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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요 Dec 19. 2017

캠핑카, 같이 만들어 볼까?

뉴질랜드 캠핑카 여행


내가 뉴질랜드에 도착하기도 전에 잔은 벌써 세 번째 차를 구매했다. 대망의 세 번째 차는 나와 함께할 여행을 염두에 둔, 우리의 캠핑카로 거듭날 차였다. 뉴질랜드를 찾은 가난한 젊은 여행꾼들은 승합차를 개조한 캠퍼밴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은 운전석과 조수석을 제외한 뒷좌석을 모두 들어내고 침대를 놓는다. 뒷문을 열고 편하게 요리를 할 수 있도록 뒷문에 간이 주방을 만들고 각종 짐을 구석구석 채워 넣는다. 하지만 잔은 사륜 구동의 근사한 SUV를 구매해버렸다. 그리고 나는 잘생긴 우리 차가 마음에 들었다. 보통의 캠퍼밴과 달리 빠른 주행도 가능하고, 승합차가 접근하기 어려운 자갈길도 씩씩하게 달리는 든든한 녀석이었다.


아직 작업을 시작하기 전이라 유난히 가벼워 보이는 우리의 캠핑카.
자신의 캠퍼밴을 점검하고 있는 스티브는 우리가 작업하기 편하도록 자신의 주차 공간을 내어주었다. 
스티브네 차고에는 올드카가 두 대가 더 있다. 혼자 사는데 차가 총 다섯 대......


여러 번의 중고차 구매 경험을 통해 잔은 벌써 차를 되팔아야 하는 시점까지 고려한 캠핑카 제작 계획을 세웠다. 우리가 뉴질랜드를 떠나는 6월, 뉴질랜드의 겨울에는 캠핑카를 좋은 값에 팔기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 잔은 최대한 본모습을 유지할 수 있도록 뒷좌석을 뜯지 않고, 대신 접이식 침대를 집어 넣는 계획을 세웠다. 평소에는 침대를 접어 보통의 차와 다름없이 일행을 태울 수 있지만, 밤을 지새울 긴 여행을 떠날 때에는 캠핑카로 변신할 수 있는 차, 뉴질랜드 현지인과 여행객의 구미를 동시에 당길 수 있는 그런 차를 직접 만들기로 한 것이다. 우리의 계획은 거창했고 작업은 쉽지 않았다.



우리 여행의 핵심이 될 캠핑카를 대충 만들 수는 없었다. 잔은 시간이 날 때마다 유튜브에서 관련 영상을 찾아보고 계획을 세웠다. 먼저 우리는 가능한 모든 것들을 분해하고 닦았다. 회색 시트로 덮인 뒷좌석을 비롯한 각종 덮개들을 벗겨낸 곳에는 오래 묵은 먼지들이 가득했다. 그 속에서는 이 차의 역사를 보여주는 물건들이 심심치 않게 발견되었다.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의 한쪽 구석에서 발견된 엔화는 뉴질랜드로 수입되기 전 일본에서 동전을 흘렸을 이 차의 첫 주인을 상상하게 했고, 의자와 천장의 시트에 박혀 있는 개털을 제거하면서 까맣고 진한 회색의 털을 가진 개와 산책을 하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누군가가 흘려 녹아 말라 붙은 초콜릿을 제거할 때는 차 안에서 초콜릿은 정말 조심해서 먹어야겠다는 교훈을 얻기도 했다. 오래 묵은 역사의 조각들을 주워내고 남은 먼지들은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였다. 녹을 제거하고 페인트 칠도 다시 했다. 말끔히 씻어냈으니 이제부터 우리의 역사를 남길 차례였다.



잔은 뒷좌석 내부에 충전재를 채워 단열에도 신경을 썼다. 뜨거운 햇살 아래 무언가를 오리고 붙이고, 나사를 풀고 닦고 조이는 날들이 이어졌지만 캠핑카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우리는 본격적으로 적당한 나무를 구해 접이식 침대와 주방, 수납공간을 만들어야 했다. 캠핑카에 적당한 나무는 우리 몸에 유해하지 않으면서, 튼튼하지만 많이 무겁지는 않고 저렴한 꿈의 나무였다. 우리는 요리에 적합한 고기를 찾아 정육점 진열대에 놓인 고기를 샅샅이 살피듯 등급이 매겨진 나무들을 찬찬히 살폈다. 나무의 속살을 이렇게 오랫동안 신중하게 들여다본 적은 없었다. 우리는 오랜 탐색 끝에 무엇보다 가격 면에서 신중하게 합의를 본 커다란 나무판을 잘라내어 차에 실었다. 우리의 보금자리에 드디어 나무가 생겼다.


우리가 고른 나무를 커다란 기계가 뚝딱 잘라냈다. 


숙소로 데려온 커다랗고 평편한 나무는 우리 손이 닿을 때마다 조각이 나고 매끄러워졌다. 점점 늘어난 것은 나무 조각뿐 만이 아니었다. 나무를 자르고, 다듬고, 칠할 공구들도 점점 늘어났다. 돈을 아끼기 위해 구입했던 손 공구는 우리의 노동력을 실컷 농략한 후에 구석으로 방치되었고, 그 자리를 전자 톱과 기계 사포가 대신하였다. 잔은 동그란 톱날을 전동 드라이버에 끼워 합판에 구멍을 뚫었다. 나무의 견고함은 유지하면서 무게를 줄여서 차체를 좀 더 가볍게 만들고, 침대 프레임을 쉽게 접었다 펼 수 있게 만들어줄 중요한 작업이었다. 매끄럽게 결을 다듬은 나무판에 칠을 하고 경첩을 달아 접이식 침대 프레임을 만들었다. 시험 삼아 처음으로 침대 위에 누웠던 순간의 두근거림이 아직 생생하다. 그는 커다란 우리 두 사람을 든든히 받쳐주는 튼튼한 나무였다. 그 위에 두꺼운 매트리스 대신 골라 반으로 자른 매트를 펼치면 잔과 내 몸에 꼭 맞는 침실이 만들어진다. 아무리 좌우로 굴러도 침대 아래로 떨어진 염려가 없다.


각종 핸드 톱으로 체력 소모하던 날. 
드뎌 전자 톱을 샀다!!!
엄청난 풍경를 자랑하는 스티브의 테라스가 우리의 작업실이 되었다. 
넬슨 시내와 타후나누이 해변이 훤히 비치는 거실. 
내가 좋아했던 색을 예쁘게 입히는 시간


커튼을 만들어 설치하는 것은 내 책임이었다. 캠핑카의 커튼은 밤에는 차 내부를 가려 사생활을 보호하고, 주행 중에는 시야 확보를 위해 창문을 완전히 가리지 않아야 했다. 치수를 재고 도면을 그린 후, 의욕 넘치게 커튼 재료를 사러 간 커다란 마트에서 나는 살짝 풀이 죽었다. 시중에 판매하는 커튼은 물론, 예쁘지만 질은 안 좋은 천 또한 너무 비쌌고, 잔이 고른 무난한 천은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은 언젠가 우리 캠핑카를 자랑하면서 이 커튼은 내가 손으로 직접 만든 거라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싹둑 사라지는 천을 끊어다가 손바느질로 커튼을 만들어 달았다. 하지만 오래된 고속버스 차창의 그것처럼 색도 무늬도 마음에 들지 않던 커튼은 묘하게 캠핑카와 어울렸다. 나는 아침에 먼저 일어나 따뜻한 침낭 속에서 꺼낸 손으로 커튼을 걷어내고 바깥 날씨를 살피는 시간을 좋아했다.



침대 밑은 좋은 수납공간이었다. 우리는 서랍을 만들어 레일을 달고, 자투리 나무로 도마를 만들었다. 서랍을 조금 빼고 거기에 꼭 맞게 제작한 도마를 올리면 조리대가 완성된다. 몇 가지 식기들은 중고 마트에서 저렴하게 구매하고, 서랍에 쏙 들어가는 아이스 박스를 집어넣었다. 그래도 부족한 수납공간은 자동차 위에 만들었다. 탐나는 루프백들이 많았지만, 터무니 없이 비쌌다. 그저 우리는 2개의 28인치 캐리어에 짐을 담아 루프랙에 올려 방수포로 덮고 굵은 줄로 튼튼하게 고정했다. 잔은 차 내부의 배터리를 이용해 차가 달리는 동안 휴대용 보조 배터리를 충전하여 소소한 전력도 확보했다. 소중한 식사 시간, 밥은 제대로 앉아서 먹자는 만장일치의 결정으로 제법 비싼 접이식 식탁과 의자도 사서 실었다. 이제 잘 자고 먹을 준비는 끝이 났다. 



그렇게 삼 주 동안, 각종 자재 마트를 들락거리며 꾸준히 작업을 했다. 3년이 넘도록 서로를 지켜봤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 무언가를 함께 만드는 것은 처음이었다. 작업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아도, 무엇이 속상했는지 지금은 기억나지도 않는 일로 서로 맘이 상했던 날도 우리는 작업을 멈추지 않고 묵묵히 이어나갔다. 그러는 사이에 캠핑카는 잔의 계획대로 완성되었고, 작업 내내 큰 도움을 주었던 스티브의 집을 떠나는 날이 왔다. 커다란 팔로 나를 꼭 안으며 작별인사를 하는 스티브의 품을 떠나는 날, 일본에서 건너온 하얀 SUV는 합정동의 낡은 아파트를 벗어나 처음으로 마련한 우리 둘만의 공간, 전세도 아니고 월세도 아닌 최초의 우리 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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