을 채워나간다. 연대란 두 사람이 모두 한 발씩 움직여 만들어 나가는 것이니까. 두 사람이 어긋나 만난 어떤 점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점을 지나 다시 영영 멀어지게 될테니까.


다만 배려하며 동행한다는 것은 부둥켜 안고 모든 것을 하나로 만드는 일은 아닌 것 같다. 동행 중에는 손 정도만 잡아야 하지 않을까. 손을 잡지 않는 부분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동행하기 위해 다를 수 있는 부분은 대화하고 노력하는 거다. 부둥켜 안고 하나가 되어서는 제대로 걸을 수 없다. 손을 잡고 같은 길을 걸어가면서 다른 갈래의 길을 걷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작가는 그게 우리의 길이라고 말했다.



05 올곧은 선이 되어/ 평행으로 나아간다면/ 만난 적이 없을 거다// 나는 부족하고 당신도 부족하여/ 무엇인가 휘고 꺾이는 부분이 생겨/ 우리는 만난 적이 있다// 우리는 모두/ 완벽할 수 없어서 만날 수 있는/ 그런 모순의 관계이다/ 완벽하지 않아서 만날 수 밖에 없는// 그러나 또 다시 어려운 이유는/ 자신의 모난 부분을 노력하지 않는 선은/ 그대로 엇갈려 버림에 있다// 각자의 방향으로 영영 멀어지는 것에 있다 - 평행선


06 사실 세상이 그렇게나 믿음직스러운 모습을 보여줘서 믿는 것은 아니다.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만, 그 모습으로 나아갈 추동력이 생기기 때문에 믿는다. 나와 대화를 주고 받는 이 사람들과 오늘 햇살의 기운을 믿을 때 아름다움이 현현한다. 믿고 기대하지 않을 때, 그 안에 내재되어 있던 아름다움은 세상 밖으로 나올 힘을 잃는다. - 믿음 체계



우리는 다르지만 꼭 한 번 같았던 적 있다

스스로를 보살피고, 타인과 연대하고, 서로를 이해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작가의 의도와는 다를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우리 모두가 누군가의 삶처럼 살고있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짐작해본다.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는 언젠가 비슷한 상황을 겪고, 비슷한 감정을 품고 살아간다고 믿기 때문에. 행복해 보이는 사람도 언젠가 사무치게 슬펐던 적이 있고 혼란스러웠던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감정들은 우리가 예전에, 지금, 혹은 미래에 불어온 바람같은 것일 거다. 빛나는 말을 펼치는 사람조차도 무언가를 꺼내기 위해 씹어 삼켜야 했던 것들이 있을테니까. 우리는 다르지만 꼭 한번 같았던 적이 있기 때문에.


그렇기에 나는 서로의 말 못할 사정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이해하는 삶을 살고 싶다. 다행히 모두가 겪었던 아픔들은 같은 시간에 오지 않는다. 누군가는 미리 겪고, 누군가는 지금 겪는다. 그래서 두 사람은 연대하며, 대화를 나누며 다른 한 사람을 지탱시켜줄 수 있다. 시간의 엇갈림은 이런 감정의 격차를 보호해준다. 너무나 많이 무너지지 않도록. 둘 사이의 두터운 사이를 만들 수 있도록.



07 들여다보면 다들 아팠다/ 어느 날은 이것이 나의 위안이었다/ 멋진 사람을 보고 따라 웃는 날도 있었으나/ 멋진 사람을 보고 숨는 날도 있었다// 문득 나는 안다/ 행복한 사람도 아프다/ 웃는 사람도 울었고 울 것이다/ 우는 사람도 웃었고 웃을 것이다// 빛나는 말을 펼치는 사람조차도/ 무언가를 꺼내기 위해/ 씹어 삼켜야 했던 것들이 있을 것이다// 자존감은 소화가 느리다 - 자존감


08 우리가 보는 달빛은 태양빛을 반사시켜 비추는 빛이다. 푹 팬 운석 구덩이를 온 몸에 이고 빛을 내는 일. 우리의 모습과 닮았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아픔과 상처를 가진다. 그러나 아픈 마음이어도 나는 여기에 존재해야 한다. 존재해야만 내게 꾸준히 오고 있는 빛을 받아 내 존재로서 빛을 보여줄 수 있다. - 달과 빛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아직까지는 여기까지 밖에 설명을 못하는 것 같다. 이 책은 기술적으로도 짧은 문장으로 깊은 이야기까지 끌어오는 게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던 책이었다. 두고 두고 읽고 싶은 책, 다음에 좀 더 잘 표현할 수 있게 되면 그때 진짜 내 문장으로 글을 써야겠다.


* 만월의 달빛 책방은 매주 금요일 오후 8~11시 업로드 됩니다

        

이전 05화 최고의 기록은 남을 위해 쓴 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