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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아나 Aug 19. 2023

최고의 기록은 남을 위해 쓴 글

이옥선 김하나 <빅토리 노트> 독서 기록

누군가를 위해 시간을 내어 글은 쓴다는 것은 그 자체로 사랑을 보증하는 행동이라 생각한다. 여기 5년 간의 내리사랑으로 쓰여진 한 육아 일기가 있다. 이옥선 여사, 아니 이옥선 작가의 글을 읽다보면 어린 아이의 예측할 수 없는 엉뚱함에 쿡쿡 웃기도, 평범해서 더욱 공감가는 우리 가족의 모습이 떠올라 추억에 잠기기도, 사랑스러움 필터를 끼고 자식을 아끼는 부모의 마음이 글에 고스란히 담겨 먹먹해지기도 한다.


임신을 준비하는 친구에게, 또는 출산을 한 친구에게 꼭 선물해주고 싶은 책이다. 우리는 모두 사랑받고 자랐음을 굳건히 믿게 해주는 힘이 있다. 이옥선 작가의 <빅토리 노트> 리뷰다.



책에 대한 오해가 생길까봐 말해두자면 엄청난 모성애나 먹먹한 내용이 주를 이루는 책이 아닌, 엄마인 ‘이옥선’ 여사가 태어난 둘째 딸 ‘김하나’를 관찰하며 쓴 평범한 육아 일기다. 둘째 딸 ‘김하나’는 커서 작가가 되었고, 자신의 보물은 엄마가 써준 ‘빅토리 노트’라고 얘기를 했다. 이후 호기심을 가진 독자들의 성원에 힘입어 혼자만 보려고 했던 빅토리 노트가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여기까지 배경 설명 끝!


모든 걸 용서하는 엄마의 다정한 눈빛

가족들이 딸인데 못생겼다고 놀려도 ‘내눈엔 여전히 귀엽다’라고 말한다. ‘쉬하고 싶어’를 말하고 쉬야를 잘 마무리하면 기특해한다. 일기를 읽다보면 중간중간 ‘여전히 귀엽다’, ‘내 눈엔 귀엽기만 하구나’라는 말이 거의 빠짐없이 등장한다. 김하나 작가는 빅토리 노트를 보고 ‘놀랄 정도로 힘이 세다’고 말했는데, 그 이유를 왠지 알 것 같다. 아무런 조건없이 나를 예뻐하고 지지한다는 건 정말 돈으로 살 수 없는 용기를 가져다주니까 말이다. 책을 준비할 당시 김하나 작가는 이옥선 작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와중에 엄마가 쓴 글을 한 자 한 자 보고 있으면 마음이 몽글해진다고 얘기한다.


우리 엄마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대학을 나오지 않고 맞춤법도 곧잘 틀리시지만, 나를 키우며 느꼈던 감정과 사랑만큼은 다를 바가 없다고 나는 믿는다. 처음엔 이 책을 보며 나에겐 왜 이런 노트가 없나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내 흐릿한 어릴 적 기억과 겹쳐졌다. 신복남 여사도 이옥선 여사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어디에 놀러갔다, 거기서 뭘 먹었다, 상처가 났다, 사소한 하루하루의 기록들이 쌓여 지금의 김하나 작가를 만들었듯 엄마의 부지런한 사랑으로 지금의 내가 만들어져 있다. 어느 수영장에서 수박을 먹고, 재롱 잔치에서 최진사댁 셋째딸을 연기했던 기억 속 내가 자라났다.


30대 여성의 미숙함과 사랑

내가 30살 초반을 살아가다 보니 그 나이에 이미 대여섯살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얼마나 무서웠을지, 또 얼마나 고생했을지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의 나는 아직 배울 게 너무 많고, 더욱이 엄마가 되기에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데.. 육아 정보는 입으로만 내려오던 그 때의 엄마들은 얼마나 두렵고, 겁이 났을까? 같은 서른 초반의 엄마의 모습은 장담하건데 같은 나이에도 나보다 훨씬 크고 성숙할 것이다.


어렸을 적 커다란 개가 무서워 엉엉 울던 우리 자매를 보며 “어느 작것들이 개를 처 풀어싸놨노 시발것들이”하며 욕을 하던 게 30대의 우리 엄마다. 나와 동생이 창문을 열어 놓고 장난감 놀이를 하던 때, 열악한 집이라 바퀴 벌레들이 득실득실 우리 집으로 들어왔을 때에도 엄마는 “너네는 들어가 있어”하며 에프킬라를 들고 혼자서 안방으로 들어갔다. 고작 서른 초반이었을 그 여인은 자식을 위해 쉼호흡을 하며 날아다니는 바퀴벌레를 죽였다. 처녀 시절 상상도 못했을 일이었을텐데 말이다. 아빠가 거짓말하고 다방에 간 일을 들켰을 때도 엄마는 방문을 잠가놓고 우리를 방 안으로 들이지 않았다. 당시 부부끼리의 일은 부부끼리 해결해야 된다는 마음이었다고 했다. 애들한테 싸우는 건 보여주지 않아야 한다며. 그 때의 엄마도 서른 초반이었다. 이 기억은 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직전의 기억이니까. 아직 모르는 것이 많고 여전히 한창인 30대의 나이에 이 모든 것을 해냈다는 사실이 너무 놀랍다.


책에는 그저 오늘은 무엇을 했고 뭘 먹었고 누구와 싸웠다는 얘기만 담겨있지만, 읽는 내내 우리의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한다. 내가 아이를 낳게 된다면, 나의 모성애를 쥐뿔이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꼭 육아 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과거가 없는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온전히 책을 읽으며 뭉클했던 순간은 5년 간의 육아 일기를 마친 마지막 글이었다. 미래의 현재를 위해 과거가 될 현재를 기록하며, 엄마로서 느낀 감정들을 솔직하게 남겨주었다. 누군가의 기쁨이자 고생이자 두근거림, 사랑이 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벅찬 일이다. 마지막은 이옥선 작가가 쓴, 아기 하나에게 남긴 말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지금까지 만 5년 동안 하나는 참 잘 자라주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잘 자라서 훌륭한 생을 만들어가리라는 걸 엄마는 의심치 않는다. 하나가 커서 이 노트를 보게 될 때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 하나야, 엄마는 타고난 악필이지만 미래의 하나를 위해서 충실치는 못했지만 가끔씩이라도 이렇게 적어놓고 싶었다. 과거가 없는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의 안개 속에 가려졌던 아득한 유아기의 자락이 조금이라도 펼쳐 보이지 않을까?

지금 엄마의 나이는 서른네 살이지만 이 노트를 받게 될 때 엄마는 쉰 살쯤 되겠지. (…) 낳아서 젖 물려 재우고 따로 서로 첫발을 내딛고, 기저귀를 떼고, 말을 한마디씩 배우고, 글자를 익히고. 순간순간이 엄마의 기쁨이었고, 고생이었고, 가슴 두근거림과 놀람 그리고 보람이었다.


다시 한번 하나야. 잘 자라서 무엇인가를 이루고 깨닫고, 그리고 스스로 만족하며 또한 만족함을 주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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