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워킹홀리데이 여덟 번째
한 달하고 열흘을 더 일하고 뜻밖의 2주 휴가를 얻었다. 덕분에 최고 온도 25도를 넘지 않은 생경한 뉴질랜드 여름의 끝을 붙잡고, 남섬 어딘가를 향해 여행길에 올랐다. 여행 계획을 세워보라는 잔의 독촉을 애써 외면한 것은 잔의 몇 차례 남섬 여행 경험과 숙소 예약을 걱정할 필요 없는 일종의 캠퍼밴을 믿었기 때문이지만, 요즘 내 삶을 되돌아볼 때 여행 역시 계획대로 될 리 없다는 막연한 의심도 한몫을 차지했다. 일상으로 되돌아온 지금 2주 간의 남섬 여행을 꿰뚫는 제목을 지어볼까 하다가, 글을 마친 후에 정하는 것이 더 수월할 것 같아 그만두었다. 다만 지난 사진을 쭉 살펴보니 이번 남섬 여행기에는 낚시꾼으로 거듭난 잔과 그를 기다리는 내 심정을 늘어놓을 것이 자명해 보인다. 그래서 단번에 정한 부제목은 '낚시가 싫어서'.
뉴질랜드에서 처음 만난 날, 잔이 쓰고 있던 모자에는 가로로 본을 잘 뜬 물고기와 'fisher man'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우리가 떨어져 있는 동안에 뉴질랜드는 잔을 이마 한가운데 정체성을 당당하게 새긴 낚시꾼으로 만든 것이다. 이곳의 아름답고 깨끗한 바다와 강은 다양한 물고기를 무럭무럭 키워냈고, 사람들은 자연스레 그림 같은 풍경에 몸을 담그고 낚시를 즐기게 되었을 것이다. 물론 뉴질랜드 정부도 철저한 규칙과 친절한 가이드를 통해 낚시와 자연보호를 모두 낚는 정책을 펼치며 건강한 낚시 문화를 만들고 있다. 덕분에 어린 아이부터 할머니까지 낚시를 즐기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온가족이 함께 낚시를 즐기는 장면은 내게는 낯설고 따뜻한 풍경이었다. 하지만 이제 이 풍경 한가운데 당당히 낚시 라이선스를 거머쥔 잔이 있다. 국립공원에서도 낚시를 할 수 있다며 자랑을 휘두르는 잔은 강과 바다를 가리지 않고 바늘을 담근다.
나의 가계도를 거슬러 올라가면 물고기와 진한 인연을 찾을 수 있다. 횟집을 운영하며 육 남매를 길러낸 외할머니 품에서는 비릿한 생선 냄새가 났다. 덕분에 섬에서 나고 자란 엄마의 육 남매는 생선 손질을 거뜬히 해낸다. 역시 섬에서 자란 아빠는 낚시를 업으로 삼았다. 큰 배를 타고 먼 바다에서 오랫동안 물고기를 잡아 올렸을 아빠의 식탁에는 아직도 생선이 늘 한 자리를 차지한다. 이렇게 어린 나를 키운 것이 팔 할의 물고기였음에도 나는 그들이 반갑지 않다. 낚시 또한 도무지 즐겁지 않다. 내게는 미끼를 끼우는 일부터 고역이다. 거센 바람과 뜨거운 태양에 맞선 오랜 기다림 속에 물고기를 잡고 나면 어떠한가. 절대 감지 않는 동그란 눈을 애써 피해가며, 미끈한 비늘에 손을 대고 싶지 않다. 입술을 꿰뚫은 바늘에서 벗어나려 처절한 몸부림을 칠 때면 절로 소리를 내지르게 된다. 무사히 낚싯대에서 손을 떼더라도 몸에 밴 비릿한 냄새는 머리를 아프게 한다. 하지만 나는 낚싯대 두 대와 함께 낚시꾼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여행길에 올랐다.
뉴질랜드에 가면 어느 곳에서 살 거냐고 물어보는 지인들에게 '넬슨'이라고 대답을 하면 다섯 중에 하나는 '오, 넬슨 만델라!'라고 농담을 건넸다. 나폴레옹의 프랑스 함대를 격파한 영국 제독의 이름 딴 이곳, 넬슨에서는 정작 흑인을 만날 일이 거의 없으니 꽤 실없는 반응이다. 이처럼 한국인에게 꽤 낯선 넬슨은 해변을 제외한 삼면이 산악지대로 둘러싸여 있어서 다른 지역을 여행하기 위해서는 산맥 하나를 넘어야 한다. 그리고 산맥을 따라 굽이굽이 이어지는 도로는 내 속을 휘저어 구역질을 하게 만든다. 어느 하나 쉽지 않은 관문 중 이번엔 넬슨 레이크(Nelson Lakes) 국립공원을 통과하기로 했다. 마오리 족장이 막대로 판 구멍들이 호수가 되었다는 신화가 전해지는 아름다운 호수를 보니, 흙을 퍼서 한라산을 만들었다는 제주도 설문대할망 신화가 생각났다. 아주 먼 옛날 커다랗고 힘센 신화 속 주인공들이 손쉽게 지구를 주무르며 산과 호수를 만들고 나서 서로에게 늘어놓았을 자기 자랑을 상상하다가, 이왕이면 길도 좀 잘 닦아 주시지 하며 구역질 대신 아쉬움을 토했다.
넬슨 레이크 국립공원을 떠나 비가 내리는 Murchison의 한 캠프 사이트에 느지막이 도착한 우리는 수출용 신라면을 끓여 먹으면서 대한민국 이익 창출에 이바지를 했다.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지 못해 헤매는 내게 옆에서 쌀을 끓이고 있던 청년이 도움을 주었다. 간단히 라면으로 한 끼를 때우는 우리와 달리 혼자서도 부지런히 쌀을 익혀 요리를 하는 청춘을 대견하게 바라보고 있는 사이, 신라면의 매운 열기 때문에 사람들이 기침을 하기 시작한다. 오랜만에 맡는 신라면의 향기의 덩달아 나도 기침을 했다. 다만 내 기침은 얼큰한 것을 향한 욕망을 더욱 일으켰다. 오랜 시간 굽이굽이 휘어진 길에 지친 속을 맵고 뜨거운 신라면으로 달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잔은 비를 뚫고 낚시를 하러 갔다. 나는 이미 잡은 물고기가 된 기분이었다. 이럴 때 나는 전투적으로 모국어을 읽었다. 하지만 아무리 차분하게 책을 읽는 여유를 부려보아도, 사실은 낚시가 싫어서, 아직 잡히지도 않은 물고기를 질투하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