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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 Aug 28. 2023

프랑스라는 탈출구

  저녁 11시, 방 컴퓨터를 키고 불법 다운로드를 한 프랑스 영화를 켠다. 새벽 2시가 되고 영화는 끝이 났다. 수년 전 고등학생 시절 거의 매일 밤 했던 루틴이다. 야자를 끝내고 집에 돌아오면 무조건 영화나 해외 드라마를 봤다. 당시만 해도 ott 서비스는 없었고 토렌트로 불법 다운로드 하거나 불법 무료 사이트를 찾아 보는 게 다였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했던 콘텐츠는 단연 프랑스 영화였다. 왜 그렇게 프랑스 콘텐츠를 좋아했을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프랑스가 풍기는 낭만이 있기 때문이다. 그 낭만은 어쩌면 개개인에 대한 존중에서 나오기 때문이었다. 공동이 정해놓은 선과 개인의 욕망을 줄다리기 하며 짓는 주제와 감정선은 모두가 생각은 해보지만 차마 입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그런 사실들을 펼쳐 놓았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나다워질 수 있었고 세상엔 이런 일도 저런 일도 일어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됐다. 학창시절 프랑스 영화는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하지만 현실에서 여전히 나는 1/99,999,999의 일원 중 하나였다. 대학교 진학을 결정할 때 나는 두 가지 학과에 합격했다. 프랑스어문학과와 경제학과. 나는 현실이라는 변명 하에 경제학과를 선택했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서 아는 것처럼 행동했던 결과다.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했지만 결국 난 우울증과 여러 슬럼프를 겪었다. 유럽 여행을 통해서 다시 프랑스를 찾게 됐다. 그곳은 역시 유일한 탈출구가 되어줬다.


  언어적 재능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영어를 못하니 프랑스어도 못 할거야. 라는 생각을 했다. 지독히도 회피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그때의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잘한다고 생각했던 방향을 선택했지만 결국 마음의 병을 얻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내 잠재력은 깊었다. 청력을 잃고 프랑스에 다녀온 후, 도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많아졌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이었던 난 언어적 능력에, 감각적인 능력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어떤 직업을, 어떤 인생을 살아야할 지 고민하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20대 중후반이 되서야 하기 시작했다.


  20대 중반, 1년 휴학을 하고 유럽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든 생각은 '프랑스에서 살아보기'였다. 프랑스에서 살아보기라는 목표를 가지고 처음으로 영어 슬럼프를 극복했다. 친구들에게 교환학생 안가!라고 엄포를 놓았던 한 대학생은 간신히 토익 점수를 마지막 달 간신히 만들어 프랑스 교환학생이 됐다. 이때부터 지독한 회피주의적인 성향을 떨쳐내고 모든 것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프랑스로 떠나기 전, 집을 구하고 어떤 여행을 갈까 고민하는 철없는 대학생은 참 행복했다. 앞으로 어떤 고난과 시련이 닥칠지 모른채 말이다. 그렇게 나의 1년간의 유럽살이는 시작됐다. 그리고 새로운 인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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