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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위 Aug 14. 2023

내가 선택한 첫 번째 일

청소

  2021년 4월 22일 성남으로 출근했다. 업무는 사무실 청소다. 출근을 하니 사장님과 사모님이 맞아 주셨다. 사장님은 유명 제약 회사 연구원으로 재직하시다 새롭게 자신의 회사를 차리셨다. 사무실 사이즈는 꽤 컸다. 10명 남짓 앉을 사무실과 그보다 더 큰 연구실 사이즈, 햇살이 가득 비추는 사무실은 따뜻했다. 이 공간에 밝은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 거 같았다. 필요한 물품은 어느 정도 들어와 있었다. 사무실 구석구석 더러운 자국이 묻어 있었고 먼지가 온 사방에 쌓여 있었다. "오늘 무슨 일부터 하면 될까요"라고 물었다. "우선 사무실 전체와 책상, 기구를 물걸레로 닦아줘요. 유리창도 닦아주고 바닥도 한 번씩 싹 청소할 거에요. 마지막에 쓰레기도 버려주세요."


  수건 두 개를 준비하고 물통을 가져다 놨다. 수건에 물을 적시고 꽉 짜냈다. 가장 먼저 더러워 보이는 벽을 닦기 시작했다. 사각형 면적 위 가장 왼쪽 모서리부터 가장 오른쪽 아래 모서리까지 닦았다. 깨끗한 벽은 한 번 더 닦아주고 더럽게 묻은 자국은 박박 닦았다. 벽을 깨끗하게 닦을수록 모든 초점은 현재 손의 감각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손으로 걸레를 뾰족하게 만들어 창틀에 쌓인 먼지를 닦았다. 집에서도 이렇게 깨끗하게 청소 안 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내 모습이 신기했다. 유리 세정제를 유리창에 뿌렸고 지문 한 자국 남기지 않았다. 온몸에서 땀이 흘렀다. 손은 시렸지만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사장님 부부는 왜 이렇게 열심히 하냐며 오히려 미안해하셨다. 스스로도 대충 하는 게 싫고, 새롭게 출발하시는데 이왕 하는 거 깨끗하게 해드리고 싶다고 대답했다. 오랜 시간 동안 혼자 있던 때 낀 사무실은 점점 깔끔해졌다.


  12시 점심시간이다. 사장님 부부는 함께 점심을 먹자고 제안했다. 사무실 가까이에 있는 한식 뷔페에 갔다. 주변에 직장이 많아 뷔페식 식당이 많았다. 밥을 먹고 라면에 계란 프라이까지 부쳐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그들은 직장에 다녀도 남을 나이인 28살 남짓한 애가 왜 청소를 하는지 궁금해했고, 원래 무슨 일을 했는지도 물으셨다. 저는 경제학을 전공했어요. 일은… 마케터도 에디터도 아닌 일을 하다가 회사를 나왔어요. 앞으로 무엇을 할지 모르겠어서 지금 이것저것 하고 있어요. 그때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은 안 난다. 경제학이 어렵더라. 뭐 이런 식의 대화. 지금 가슴에 남은 감정이 아무것도 없으니 아무 말 아니었던 것 같다. 밥을 먹고 남은 시간 동안 혼자 산책을 하러 나왔다. 편의점에서 커피를 하나 샀다. 벤치에 앉아 점심을 먹으러 나온 직장인들을 바라봤다. 그들을 보며 부럽지도 밉지도 않았다. 그냥 다들 잘 살아가는구나 정도의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현재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구나… 지금 나는 함부로 최선을 다하지도 못한다. 이 선택이 잘못된 선택일까봐. 회피일까봐. 나는 왜 계속 이방인스러운 감정을 느껴야 하는 걸까. 슬프면서 답답했다.


  점심시간이 지났다. 다시 청소를 시작했다. 청소기로 바닥의 먼지를 빨아들였다. 콘센트는 왜 이렇게 구석구석 숨어 있고 청소기 선은 이리 짧은지, 사무실 곳곳에 콘센트를 찾느라 진땀을 뺐다. 청소기는 먼지를 빨아들이고 물걸레는 바닥에 새 얼굴을 줬다. 이제 좀 쉬어볼까. 창가에 걸 터 앉았다. 창문을 통해 씁쓸한 봄바람이 분다. 봄바람이 달콤했던 적이 언제였을까. 잠시 기억 속을 돌아다니다 다시 청소를 마무리했다. 여기저기 굴러다니고 있는 박스들을 치웠다. 이놈의 박스는 치워도 치워도 어디서 나타난다. 몇 번을 엘리베이터로 오르락내리락 했는지 모르겠다. 사무실은 새 모습을 찾았고 반짝반짝 빛이 났다. 이 공간에 새로운 이야기가 쓰이겠지.


  시계는 어느새 오후 5시를 가리켰다. 사장님은 내일 개업식이 있는데 일을 도와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네! 당연하죠." 나는 대답했다. 아싸 하루 아르바이트 더 구했다. 사장님은 계속해서 말했다. 오늘 청소를 열심히 해줘서 고맙다. 그래서 말인데 홈페이지도 만들어야 하고 회사 일정 관리를 해 줄 사람이 필요한데, 혹시 우리 회사에 나와서 일해주지 않겠냐고. 물었다. 돈도 필요한지라 심히 고민했지만 난 거절했다. 스스로 내 일을 선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최근 취업 준비를 하면서 이날을 다시 생각했다. 이상하게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희열을 느꼈다. 그날 난 청소일로 정규직을 얻을 뻔했다. 그리고 자신감을 얻었다. 나는 무언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이구나. 운과 조력자와 기회와 열정과 상황이 있다면 말이다. 먼 훗날 이 날의 마음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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