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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꽃 Jul 31. 2021

여름에는 딱딱한 복숭아를 먹어줘야지

복숭아는 멀쩡한 상태로 한 달 넘게 버텼다




  


  좁은 마당과 가파른 계단을 걸어온 아빠는 거실에 커다란 상자  개를 조심스레 내려 두었다. 엄마는 그걸 보고 반색했다.


  “어머, 복숭아네?”


  나는 복숭아를 좋아했다. 그냥 복숭아 말고 딱딱하고 달콤한 복숭아만 먹었다. 제일 좋아하는 과일이었지만, 다른 과일에 비해 비싼 편이라 자주 먹지 못했었다. 게다가 입맛도 까다로워 조금만 말캉거리거나 당도가   하면   먹다 말곤 했다. 수박이나 참외처럼 외갓집에서 쉽게 가져다 먹을  있는 과일은  찾지도 않았다.  알에  천 원씩 하는 맛있는 복숭아를 엄마는 쉽게 사 오지 못했다. 먹는 입은 여럿인데  돈으로 다른 과일을 사는  나았다. 맛있는 복숭아 실컷 먹는   소원이기도 했다. 많이 먹어봤자 한두 알이었으니.


  “눈꽃아, 아빠가 복숭아 사 왔어.”


  연한 분홍빛이 도는 복숭아였다. 한눈에도 이건 딱딱하고 달콤한 과즙이 가득하겠구나, 알아볼 정도로 먹음직스러운 복숭아였다. 세수를 하고 나온 아빠가 나를 불렀다. 푹푹 찌는 더위에  늘어져 있던 나는 아빠의 말에 벌떡 일어나 부엌으로 달려갔다. 찬물에 복숭아를 씻어 과도와 접시를 꺼내 들었다. 어디서 이런 복숭아를  박스나 사 왔냐는 엄마의 물음 뒤에는 비쌌을 텐데 하는 걱정이 묻어나 있었다.


  복숭아는 기대 이상으로 맛있었다.  알을 순식간에 해치우고  번째 복숭아를 깎는 와중에도 군침이 돌았다. 삼시세끼   먹고 복숭아만 먹어도   같았다.


  “우리 딸, 복숭아 좋아하잖아. 실컷 먹으라고 사 왔지.”


  동생 몫을 따로 남길 필요도, 없어져가는 복숭아에 아쉬워할 필요도 없었다.  자리에서 복숭아를  알이나 먹었다. 입안에 남은 달짝지근한 맛과 기분 좋은 향에 더운 것도  잊을  있었다.


  아빠는 내게 복숭아  박스를 사다  후, 갑자기 돌아가셨다. 태어남과 같이 죽음도 약속을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비싼 약도 소용없었고 수술도 불가했다. 응급실에 실려간  서너 일, 아빠는 그렇게 떠났다.


  까만 상복을 불에 태우는 것으로 장례식이 끝났다. 푹푹 찌는 더위에 땀이 눈물처럼 흘렀다. 잠도 제대로  자고 밥도 먹히지 않았던 며칠. 아빠를 묻고 집에 돌아온 나는 냉장고 야채칸에서 복숭아를 꺼냈다. 물로 벅벅 씻어내고 칼로 껍질을 벗기고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엄마와 동생은  복숭아를 먹지 않았다.  상자나 되는 복숭아는 내가 거의  먹어 치웠다. 정말 실컷 먹었다. 다시는 복숭아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막판에는 복숭아가 없어지는  아쉬워 아끼고  아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복숭아는 한 달 정도 냉장고에 있었는데도 멀쩡했다. 어디  군데 물러지지도, 상처가 나지도 않았다. 처음 아빠가 사 온 것처럼 아삭하고 달았다. 마지막 복숭아까지 맛있었다. 그래서 나는 복숭아를 오래오래 보관할  있는  알았다.  많던 복숭아가 냉장고 야채칸에서 방금    같았으니.


  오늘 큰 맘먹고 과일을 사러 갔다. 매일 일이 늦게 끝나고 더위에 지쳐 입맛도  떨어진 상태였다. 제철 과일  먹어볼까 생각하며 찾아간 마트 입구에는 복숭아가 진열되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갈 필요도 없었다. 이거 딱딱한 복숭아예요? 직원에게 복숭아 상태에 대해 묻고 바로  박스 집었다. 이상하게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발 맛있어라, 제발. 마음으로 수번을 되뇌며 집으로 돌아와서는 바로   깎아 먹었다.


  코끝이 찡해졌다, 아빠가 사다준 복숭아가 떠올라서.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 내게 마지막으로  선물이 떠올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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