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워킹홀리데이
한 달 동안의 뉴질랜드 북섬 여행을 끝내고 잔과 헤어지는 날이다. 나는 오클랜드 시티 근교의 마카다미아 과수원에서 한 달을 더 보내기로 했고, 잔은 나흘 뒤면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서로에게 몸 건강이 잘 지내라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느라 나는 꽤 애를 먹었다. 헤어지기 아쉬워 잔을 꼭 부둥켜 안고 놓지 않으니, 작년 3월 나리타 공항에서 작별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우리는 뉴질랜드라는 낯선 곳에서 만나기로 했었고, 오늘 우리는 한 달하고 조금 후, 봄을 건너뛴 여름의 토론토에서 만나기를 기약했다. 우린 또 무사히 만나겠지만 헤어짐은 점점 힘들다. (하지만 마카다미아 넛과 마카다미아로 만든 잼과 쿠키를 먹고 극복.)
잔이 없는 뉴질랜드는 자신 없었다. 그냥 바로 캐나다로 가는 게 어떨까 고민했지만 뉴질랜드를 이대로 떠나기는 아쉬웠다. 다만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 일을 새로 구하기는 힘들 것 같고, 그렇다고 여윳돈이 있어서 혼자 여행할 형편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우프(wwoof)를 해보기로 했다. 우퍼가 되면 농장에서 반나절 정도 일하는 대가로 숙식을 해결할 수 있다. 덜컥 뉴질랜드 우프 사이트에 가입을 하고 오클랜드 근처 마카다미아 과수원에 지원을 했다. 단순히 마카다미아를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많이 먹고 친해지자 마카다미아야.
오클랜드 시티에서 차로 이십 분 정도 떨어진 것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과수원은 울창한 나무 틈에 둘러 쌓여 있었다. 곧게 뻗은 소나무 사이로 내어 놓은 좁은 길을 통과하여 숙소로 향할 때, 이곳에 한 번 들어가면 꽤 나오기 힘들겠다는 것을 직감했다. 마치 공포 영화의 도입부가 시작된 느낌이었다. 나는 굳이 오클랜드 시내로 나올 생각은 없었기에 그저 좋은 사람들과 깔끔한 곳에서 지낼 수 있길 바랐고, 내 바람은 반쯤 이루어진 것 같다. 호스트 Sue와 John은 아주 친절한 사람들이고 숙소는 깔끔했다. 빈 서랍에 내 물건들을 착착 채워 넣고 잔을 닮은 플레이모빌과 친구들을 올려놓으니 눈물이 주르륵, 공포 영화가 아니라 멜로 영화가 되어버렸다. 너무 잘 보이는 곳에 두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데이 오프라 다른 우퍼들은 해밀턴에 놀러 간 탓에 혼자 멀뚱이 앉아서 토론토 룸 렌트 웹사이트를 살피고 있는데, Sue가 과수원에서 키우는 양을 살피러 같이 가자 청했다. 양을 사랑하는 당장 따라나섰다. 빈 양동이에 양을 유인할 간식을 챙긴 그녀가 울타리를 넘고 양들의 이름을 부르자 이를 알아들은 귀여운 어린양이 달려왔다. 낯선 나를 경계하고 쳐다만 보고 있는 다른 양들과 달리 Sue가 직접 우유를 먹여 키운 어린양들은 사람을 잘 따랐다.
Sue가 알려준 양이 좋아하는 마사지 포인트는 볼 아래와 엉덩이였다. 나는 이게 무슨 축복인가 얼떨떨하면서 적당히 뻣뻣한 러그의 촉감과 꼭 같은 양의 얼굴과 엉덩이를 손으로 마구 비벼댔다. 옆 울타리에는 조금 더 어른 양들이 있었는데 Sue가 이름을 외치자 당당한 걸음의 양 한 마리가 마중을 나왔다. 나를 경계한다기보다는 환영하는 느낌이었다. 'Eva' 양은 무려 몇 번의 싸움을 거쳐 차지한 무리의 대장이라고 했다. 그녀의 멋짐을 존경하는 뜻에서 힘껏 엉덩이를 만졌더니 조용히 선 채로 굵은 오줌을 누었다. 과연 나는 환영 받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