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사람이면 좋겠어 ep.5
가계부도 쓰기로 했고 하루에 세 번 양치질을 3분간 하기로도 했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간결하게 말하자면 결국 가계부를 쓰고 생활습관을 바꿔보겠다는 이야기였을거야
잘 지켜지고 있으냐라고 물어본다면 다소 애매하기는 해
가계부는 내년부터 쓰기로 했기 때문에 아직 시작하지 못했고, 생활습관을 바꾸는 건 조금씩 하고 있지만 못하는 경우도 종종 생기고 있거든 양치질을 위해 3분 타이머도 워치에 맞춰두고 양치질을 시작했지만 한 번씩 깜빡하는 일이 좀 있거든 아직 습관이 되지는 못한 것 같아
하지만 그래도 아주 조금씩이지만 내가 변화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어
별 건 아니지만 술을 마신 저녁날 샤워를 하고 깨끗이 씻고 잠을 잔다거나, 귀찮아서 바르지 않았던 화장품을 꼬박 바른다거나 무심하게 잘라내던 면도를 조금 더 열심히 한다던가 하는 사소한 변화들이 내게 생기고 있거든
아! 영양제도 챙겨먹기 시작했어 밥을 먹을 때도 최대한 욕심내지 않고 적게 먹으려고 노력하고 있고 몸이 아플때마다 버티기 보다는 최대한 병원에 가려는 노력도 하고 있지 아주 조금이지만 천천히 바뀌고 있는 중인 것 같아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다소 낮은 수준의 우울증은 계속 존재하는 느낌이었어
자존감이 높다면서 왠 우울증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내가 느끼기에 우울증은 그렇게 대단한 병은 아닌 것 같아 그냥 감기처럼 우리 곁에 늘 존재하는 그런 병이거든 그래서 누군가는 작은 감기라도 느끼지만 누군가는 내 몸에 감기가 다녀간지 잘 모르는 것처럼 우울증도 비슷한 것 같아. 나는 최근 축농증 수술과 비중격 수술을 하면서 생긴 숨에 대한 불안증세까지 조금 더해져서 다시 병원엘 가보기로 했어
맞아, 나는 정신과에 다니고 있어
처음 가게 되었던 계기는 회사에서 관계가 너무 힘이 들었기 때문이었어 하루에 오랜 시간을 보내는 회사에서 기분이 좋지 않으니 당연히 가족들에게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어려웠고 자연스럽게 우리 가족들은 나를 불편해하기 시작했어 아니 좀 정확하게는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는 거겠지?
원래부터 와이프를 제외하고 아이들과 막 엄청 가까운 아빠는 아니었는데 이렇게 되니 정말 세상에 나 혼자인 것 같은 기분이었어 회사에서도 관계가 계속 나빠지는데 그나마 함께하는 가족들에게도 내가 불편한 사람이라는 게 너무 힘들었거든. 어쩌다 이게 내가 지금 아픈 상황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때 처음 정신과의 문을 두드렸어
선생님을 만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때로는 눈물도 흘려가면서 내 마음을 들여다 보기 시작했을 때 효과가 정말 좋다, 이런 느낌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가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다는 생각은 들었었어 그래서 9개월 가량 치료를 받다가 수술을 하면서 잠시 쉬었는데 다시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던거지
지금 내가 엄청나게 힘든 상황이고 우울증이 심해서 생활이 불가능하고 이런 상황은 아니야 분명, 오히려 집에서 지내는 시간은 생각보다 너무 즐거워지고 있고 아이들과도 예전보다는 더 많이 좋아지려고 노력하는 중이지 그럼에도 찾아가려고 했던 건 내가 처음 찾았을 때의 관계에 대한 문제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었고 나 역시 어쩌면 다시 예전처럼 그런 모습으로 돌아갈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이었어
다시 만난 선생님은 어떻게 지냈는지, 요즘은 어떤지, 너무 힘들었겠다는 위로도 전하며 나를 반겨줬고 잘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 자리를 찾아 다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것이 내게는 조그만 위로가 되었어 적어도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내가 스스로 노력하고 있는 것이니까 말이야
나는 조금 더 열심히 나를 들여다 볼 생각이야
다시 눈물을 흘리고 다시 더 많은 약을 먹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외면하지 않아보려고
잘 할 수 있을거라 믿어 난.
2025.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