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어쩌면, 나는 당신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나는 몰랐던 당신의 부음으로부터, 내내 아프고 힘들었던 그 겨울과 봄이 어느덧 세월을 입고 무뎌졌다.
내내 슬프고 힘들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또, 살아내야 하니까.
원래 없던 당신을 잃었다고 해서, 내 삶이 망가질 수는 없으니까.
그 후로 두어 번, 노잣돈이 없다는 누군가의 전언으로 그리고 무덤에 가득 글귀를 새긴 편지로 당신은 내 꿈에 나타났다. 어쩌면 살아있는 당신을 꿈에서라도 보고 싶었는데, 그 연조차 우리는 없었다.
잊었다.
당신을 잃은 슬픔을 나는 어느새 잊고 살았다.
그저 문득... 걷다가, 하늘을 보다가,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건물들과 사람들을 보다가, 이제는 흐릿해진 당신의 얼굴을 그려보곤 한다. 사진으로라도 남았다면 참 좋을 텐데 그 조차 없는 나는, 이목구비는 생각나지 않고 내게 모진 말만 했던 서툰 그 목소리만 생각이 났다. 그럴 때마다, 그래... 그런 사람이 내 아버지였지. 나는 그런 사람의 딸이었지. 어느 한순간, 내가 태어난 순간만이라도 그는 오롯이 기뻐했을까...라는 덧없는 생각을 스치듯 할 뿐. 나는 이제 당신이 사무치거나 그립거나 원망스럽지도 않다.
죽은 사람을 내내 그리워해서 무엇하는가...
그렇게 잊은 듯 흘러가던 봄의 초입, 3월에
나는 꿈에서 당신을 안았다.
아마도 옛날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던 시골집이었던 것 같다.
사람들이 많았고, 나는 그저 어리둥절한 채로 '어른인 내가 왜 어린 시절 내가 살던 이 집에 와 있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누군가 나에게 와, '마지막은 네가 보내주어야 하지 않겠니?'라고 물었다.
나는 내가 보내주어야 하는 그 누군가의 마지막이, 당신이라는 걸 알았다.
순간, '내가 왜?'라는 생각으로 머뭇거렸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 보내주면 당신이 편하게 쉴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에 그러마 수긍했다.
할머니의 상추와 꽃화분이 가득 들어찬 옥상에서, 환하고 고운 꽃으로 장식된 당신의 유골함을 나는 받아 안았다. 당신, 참 예뻤다.
당신을 안아 들고, '뭘 어떻게 해야 해요?'라고 나는 바보같이 물었고,
당신을 안겨준 이는 내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다정히 얘기해 줬다.
가파르고 좁은 옥상 계단을, 당신을 꼭 안고 내려오며,
"제발 이제 좋은 곳 가세요. 편히 쉬세요."
라고 마지막 말을 전했다.
그리고, 목 놓아 울었다.
원망도, 회한도, 사무침도, 화도 없었다.
나는 진심으로 당신이 이제 편히 쉬기를 바랐고,
마지막으로나마 그렇게 내게 안겨주어 감사했다.
그 짧은 길을 내내 나는 울며 걸었고,
고운 당신의 유골함을 감싼 투명한 막이 울음 같은 한숨을 내뱉었다.
당신의 울음이었으리라...
당신의 고운 유골함을, 사람들이 모여 앉은 작은 테이블 위에 올려 두고 나는 그렇게 꿈에서 깨어났다.
2022년 3월 2일 새벽 3시 19분 이었다.
이제서야
나는 비로소, 꿈에서라도 당신을 보내줄 수 있게 된 것 같다.
무덤 하나 제대로 없다던 당신이, 어쩌면 어딘가에서 이제는 편히 쉬게 되었을지 모른다는 마음이 든다.
진심으로, 당신의 영면을 기원한다.
나의 아버지로 잠시라도 살아줘서 고맙다.
마지막 가는 고운 길, 내게 안겨 주어 고맙다.
[사진 출처: PEXELS]