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모습은 프랑스 파리 교환학생이었지만 스스로를 여행자라고 칭하며 다녔다. 인생의 길을 잃은 여행자. 그런 신분으로 만난 사람들은 프랑스 배우, 작곡가, 작가, 바이올리니스트, 베이시스트, 미술관에서 마주한 과거의 예술가, 세잔.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프랑스로 떠났던 그때 그들의 삶을 모두 흡수하고자 했다. 그저 그들의 삶을 듣고 관찰하며 스스로에 대해 알아가고자 했다. 프랑스에서 인종차별같은 불쾌한 일들도 많았지만 결국 그 당시에 나를 나 자체로 봐준 유일한 사람들은 역시 그들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나에게 그들의 생활을 보여준 사람들, 그곳에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들이었다.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는 '아 이런 인생을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획일화 된 한국사회에서 항상 이방인스러운 감정을 느꼈다. 좁은 땅에서 발현된 가치관때문인지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 한 쪽 청력을 잃고 나서야 세상을 향해 눈을 뜰 수 있었다. 지금에서야 말할 수 있는 건 프랑스에서 만난 사람들의 열린 마음이 있었기에 세상을 향한 믿음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항상 사람으로부터 위로받았고 사람이 남긴 책이나 작품 따위에 위로 받았다. 그 안에 담겨진 마음이 내 안의 무언가를 건들였다.
파리에서 만난 시나리오 작가는 좋아하는 것이 일이 됐을 때의 책임감과 마주하게 될 마음의 단단함을 알려주었고 파리에서 만난 작곡가는 '그래 너도 어쩔 수 없이 그 마음을 가지게 되었구나. 너의 앞을 걸어나아가 보렴', 집주인이자 배우였던 영국의 프랑스인은 사람을 향한 열린 마음을 알려주었고 보르도에서 만난 베이시스트는 도전하는 무모함과 사랑에 대해 알려주었다. 엑상프로방스에서 만난 바이올리니스트는 나눔의 즐거움을 알려주었고 엑상프로방스에서 세잔을 느꼈던 시간은 무언가와 연결되어지는 표현할 수 없는 시그널이었다. 그들과의 대화와 경험이 현재의 나를 만들어 나간다. 아마도 난 예술가들 곁에서 끝없이 배회하는 사람이 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