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농장 우핑 여행
7월이 지난 뉴질랜드의 겨울에는 비가 많이 내렸다. 비를 실컷 빨아들인 마카다미아 나무도 슬슬 잘 익은 열매를 내놓기 시작한다. 견과, 즉 단단하게 굳은 열매인 마카다미아 넛이 잘 익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초록의 단단한 껍데기와 갈색의 깍정이를 벗겨내고 미색의 열매를 물속에 넣어 보면 된다. 가만히 물속으로 가라앉는 것 혹은 가뿐히 수면에 떠오르는 것, 어느 것이 잘 익은 열매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아직 여물지 않은 마카다미아 넛의 맛은 기억이 난다. 아삭아삭한 코코넛 맛이었다.
분홍 혹은 하얀색의 마카다미아 꽃이 무사히 비바람을 견뎌내고 과육을 살찌우면 마카다미아 넛이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열린다. 초록 껍데기가 벌어지고 열매가 떨어지기 전에 우리는 마카다미아 열매를 따야 한다. 열매를 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나무에 올라가는 것이다. 나무에 오르고 나면 땅에서는 찾기 힘들었던 열매들이 쉽게 눈에 띈다. 집게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니 열매를 따는 시간도 줄일 수 있다. 한 가지 불편한 점이라면 나무에 오르는 것 그 자체였다. 나는 나무에 올라가 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시작은 어렵다. 오르기도 전에 떨어질 것이 두려워 망설이고 있을 때, 겁 없이 성큼성큼 나무에 오르는 어린 친구들이 보였다. 서른한 살 묵은 엉덩이를 힘겹게 끌어올리면서 나는 스물여섯 살이라고 뻥을 친 것을 후회했다.
나무 위의 세계는 의외로 안락했다. 내 키를 훌쩍 넘는 나무 위에 올라서서 과수원을 내려다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나는 잘려나간 나무줄기가 남긴 높은 그루터기에 앉아서 시야에 먼저 들어오는 열매를 손으로 따서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단단한 열매가 미리 깔아 둔 포대 안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묵직하다. 다음으로 나무 구석구석을 살피며 손이 닿지 않는 열매에 집게를 들이댄다. 이리저리 숨은 열매를 찾다 보면 나무 아래에서 누가 열심히 일을 하는지 혹은 딴청을 피우는지 눈에 들어 들어온다. 나는 가끔 딴청을 피우는 친구의 어깨 위로 일부러 열매를 떨어뜨린 적도 있었다.
요령이 생기면 나무 위에 두 발로 일어서는 것도 가능하다. 존 아저씨도 나무 위에서는 두 발로 일어설 수 있는 안정된 위치를 선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불안하거나 행복하지 않다면 나무에 오르지 말라고 했다. 나는 나무 위에서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들도 높은 자리에서 아랫사람들보다 수월하게 많은 열매를 따고, 또 아래를 감시를 하고 지시를 내리겠지. 높이 서서 멀리 내다보고 우월함도 느끼겠지만 혼자서 불안하고 외롭기도 하겠지. 조심조심 나무에서 내려오면서 나와 전혀 상관없는 높은 자리의 사람들을 세계를 조금이나마 느낀 것은 아닐까 하는 착각을 했다. 빗속에서 열매를 따면서 떠올릴 세계는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깐 존 아저씨가 남긴 당부는 기억해 두고 싶다. 불안하거나 행복하지 않다면 오르지 마라.
빗속에서 열매를 따는 일이 계속 이어지자 우리는 비에 젖은 작업복처럼 무기력해졌다. 나는 너무 질퍽거려 발걸음을 옮기기 무거운 과수원의 흙을 밟으며 왜 양들이 발굽이 썩어나가는지 깨달았다. 발굽처럼 날렵한 구석도 없는 내 장화는 언덕에서 나를 진흙밭으로 곤두박질하게 만들기도 했다. 반복되는 요즘의 생활을 툭 떼어다가 맑은 물속에 집어 놓으면 가만히 가라앉을지 가뿐히 떠오를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날이 맑은 날, 기운을 내서 하이킹을 하거나 햇빛에 몸을 말리고, 나무의 푸른 기운을 흡수했다. 나는 사진을 핑계로 뒤처질 때가 많았다. 저녁에는 항상 고기를 구워 기력을 회복하고 캐나다의 150주년 생일을 기념하여 맥주를 마실 때도 있었다. 모든 저녁 메뉴가 기억나지 않지만 바비큐 소스를 발라 구운 닭다리 맛은 아직 생생하다. 오직 닭고기에서 고향의 맛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