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용산구 두텁바위로 94-1 1층스토리지북앤필름 후암점
8년 전, 글쓰기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됐다. 일기장은 분노 덩어리였고 다시 보기 두려웠다. 다시 글을 쓰기까지 8년이 걸렸다. 글을 다시 쓰기 시작한 건 매일 하는 행위들을 기록하기 위함이었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글만큼 단순하고 가성비 좋은 수단은 없었다. 시간은 흘러 계속 글을 썼고 글쓰기를 무해하게 사랑하게 됐다.
[무해하다]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1. 無害(없을 무, 해할 해) : 해로움이 없음
2. 誣害(속일 무, 해할 해) : 거짓으로 꾸며 해롭게 하다
글쓰기의 시작이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서여서 인지 순수하게 글쓰기를 사랑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10대 시절부터 죄책감이 있었다. 진심이 아닌 남이 만족할 만한 이야기를 쓰는 것에 대한 죄책감. 다른 사람을 속이는 듯한 글은 잘 포장된 빈 선물상자 같았다. 그 죄책감은 대학 교지 에디터 시절에 떠올랐다. 그럴듯한 이야기 말고 진정 전달하고 싶은 게 있는 걸까. 없었다. 이와 더불어 주변 사람들의 글을 향한 이상한 이기심과 욕심을 바라볼 수 없었다.
1년 동안 일상을 기록하며 글감을 수집했다. 떠오르는 심상들을 단어와 문장으로 펼쳐 놓았다. 글을 풀어내고자 글 쓰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오랜만에 글을 쓰자니 낯설었지만 가슴 깊이 기뻤다. 떠오르는 심상을 풀어낼 용기와 꾸준히 쓸 의지를 다잡을 수 있었다. 2023년 2월은 가장 감정에 솔직해지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던 소중한 시간이다. 그곳은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고 서로 응원해 줬던 공간이다. 그때의 시공간이 그때의 웃음이 그때의 설렘이, 지금의 무해함을 만들었다.
글쓰기를 무해하게 사랑하게 되자 낯선 시선의 선명도가 올라갔다. 특히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그의 글, 생김새, 취향, 웃음, 분위기, 인스타그램을 통해 타인의 인생을 그렸다. 스스로의 문제에 휩싸여 보지 못했던 타인의 사랑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곁에 머물러 주며 주었던 따뜻한 시선과 그들이 겪은 고통의 시간들이 보인다. 타인의 사랑과 위로, 슬픔을 내비치는 마음들에 더 가슴이 요동치는 요즘이다.
함께한다면 없던 것도 만들어 낼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불확실성이 만연해진 시대에서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고 기다려주며 함께 간다면 그 다정함과 따뜻함이 공존한다면 혼자 나아갈 힘을 얻지 않을까.
후암점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글쓰기를 무해하게 사랑하게 된 공간이라서 그런지 참 아쉽다. 하지만 그때 시공간을 적어도 이 글 안에 남겨본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서로의 글을 읽고 자신의 글을 계속 썼으면 좋겠다.
글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서로의 글을 공유하고 꾸준히 글을 쓰기 위해 만든 오픈채팅방
<뭐라도 쓰자>
https://open.kakao.com/o/g4W7ix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