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급전개하는 것 같아 머쓱하지만, 퇴사했다. 새로운 회사로 이직한 지는 두 달이 조금 넘은 참이다. 이직이야 누구나 겪는 적응의 과정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겪어보니 이미 역할이 정해져 있는 팀에 비집고 들어가는 일은 꽤 피로한 일임을 체감한다. 정확히는 4년 9개월, 5년 차를 앞두고 최근까지의 근황과 생각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나는 게임 회사에서 사업 PM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N사에서 K사로 옮겼는데, 연봉은 정말 쥐꼬리만큼 올렸다. N사는 비포괄이고, K사는 포괄이라 더 파격적으로 올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결국, 마지막까지 제시된 금액은 크지 않았다. 오히려 원천 기준으로는 깎아서 온 걸로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결국 새로운 환경에서 일하는 것을 선택했다.
이직을 결정했던 가장 큰 이유는 <이대로면 앞으로 성장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다. 경력직 면접에서 자주 하는 흔한 패턴이기도 하지만, 내 경우에는 원천 깎을 각오를 할 만큼 간절했으니 말 다한 거 아닐까?
전 회사는 꽤 안정적인 곳이었고, 내가 있던 조직도 부족함 없이 라이브를 해오던 팀이었다. 다만 안정적이었기에 그만큼 익숙한 방식을 고수하던 곳이기도 했다. 정말 많은 에피소드가 있지만 거두절미하고 시키는 거, 찍어서 내려오는 거 하면 되는 조직이었다. 팀원들끼리는 마치 우리가 용역 회사 직원 같다는 농담을 할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그마저도 익숙해질 즈음이었다. 눈 딱 감으면 고인물 메타 타기 직전인 나름 일촉즉발의 상황.
내가 10년 차가 넘었다면 익숙한 일을 선택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쉽게도 난 시니어가 아니었다. 이대로 멈추기엔 스스로 업계를 잘 안다고 자부할만한 경험도, 지식도 없었기에. 그게 제일 걸렸던 것 같다. 7년 차, 8년 차가 되었을 때 스스로의 모습이 뿌듯하지 않을 것 같아서. 회사가 큰 만큼 유관부서도 많다 보니 프로젝트 일부만 알게 되는 것도 문제였다. 경력직으로 왔던 분들은 A~Z까지 아는 느낌이라면, 나처럼 이곳에서 오래 머물렀던 분들은 딱 회사에서 우리가 관여하는 것들만 알고 있었다. <회사는 탄탄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내가 다른 곳으로 떠나게 된다면 나는 필드에서 당당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떠오르질 않았다. 22년 5월의 긴 연휴 동안에 나는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새로 옮긴 회사는 전 회사 규모의 1/10이었다. (전 회사가 지나치게 규모가 크긴 했다). 그리고 퍼블리싱을 하는 곳이라 그런지 IP당 담당 인력이 생각보다 적었다. 아마 개발사랑 이익을 나눠 가져야 하는 구조다 보니, 인력 하나의 비용 책정에 신중한 것 같다는 개인적인 추측이다. 여튼 새로 옮긴 회사에서 놀랐던 점은 포괄 & 인력 적음 & IP 많음의 결과로 사람들이 정말 밀도 있게 일한다는 점이었다. 주어진 근무 시간 내 시간 로스 없이 일을 해내기 위해 정말 빠듯하고 치열하게 일하고 있었다.
우리 팀 한정일지는 모르겠으나 업무를 대하는 조직 태도도 능동적이고 긍정적인 편이다. 일을 만들어서 주도적으로 일하고, 문제가 생기면 즉각적으로 의논하고 해결하려 한다. 실무자 결정 권한도 많은 건 덤. 2달 정도 둘러보고 나니 확신할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서 런칭 라이브를 하면 나는 할 줄 아는 게 많아지겠다>라는 것을. 블라인드에서는 여기도 고인물 회사라고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곳곳에서 긍정적인 조직 문화를 느끼고 있어 만족 중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무지무지 재미가 없다는 거다. 나는 30대 초반이고,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30대 후반이거나 40대들이다. 이것도 퍼블리셔 특징이겠지만, 실무 투입 가능한 인원 중심으로 채용을 하다 보니 다들 나이대가 있는 편이다. 분명 같이 이야기하는데 어느 순간 대화 주체에 내가 빠져있는 느낌이 든달까 나. 팀원들은 분명 사려깊고 열정적이지만, 또래 동료와의 캐미를 기대할 순 없으니 아쉬움이 없을 수가 없다. 나이 차가 있으니 대화가 조심스럽기도 하고. 뭐 이게 다들 겪는 이직의 적응 과정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오지게 재미없다는 거!
전 회사에서는 또래들이 많아서 사무실에서도 하하호호 떠들었는데... 참 아이러니하다. 재밌었지만 커리어적으로 유해한 곳과, 커리어적으로 유익하지만 정말 재미가 없는 회사의 밸런스 게임이라니. 회사의 재미 없음에 대해 최근에 같은 회사(N사)에서 같은 회사(K사)로 이직한 동갑의 지인에게 털어놓았다. 지인도 비슷한 감정이라고 했다. 흡연자인 그 친구는 같이 담배를 피우러 가도 하늘만 보고 피우거나, 아예 따로 혼자 나온다고 했다. 괜스레 나만 그런 게 아닌 거 같아서 조금 위안을 얻었다.
아쉬운게 없지는 않겠지만, 일단은 일장일단이 있다고 생각해보려 한다. 지금은 조직이 조금 어려워도 시간이 지나면 나이 차가 있더라도 친해질 테니까. 사람들도 좋고 또 배울 점도 많으니 좋은 식으로 생각해보면 그래도 다닐만하지 않을까?
자 여기까지가 나의 하소연이었다. 이 밸런스 게임의 결과는 6개월 정도 뒤에 다시 얘기해봐야겠다. 일단 오늘의 나는 수습 평가부터 잘 넘겨야 하니까! (찡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