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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요 Aug 16. 2017

뉴질랜드에서 캐나다로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2017년 7월 19일, 이날까지 캐나다 땅을 밟지 못하면 승인받은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비자가 없어진다. 작년 여름, 뉴질랜드 워킹홀리데이 비자 승인을 마냥 기다리고 있을 때 캐나다 워홀을 지원한다는 친구를 따라나선 시도가 덜컥 합격 편지로 이어졌다. 만 서른한 살 생일을 열흘 앞두고 2016년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비자 승인 마지막 그룹에 포함된 것이다. 비자 합격 통보를 받은 날로부터 일 년 안에 캐나다에 도착하기만 하면 되니, 뉴질랜드에서 먼저 워홀을 시작한 후 내년 7월에는 캐나다에 가자 했던 단순한 계획을 2017년 7월 16일, 한국 나이로 서른세 살, 마감 날짜를 겨우 3일을 남겨두고 실행했다.


처음 캐나다 워홀에 지원할 때는 이왕 회사도 때려치운 김에 기회가 된다면 일 년 정도 다른 나라에 더 있어 보는 것도 좋겠다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계획과 틀어지면 예산에 무리가 될 수도 있지만 뜻밖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워홀을 먼저 다녀온 친구의 캐나다 앓이가, 캐나다 출신 영어 학원 코치의 명쾌한 영어 발음이, 2017년이면 150번째 생일을 맞는다는 캐나다에서 느껴지는 흥분까지 나를 독려했다. 뉴질랜드에서는 소도시에서만 지냈으니 이번에는 대도시로 가보는 것도 좋겠다 싶어 오클랜드에서 밴쿠버를 거쳐 토론토로 가는 비싼 티켓을 끊어 놓고, 그저 남은 뉴질랜드 생활 속에 늘어져 있었더니 떠날 날이 훌쩍 다가왔다. 그리고 두려웠다. 나는 낯선 도시에 별다른 준비 없이, 넉넉지 않은 돈을 가지고 툭 떨어진다. 게다가 영어는 여전히 커다란 걸림돌이다.



일요일 저녁 여덟 시에 오클랜드를 출발한 비행기는 일요일 오후 두 시에 밴쿠버에 도착했다. 비행기에 오르기 전에 미리 캐나다 입국 신고 앱을 깔아 놓은 덕에 기내에서 앱으로 입국 신고서를 작성하고 QR 코드를 받았다. 밴쿠버 공항에 내려서 키오스크에 QR 코드와 여권을 스캔하고 간단한 확인을 마치고 사진을 찍으면 입국신고서가 프린트된다. 아직 토큰을 사용하는 나라답지 않은 신선한 절차였다. 입국 수속을 하러 총총 줄을 따라가는데 내 입국 신고서에 찍힌 번호 '68'을 확인한 직원이 "일하러 왔니?"라고 묻더니 나를 한적한 다른 줄로 빼냈다. 입국 신고서, 인쇄한 워홀 비자 승인서를 내밀었더니 간단한 확인 후에 짐을 찾고 출입국 관리소에 들르라는 안내를 받았다. "워홀 비자 승인받았니?" 이 정도의 간단한 질문이었다. 다행히 너무나 다른 여권과 입국 신고서의 내 사진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입국 신고서 속에는 캐나다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는 내가 있었다. 좋은 첫인상을 만드려고 눈을 크게 떴을 뿐이었다.



뉴질랜드에 도착했을 때처럼 봄을 건너뛰고 여름이다. 밤 비행기를 타고 토론토에 도착하면 또 시간을 앞으로 감아야 한다. 마음도 계절도 시간도 뒤죽박죽이지만 캐나다 2달러 동전에 새겨진 곰이 위로가 된다. 아무래도 뉴질랜드 키위보다는 곰이 좋다. 밴쿠버 공항 스타벅스에서 100달러 지폐로 음료를 시킨 탓에 주머니에 잔돈이 가득했다. 10만 원을 내고 음료 두 잔 시킨 꼴이다. 큰 돈을 내밀기 민망하여 요거트와 캐러멜 프라푸치노까지 큰 맘먹고 주문했지만 잔돈을 찾는 직원은 나를 대놓고 귀찮아했다. 오랜만에 주머니에 가득 찬 동전처럼 마음이 무겁고 어색한 하루였다.



에어캐나다 앱으로 체크인을 마치고 키오스크에서 수화물 프린트를 뽑아 짐을 먼저 보냈다. 일곱 시간이나 일찍 왔는데도 무리 없이 짐을 털 수 있어서 가벼운 몸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비행기에 올랐다. 에어캐나다 국내선은 간단한 음료 외에 제공되는 서비스가 없었다. 와인 한 잔을 마시면 잠이 들 수 있을까 싶어 승무원에게 물었더니 와인은 결제를 해야 한다고 했다. 괜히 거절하기 민망해서 '아, 그냥 한 잔 해버리자.' 하고 가방을 뒤적이는데 그녀가 카드 결제기를 내밀었다. 난 아직 현금밖에 없는데. 자연스럽게 와인 결제를 취소하고 공짜 물이나 한 잔 마셨다. 내심 돈도 아끼고 잘 됐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잠은 쉽게 들지 못했다. 덕분에 해가 서서히 밝히는 캐나다를 내려다보았다. 이번엔 창문 옆 자리 고르길 잘했다. 창문 밖은 어떤 영화 속 장면보다 예뻤다.

 


거의 이틀 만에 토론토 숙소에 도착해서 지친 몸을 누였는데도 잠을 쉽게 이루지 못했다. 다음 날은 또 하루 종일 잠을 잤더니 또 밤에 깨어 버렸다. 도착해서 이틀을 그냥 날렸다는 것보다 이틀 동안 꾸물꾸물 먹은 게 초콜릿 한 판밖에 없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물론 커다랗고 맛 좋은 뉴질랜드 초콜릿이었다. 다음 날은 오랜만에 여름 샌들을 꺼내 신고 밖으로 나가 휴대폰을 개통하고 한인 마트에 가서 먹을 것을 사왔다. 한글이 적힌 익숙한 식품의 유혹에 사라진 식욕이 금세 돌아왔다. 아직은 길을 건널 때도 눈치를 보고 있지만, 씩씩한 마음가짐도 금세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날 밤에도 잠을 못 이루면 동원 양반 밤 단팥죽을 먹을 생각이었는데 결국 단팥죽을 먹고도 아침이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한번은 마시면 잠이 잘 올 것 같은 패키지의 맥주를 사다 마셔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지금까지 토론토에 와서 좋은 점은 월요일 네이버 웹툰을 일요일 낮에 볼 수 있다는 것과 숙소 지붕에 너구리 가족이 산다는 것밖에 없다. 맥주를 살 때 신분증 확인을 요구하지 않았던 탓에 실망이 더 컸다. 뉴질랜드에서는 항상 확인했었는데.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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