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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아나 Dec 29. 2023

최고의 순간은 둘이서 하나가 될 때

신은지 <엄마가 좋은 기분이에요> 독서 기록

남자친구에게 “오늘 달라진 거 없어?”라고 묻는 일상은 소중한 사람이 나의 변화를 알아차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말이다. 내가 가장 아끼는 사람이 나의 작은 순간까지 알아준다는 것은 뼛속까지 사랑받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연 누군가의 작은 변화에 주목하며, 함께 기뻐해주고, 엉덩이를 두드려주는 따뜻한 사랑을 경험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우리는 젖먹이 시절부터 젖뿐 아니라 사랑도 배려도 서로를 위하는 마음도 잔뜩 먹고 배웠으니까. 보살핌이라는 사랑의 경험, 그 사랑을 나도 내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글은 신은지 작가 <엄마가 좋은 기분이에요>에 대한 독서 기록이다.


책에는 한 살부터 네 살까지 자라는 아이 ‘찌보’를 키우는 작가의 일상이 담겨있다. 고되고 지단한 육아 속에서 채를 떠 걸러 낸, 햇살 가득한 이야기다. 지나가기만을 바라던 시간들이지만, 그 속에서도 눈부신 햇살같은 순간이 있었기에 잊지 않기 위해 기록했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삶이기에 음미했을 때 더 빛나는 이야기들이 있다. 책은 일러스트가 메인이지만 아이를 대하는 마음, 엄마로서의 책임감, 힘들지만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에 대한 메시지가 책 곳곳에 스며있다. 가벼운 주제지만, 작가가 만들어낸 시간은 결코 가볍지 않기에 오히려 빨려가듯 읽었다.



둘이서 하나인 찰나의 순간을 기억해

작가의 이야기 중 가장 인상 깊은 메시지는 ‘우리는 잠시 뒤섞여 새로 빚어질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엄마가 먹는 것이 몸이 되고 엄마의 숨이 곧 아기의 숨이 되던 시간을 지나, 엄마의 태도와 생각이 곧 아이의 것이 되고, 엄마의 말이 곧 아이의 말이 되는 소중한 시간을 건너는 중이라고 말한다. 갓난아기를 막 벗어났지만 엄마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의존의 시기를, 작가는 ‘우리가 잠시 서로 버무려진 놀랍고 귀한 시간’이라 표현한다. 시간이 지나면 아이는 자신만의 분명한 세계를 만들어 나아갈테다. 그 사이, 아주 짧은 지금을, 함께하는 매일을 기억하고자 작가는 그림을 그렸다.


잠시 버무려졌다 새로 태어나는 것은 엄마도 마찬가지다. 아마 아이를 만나기 전의 30년과 아이를 만난 후 앞으로의 50년은 많이 달라질 것이다. 엄마의 역할을 고민하는 것은 진정한 이타성을 길러내는 시간이 될 것이다. 넘어지고 부딪히면서도 웃으며 자라는 일을 멈추지 않는 아이를 보며 용기를 얻기도 한다. 아이와 함께 자란다는 말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아마 잠시 하나였다 다시 둘로 나뉘어지는 순간엔, 아이도 엄마도 모두 눈부신 변화를 경험하는 것이라 상상해본다.


너는 나였다가 네가 되겠지. 나 역시 네가 된 나를 마주하며 다른 내가 될 거고. 우리는 잠시 뒤섞여 새로 빚어질 거야. 너를 만나기 전 30여 년과 너를 만난 후의 50여 년. 그 사이 아주 짧은 지금, 네 유년의 시간은, 우리가 잠시 서로 버무려진 놀랍고 귀한 시간이 아닐까


존재가 주는 사랑을 기억해

아이란 일방적으로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도 작가를 통해 배웠다. 때로는 태어난 지 3년도 안된 애와 기싸움을 할 때도 있지만, 이 작은 존재 역시 엄마 아빠의 소중함을 알고 나름대로의 사랑과 배려를 내어준다는 사실을 말이다. 부모가 진실된 마음으로 사랑을 준다면, 아이는 넘치는 사랑을 그릇에 담아 다시 내어준다. 사랑을 주고받는 연습을 한다.


엄마가 나를 사랑해서 같이 놀아준다는 것을 알기에 ‘엄마, 이제 쉬어’라 말할 수 있고, 엄마가 나를 예뻐해주는 것을 알기에 힘이 없을 때 ‘힘 나라고 하는 거야’라며 뽀뽀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내가 엄마를 좋아하기에, 햇빛을 담은 그릇을 누워있는 엄마 등 위로 뿌려줄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장면의 일러스트가 너무 예쁘니 꼭 책으로 보길 권한다.) 부모가 아이를 바라보며 사랑을 줬듯이, 아이 역시 부모를 바라보고 받은 사랑을 천천히 소화한다. 아이의 귀여운 모습으로 넘길 수도 있지만, 그 순간 어린 존재가 우리를 위해 사랑을 주는 연습을 하는 것을 여러 장면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이러니 가진 게 별로 없어도, 존재가 있으면 자꾸 줄 게 생기나 보다. 아무 것도 가진게 없어도 온기를 나누고, 함께 꺄르르 웃으며 기쁨을 나눈다.


찌보가 엄마를 좋아하는 마음은 어떤 모양이야? / 예~쁘고 동그랗고 따뜻한 모양. 빛이 뾰로롱 뾰로롱 나. 그리고 별이 있어. 이렇게 안으면 동그란 마음이 엄마한테 가




20대 시절 내 롤모델이었던 언니의 인스타그램에는 육아의 고됨과 억울함, 차별에 대한 분노가 얼룩져있던 적이 있었다. 한 때 그 글을 보며 ‘역시 출산은 미친 일’이라 생각한 적도 있다. 만일 앞으로 내가 아이를 낳게 된다면, 이 책의 신은지 작가처럼 따듯한 햇살의 기록*을 남겨두고 싶다. 모든 시간에는 기쁨과 슬픔이 있고 그 바다에서 무엇을 집어 올리느냐는 마음가짐과 태도가 비롯되니 말이다. 감히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내가 마주할 출산과 육아도 그럴 것이라 믿는다. 유한한 시간의 소중함과 서로가 주고 받는 사랑이 길을 잃지 않도록 부지런히 애쓰면서 살고 싶어졌다.


책은 임산부인 친구 여럿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출산 후 아득바득 애써온 시간의 억울함과, 달아난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부터 선물 같은 시간을 지켜내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육아의 억울함과 정신 승리만 외롭게 외치는 세상에서, 햇살 그득한 따스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읽는 내내 즐거웠다. 기혼, 미혼, 자녀 유무 상관없이 모두 읽어보면 좋겠다. 따뜻한 욕조에서 30분동안 읽다보면 어느새 무장해제된채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 햇살의 기록이라 표현한 sunshine_log는 실제 작가의 인스타그램 계정이기도 하다.
** 책은 독립출판으로 출간되어 대형 서점보다는 독립 서점이나 인터넷에서 구하는 게 더 쉽다.

*** 책의 전반적인 요약 또는 필사는 개인 블로그에서 확인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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