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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 Apr 16. 2023

꿈? 없어. 그냥 대충 살아

취향 컬렉터가 됐다.

  2001년 어느 여름, 꿈이 뭐냐고 친구가 물었다. 8살 꼬마는 대답했다. '꿈? 없어. 그냥 대충 사는 거지' 그렇게 덩치만 커진 꼬마는 다채롭게 빛나는 세상 속에서 여전히 꿈 없이 흑백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흑과 백으로 둘러싸인 세상에 갇힌 꼬마는 두 가지 선택지만이 존재했다. 머물러 있기 혹은 떠나기.


  유일하게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프랑스라는 나라다. 학창 시절부터 프랑스 영화를 좋아했다. 불어불문학과에 진학할 수 있었지만 당시에는 좋아하는 것보다 잘하는 것을 선택했다. 현재를 벗어나야 했던 꼬마는 가방에 짐을 쌓다. 프랑스 문화를 경험해 보고자 1년간 파리 교환학생을 가기로 결심했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꿈과 동경하는 것조차 없었다. 좋아하는 것도 없었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감정조차 인식할 수 없었다. 주변의 모든 게 세상을 파괴하고 가로막는 느낌이다. 나약해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마음이 가는 데로 행동하는 것이었다. 회피라고 해도 좋다. 지옥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그것뿐이라면.


  나는 마음이 가는 데로 행동하기로 했다. 1년 동안 프랑스에 있으면서, 눈길이 가는 것이 있었다. 바로 사람들이었다. 몰입하는 사람들이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무언가에 몰입한 적이 언제였을까. 나는 그들을 관찰했다. 그들은 눈빛부터 달랐다. 그들은 짓는 웃음도 달랐다.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 없었다. 깊은 곳에서부터 나오는 단단함, 그곳에서 나오는 미소는 나를 궁금하게 만들었다. 나는 몰입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버렸다. 그들은 무엇 하나에 빠지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걸 신나게 했다. 그들은 원하는 것이 분명했고 원하는 삶을 향해 달려 나갈 줄 아는 사람이었다.


프랑스에서 꿈이 생겼다. 무언가에 몰입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것도 아름답게.


  프랑스에 다녀오고 나서 나는 좋아하는 것에 몰입해 보는 경험을 가지려 여러 가지를 시도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 여러 가지 문제가 닥쳤다. 막상 좋아한다고 시작했다가 진짜 좋아하는 게 아니었던 적이 많았다. 현재의 내가 아닌 과거의 내가 좋아했던 것이었다. 해야만 해서 해야 하는 것들을 선택한 적도 있었다.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마음을 알지 못했다. 취향을 갖는다는 건 나를 바로 알아가는 시도와 실패의 연속이었다. 좋아하는 것을 인지하고 꾸준히 지속하는 방법을 알기까지 5년이 걸렸다.


  5년 후인 2023년, 난 취향 부자가 됐다.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취향을 컬렉팅 하고 있다면 될까. 원하는 걸 선택하고 그걸 책임지고 끝까지 파고들 용기를 가지게 됐다. 여전히 나는 프랑스라는 나라를 좋아하고 프랑스 영화와 드라마를 본다. 양말을 수집하고 커피는 산미 있는 것을 좋아한다. 전시회를 보면 엽서를 꼭 구매하고 나온다. 요가 중에서는 하타요가를 즐겨한다. 또 꾸준히 글을 쓰기 위해 커뮤니티에 들어갔다. 먹는 것과 여행을 좋아해 대한민국의 로컬 음식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낯선 시선으로 일상 여행을 한다. 요즘은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필름 카메라를 이어받아 사진 찍기에도 취미가 생겼다. 또 내가 세상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정의했고 그 분야에서 일을 시작했다. 앞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어떤 형태를 만들어 갈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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