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살아도 서울을 모르듯이, 일상을 사는 나는 매일의 나를 모른다. 무의미한 일상은 얼마나 무의미한 나를 스쳐 지나갔을까. 내가 나로 살지 않을 때 하루는 한없이 가벼웠다. 가벼운 일상은 스스로에게 한없이 가벼운 선택을 안겨줬고, 한없이 가벼운 결과를 선물했다. 그 무엇도 소중하지 않았다.
무의미한 시간이 지나가고, 무거워진 일상을 선물 받았다. 나는 일상의 무게를 소중히 짊어지기 위해 매일의 나를 받아들인다. 이 남은 생을 나로 끝낼 수 있게 하루를 나인 것들로 채운다. 나로 채우는 것들이 많아질수록 매일이 낯설다.
일요일 아침, 혼자 눈을 떴다. 이제 익숙할 법도 한데 더 익숙해지지 않는 것 같다. 옆에 그림자가 지워질수록 혼자 있는 시간은 더 진하게 다가온다. 집 안은 고요하다. 잠이 덜 깨 다시 눈을 감아본다. 부엌의 달그락 소리가 들리는 듯하지만 이내 오늘을 잘 보내겠다 다짐하고 눈을 떴다. 진하게 배인 그림자를 떨쳐내기 위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그렇게 부지런한 내가 탄생한다.
‘할 일이 많아. 마주해야 해. 집중해야 해’
‘아니, 조용히 해. 난 잠시 도망칠 거야’
네이버 지도를 켰다. 어제 추천받은 전시장에 가봐야겠다. 걸어서 2시간 남짓, 집에서 전시장까지 거리이다. 서울시 중구 퇴계로 6가길 30..., 전시 이름은 <국내 여행>
<국내 여행>은 작가들이 사유한 한국의 모습을 보여주는 전시이다. 작가들은 산과 바다 그리고 마을과 도시 혹은 익숙해서 무심히 지나치곤 했던 우리 주변 풍경들을 포착하여 자신만의 국내 여행을 보여준다.
‘그렇지. 전시장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지도에 그어진 하나의 선. 오늘 여행지다. 아마도 내가 모르는 장소들이 펼쳐지겠지. 포르투갈 카보다로카에 갔을 때 일이다. 이곳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 전까지 과거 유럽인이 세상의 끝 그리고 바다의 시작이라고 여겼던 장소다. 이곳을 향해 걸어갈 때, 나의 시간은 가장 진하게 흘렀다. 카보다로카를 향해 가는 시간은 이런 걸로 이루어졌다.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는 발걸음을 느끼는 시간, 잠시 멈춰 경계 없는 해안선을 바라보는 시간, 습한 공기와 눈앞의 태양을 느끼고, 태양에 타버린 내 피부를 만지는 시간, 옆에 지나가는 사람들은 어디서 왔을까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상상해 보는 시간, 소중한 사람과 다시 오겠다고 다짐하는 시간. 평소라면 무심코 지나쳤을 순간을 마주했다. 마침내 기대한 목적지에 다다르고 세상의 끝이라고 여겨졌던 공간에 섰다. 만약 이곳이 진짜 세상의 끝이라면 나는 무슨 감정을 느꼈을까?
오늘 나는 평소라면 지하철을 타고 갔을 거리를 걸어가 보려 한다. 익숙한 길이 나온다. 이내 낯선 공간의 경계선을 넘어 새로운 동네를 탐험한다. 뭔가 새로운 게 펼쳐지겠지? 잠깐, 근데 일상을 여행처럼 살기란 쉽지 않다. 여행만큼 자극적이지도 않다. 하지만 걷기만큼은 어디서나 동일하다. 걷는다. 아무 생각 없이. 그러다 호기심 거리가 생기면 유심히 바라본다.
서울에서는 볼 수 없을 법한 건물, 50년 전에 있었을 법한 건물에 달린 촌스러운 영화사 간판, 저곳에선 어떤 과거들이 흘러갔을까. 밑에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어 보이는 장인의 신발 가게, 그가 만든 신발들, 아직까지 가게가 운영된다면 어떻게 수입을 벌어들일까 혼자 상상에 빠져 상점을 지나친다. 상상이 흐릿해질 무렵 휴대폰을 꺼내 지도를 확인한다.
'아, 아직 반밖에 안 왔네'
한적한 서울역 뒤편 철도 길이 보인다. 철도 길을 보면 설렌다. 기차가 나를 태우고 어디론가 떠날 거 같은 기분이 든다. 순간 저 멀리 이어진 철도 길을 바라보고 괜히 사진을 찍는다. 그러고는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서울역을 지나 이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길게는 40년 세월이 담긴 작품을 감상하고 있자니, 작품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나는 저들을 통해 무엇을 전달받을까.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시대를 살아갔을까. 나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나는 그 공간을 철저히 즐겼다.
엉킨 감정과 함께 지하철을 타고 집에 왔다. 뒤섞인 감정을 편집하기 위해 사진을 정리하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깜빡이는 커서 앞, 나는 언어를 통해 사유한다. 빈 화면은 이내 흑과 백으로 나뉘어 여백을 지워간다. 마치 미뤄둔 하루의 죄책감을 상쇄하듯 종이에 공백을 채워간다. 채워진 공간은 새로운 나를 짓는다. 그렇게 낯선 나를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