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torygallery Jan 14. 2022

#25. 취미의 시대에 대하여

뜨개질에 몰두하는 것에 대한 작은 변명 

마흔을 두 해 넘긴 나이가 되고 보니, 

먹고사는 일은 정말 '일' 그 자체가 되고, 연애도 그저 지나가거나 머무는 것이 되고 만다. 


조금은 어렸던 시절에는 '일'도 '연애'도 죽을 만큼 열심히 했던 것 같다. 

누가 부러 그러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죽을 듯이 매달리고 또 매달렸다. 

나의 삶의 그 무언가에 말이다. 


그 삶의 절반 즈음을 지나고 보니, 죽을 듯이 매달렸던 그 먹고살고 사랑하는 일이 그렇게 대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심장이 조금 차갑고 단단해지는 것, 그게 나이를 먹는 일인 것 같다. 


나는 이제 마흔둘의 미혼으로, 

여전히 공연업을 생업으로, 

결혼만 생각하던... '연애'는 없던 이상하고 긴 연애를 끝낸 상태로,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여기에 하나 더, '취미 집착'의 항목이 추가되었다. 


취미도 죽을 만큼 매달리게 된, 마흔둘의 미혼의 공연 업자가 되었다. 


코로나가 시작되던 2년 전 즈음, 조카의 학교 방학 숙제였던 신생아 모자 뜨기를, 온 가족이 유행처럼 매달렸던 그날부터가 시작이었다. 


유튜브를 선생님으로 모시고, 

여기저기 실의 샘플을 사서 모아 갖은 실패와 성공을 거듭한 끝에, 

가방, 모자, 목도리 정도는 거뜬히 만들어 낼 수 있는 '뜨개 취미자'가 되었다. 



뜨는 과정은 고단하지만, 기록해 두면 그 또한 즐겁다. 



코로나로 생업이 위협받는 것은, 

생각보다 더 고단하고 힘든 일이었다. 


맨 정신으로 버티지 못하겠는데, 이상하게 술도 사람도 싫었고... 

그 좋던 드라마도 책도 보이지도 읽히지도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로 몇 달을 지내다가, 

실과 바늘로 한 땀 한 땀 엮어가며 조금씩 빈 공간이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코로나로 생업이 멈추고, 두 손과 넋을 모두 놓고 나니, 내가 해낼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무력감. 그 와중에 내가 만들 수 있는 것이 있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겼다는 말이다. 



처음 만든 모자를 쓰고, 제주도에 갔었지. 




뜨개바늘과 실을 손에 잡은 지 2년. 

돈도 시간도 많이 드는, 조금 고약한 취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취미도 나는 죽을 만큼 기를 쓰며 하고 있다. 

그렇게, 놓을 뻔하던 나의 생업에도 다시 숨을 불어넣을 수 있게 되었다. 


모두가 그렇지 않을까... 


어느 하나는 숨구멍이 뚫려야 살 수 있다. 


현생의 고단함을 잠시나마 잊고,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즐거운 것에 매달려야, 오늘이 지나오는 내일을 기꺼이 맞이할 수 있다. 



일만으로도, 삶만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고독한 시대는, 가지 각색의 취미들을 만들어낸다. 

왜 그렇게 까지, 밤을 새워 가며, 손에 굳은살이 배겨 가며, 만들어내냐고 누군가 물었다. 


내가 몰두할 수 있어 몰두하는 것이고, 

내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있어 만드는 것이고, 

엄마와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하나 둘 나눠주다 보면 내 손에 남는 것이 없을지언정, 행복한 그 감사를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득 차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오늘도, 실을 엮어 가고 인연을 엮어간다. 





춘식이는 나의 뜨개 아이템들의 좋은 모델이 되어준다.




취미의 시대에 사는 모두, 어떤 것들을 즐기시는가?!

그게 무엇이든, 즐겁게 열중하라. 


작가의 이전글 #24. 2019년 가을에 멈춰버렸던 그 어떤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