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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요 Jul 03. 2017

양에게 신선한 잔디를 공급하는 것

뉴질랜드 과수원 이야기


아침 아홉 시가 되면 우퍼들은 호스트 Sue를 만나 오늘의 할 일을 안내받고 그에 따른 복장 및 장비를 지급받아 일터로 향한다. 오늘 첫 번째 할 일은 양에게 똥밭이 아닌 신선한 잔디를 공급하는 것, 두 번째는 과수원을 쭉 둘러싸고 있는 대나무 숲 중에서 필요 없는 대나무를 잘라내고 조각내는 기계에 집어넣는 일이었다. 이렇게 듣도 보도 못한 일이 시작되었다. 


이 길을 통과하면 유기농 마카다미아 농장이 나타난다. 


첫날부터 양들의 똥을 치우는 것인가. 그래도 소똥보다는 낫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내게 주어진 연장은 고작 장갑뿐이었다. 손으로 양 똥을 치운다는 사실에 살짝 당황한 마음을 차분하게 다독이며 따라나섰더니 아픈 양들을 가둬 놓은 작은 이동식 울타리 앞에 모두가 멈춰 섰다. 그리고 우리는 신선한 잔디가 무성한 곳으로 울타리를 옮겼다. 영어 고자는 이렇게 위험했다. 아픈 양들은 발굽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비가 자주 내려 너무 질은 땅에서 생활을 하다보면 발굽이 썩는 일이 흔하다고 한다.



오늘도 몇 마리 양이 강아지처럼 사람을 반기며 쫓아왔다. 양이 통통 거리며 뛸 때마다 기다란 꼬리가 흔들렸다. 흔들 흔들이라니 어째서 양 꼬리가 길지? 보통 양 목장에서는 양이 태어나면 꼬리를 짧게 자른다고 한다. 꼬리가 길면 응아가 묻을 확률이 높고, 그 응아를 양분 삼으려 나비가 알을 낳게 되면 유충들이 양이 괴롭히고 심하면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고 했다. 우리 과수원은 단순히 잔디 관리 차원에서 스무 마리 남짓한 양을 키우는 것이라 충분히 양들을 살필 수 있어서 꼬리를 자를 필요는 없다고 했다. 실제로 Sue는 대부분 양들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고 그들은 자신의 이름을 알아들을 정도로 친밀한 사이였다. 이렇게 양에 대해 알아가고 친해질수록 앞으로 양꼬치를 못 먹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됐다. 충분히 귀여워서 맛있을 필요까지 없었을 텐데. 하림 오빠는 맛있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간단히 표로 보여줬다. '맛있다 -> 사형'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Sue를 따라가는 Eva  양


이제 대나무를 처리할 시간이다. 우리는 보호 안경과 귀마개를 장착하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대나무를 씹어 먹는 기계 앞으로 향했다. 나는 건네받은 안경의 다리가 귀에 걸어지지 않아서 애를 먹었다. (뭐야, 다들 왜 이렇게 머리가 작아.) 간단한 설명을 듣고 나서 대나무 잎을 좋아하는 양에게 물어 뜯겨 아래 줄기가 허전한 대나무 더미들을 기계에 연신 집어넣었다. 기다랗고 단단한 대나무를 기계가 무식하게 삼킬 때면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대나무를 튕기는 경우가 있는데, 탄력 있게 튕겨 난 굵은 대나무 한 줄기가 내 얼굴을 세차게 내리치기도 했다. 오후 한 시, 모든 일을 끝내고 샤워실 거울을 마주한 내 몰골은 진흙과 나뭇조각이 온몸에 덕지덕지 붙은 것이 제법 초보 일꾼 티가 났다.



다음 날, 아직 마카다미아는 수확할 준비가 되지 않아 소일거리를 돕기로 했다. 그중에 하나는 잡초를 제거하는 것. 쭈그려 앉았다가 허리를 숙였다가 자세를 바꿔가며 잡초와 실랑이를 벌이다 보니 허리가 무척 아팠다. 이제야 농활을 다녀온 친구들이 잡초 제거라면 왜 혀를 내둘렀는지 이해가 갔다. 앉은뱅이 의자, 시골 할머니의 필수 아이템, 그 의자를 떠올리고 있을 때 저 멀리서 촉촉한 흙바닥에 묵묵히 무릎을 꿇고 잡초를 뽑고 있는 다른 우퍼가 눈에 들어왔다. 역시 더럽히기로 작정하고 작업복을 포기하니 일이 한결 수월해진다. 몸이 편해지니 잡초를 뽑을 때마다 당황하여 황급히 사라지는 각종 벌레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에서 라식 수술 안 하고 왔으면 엄청 큰 지네를 해맑게 만질 뻔했다. 수술하길 잘했다.


john이 트레일러를 만드는 동안 나는 페인트 칠을 담당했다. 


폴란드 출신 호스트 John 아저씨는 삼십여 년 전에 뉴질랜드에 정착을 했다. 이것저것 새로운 일이 재밌다는 아저씨의 창고에는 온갖 기계들이 즐비하고 트랙터도 종류 별로 몇 대나 있다. Sue는 웬만한 기계들은 다 만들어 내는 덕분에 마카다미아 넛 생산이 훨씬 수월해졌다고 아저씨를 칭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에는 망치로 직접 부셔서 얻어내던 알맹이를 이제는 기계가 알아서 껍질을 까서 분류해준다. '공구 러버' 아저씨답게 요즘은 두꺼운 철판을 직접 잘라가며 트레일러를 만들고 계신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톱으로 튀어나온 볼트를 잘라내는 작업을 도왔다. 우려와 달리 너무나 거뜬히 잘라냈더니 나는 과수원이 아니라 아저씨와 작업하는 일이 늘어났다. 지나치게 강한 한국 여성상을 심어준 것은 아닐까 조금 걱정이다. 잔이 뭐든 힘으로 하려고 하지 말라 했는데.

 


무어라도 한 마디 더 영어로 뱉고 싶은 마음에 잔이 예전에는 음악을 만들고 부르던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아저씨와 잔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순간 아저씨는 슬쩍 미소를 짓더니 나를 낯선 방으로 데려갔다. 그곳에는 커다란 기계 뒤로 내 키만 한 마샬 앰프와 스피커, 신시사이저 등이 가득했다. 자신도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던 사람이라고, 여기 이 공간은 사실 기계가 아니라 음악을 위한 공간이었다고 말하는 아저씨의 왼손 새끼손가락은 이제 잘 접히지 않는다. 아저씨는 추억을 간직하고 싶기 때문에 음향 장비를 팔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뉴질랜드로 떠나면서 처분했던, 잔이 아끼던 스피커와 턴테이블 그리고 기타와 합정동의 낡은 아파트가 생각났다. 잘 지내니, 우리 추억들아. 난 늘 잊지 않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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